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일부 지자체 일반 예비비 수백억원 남아… 재정안정화기금 등 곳곳에 남는 돈

“예비비 편성을 최소화하고, 재정 지출 확대를 위한 적극적인 예산 편성과 집행을 통해 잉여금이나 불용액 발생을 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이혜원 양평군 의원·국민의힘). 지난 2020년 12월 15일 경기 양평군의회 본회의. 지방자치단체에 예비비로 남는 예산을 열심히 쓰자는 제안이 나왔다. 당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던 상황이었다.

지난 8월 27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 / 서울시의회 제공

지난 8월 27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 / 서울시의회 제공

지난 9월 8일 서울 관악구의회 본회의. 이번에도 예비비가 논란이 됐다. “갑자기 늘어난 예산에 당황해 이것저것 쓸 수 있는 데는 다 쓰고도 200억이 넘는 돈이 남아 190억을 예비비로 편성했습니다”(이기중 관악구의원·정의당). 이기중 구의원은 이날 “자영업자들은 말라죽는데, 왜 남는 예산을 안 쓰는지” 모르겠다며 “벼랑 끝에 몰린 주민들을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주장했다.

지자체의 예산 중 예비비는 쓰지 않고 ‘남은 예산’에 가깝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지방자치법은 재정을 균형 있게 써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다. 돈이 있는데도 안 쓰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균형 있게 재정을 써야 한다는 원칙에는 꼭 ‘너무 낭비하지 말라’는 의미만 있지 않다. ‘너무 남기지 말고’ 시민에게 거둬들인 세금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을 만큼 써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예비비가 쌓인 지자체는 적극적으로 예산을 써 시민의 피해 지원에 나섰을까. 주간경향은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예비비 결산자료를 조사했다. 서울(25개)과 경기(31개)의 기초지자체,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 6대 광역시의 기초지자체 49곳의 예비비 내역을 분석했다. 각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2020년도 결산서를 찾았고, 결산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지 않은 일부 지자체에는 별도로 요청해 확인했다. 분석이 어렵게 결산서 파일에 키워드 검색을 막아놓은 곳도 보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지자체들도 할 말은 있고, 저마다 사정을 이야기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계획된 대형 사업을 못 했다”(부산 A구)거나 “코로나19로 출장 혹은 대면업무가 줄어 예비비가 누적됐다”(서울 B구)는 항변이 가장 많이 나왔다. “예비비에 쌓아두지 않고 또 다른 항목(기금)으로 남는 예산을 돌려둔 지자체가 많은데, 이들은 왜 지적하지 않느냐”는 주장(경기 C시)도 들렸다.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코로나19로 출장을 못 가 돈이 쌓였다면, 적어도 그만큼은 코로나19 대응에 쓸 수 있었던 것 아닌가”(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라는 지적처럼 시민이 낸 세금이 재난상황에 적극적으로 쓰이지 않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코로나19 속 남는 예비비

예비비는 크게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로 나뉜다. 일반회계 예비비는 비교적 지자체에 재량권이 주어진 예산이라면, 특별회계 예비비는 특정한 목적에만 쓸 수 있는 계정에 남게 된 돈이다. 일반회계 예비비는 지자체 의지에 따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나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 지원에 쓸 수 있다. 특별 예비비는 ‘OO지구 개발’처럼 특정 쓰임을 목적으로 한 예산 중 남은 돈이다. 대부분 지자체 조례에 특별 예비비 용도를 규정해놨다.

지자체가 코로나19에 적극 대응했는지 가늠하기 위해 주목할 항목은 일반회계 예비비다. 일반회계 예비비가 쌓였다면 지자체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예산을 적극 활용하지 않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시민 입장에선 세금을 내고도 마땅히 받아야 할 행정서비스를 돌려받지 못한 셈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서울 25개 자치구별 일반회계 예비비를 보면, 100억원 넘게 예비비를 남긴 곳이 발견된다. 서울에선 중랑구(261억4000만원)가 예비비를 가장 많이 남겼다. 성북구(136억1490만원)와 강서구(166억7615만원)의 일반회계 예비비가 뒤를 이었다. 지방재정법은 일반회계 예비비는 전체 예산의 1%에서 편성하도록 한다. 중랑구는 2020년 예산이 8070억원이었는데, 일반회계 예비비가 전체 예산의 3.24%(261억4000만원)였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는 2020년 이천(389억936만원원), 광명(346억1968억원), 하남(338억4871만원)순으로 일반회계 예비비가 많이 남았다. 이천과 하남은 2020년 5차례 추경을 했다. 광명은 같은 해 6차례 추경을 진행했다. 추가예산 편성을 통해 코로나19 확산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에게 세금을 돌려줄 기회가 있었지만, 일반회계 예비비를 여전히 남겨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20년 상반기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피해를 본 대구의 자치구들도 일반회계 예비비가 쌓였다. 동구(359억9582만원), 서구(216억2159만원), 남구(277억2587만원), 북구(223억7591억원)에서 일반회계 예비비를 모두 200억원 넘게 남겼다. 달성군만 남은 예비비가 없었다. 인천의 동구, 연수구, 남동구, 부평구, 계양구의 일반회계 예비비 또한 100억~200억원 사이에 분포했다. 부산 금정구(481억원), 남구(416억원)에서도 적지 않은 일반회계 예비비가 남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재정안정화기금도 남는다

달성군처럼 상대적으로 일반회계 예비비를 많이 남기지 않은 지자체도 보였다. 서울에서는 종로(3억3357만원), 강남(4억2000만원), 성동(12억5000만원), 마포(17억1120만원)의 일반 예비비가 적었다. 은평구는 일반회계 예비비가 ‘0’이었다. 경기에서는 연천, 여주, 의왕, 양주, 의정부, 안양, 안산의 일반회계 예비비가 ‘0’이었다.

일반회계 예비비의 절대액이 적다고 해서 지자체가 예산을 적극적으로 썼다고 단정짓긴 어렵다. 예비비가 아닌 다른 항목에 남는 돈을 옮겨놓은 지자체도 최근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이 대표 사례다. 강남의 올해 8월 기준 회계를 보면 ‘재정운용(안정화)기금’에 439억1400만원이 쌓였다. 광진구(377억6700만원)나 관악구(164억1100만원)의 재정안정화기금도 적지 않게 모였다.

재정안정화기금은 2016년 11월 도입됐다. 세입 감소나 지역 경기침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쌓아둔 돈이다. 예비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 목적이 명확한 편이다. 지자체 의지만 있었다면, 코로나19 국면이 재난 상황임을 감안해 재정안정화기금을 ‘지역 경기침체 시 사용’ 목적에 맞게 적극 써도 됐다.

사용처가 정해진 특별회계 예비비에도 함정은 있다. 일반 예비비가 3억원 정도에 불과한 서울 종로구의 전체 예비비는 284억1900만원에 달한다. 특별회계 예비비가 많이 남아서다. 2019년 말 지자체 특별회계 예비비 잔액은 약 6조원이었다. 종로구의 특별회계 예비비는 280억8000만원인데, 이중 ‘주차장 특별회계’에 278억8400만원이 쌓였다. 종로 외에도 서울 중구(344억5400만원), 용산구(214억6850만원), 마포구(502억6132만원), 서초구(255억8300만원), 송파구(339억8387만원)에서 특별회계 예비비 중 주차장특별회계 규모가 컸다.

지난 5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 / 연합뉴스

지난 5월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특위-서울시 구청장 정책현안 회의 / 연합뉴스

주차장특별회계에는 주차장 건설, 관리, 주차단속 등 주차 업무에 쓰일 목적의 돈이 쌓인다. 주로 주차 과태료가 주차장특별회계로 간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서울은 추가로 주차장을 지을 공간이 부족해 주차장특별회계에서 큰돈 쓸 일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용도가 제한적이라고 하지만, 특별회계 예비비를 코로나19처럼 위급상황에서 사용할 방법은 있다. 2020년 5월 지방재정법이 개정되면서 특별회계 예비비를 융자 형태로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됐다. 특별회계 예비비 용도를 한정해놓은 조례를 개정해도 폭넓게 사용이 가능하다.

예비비는 왜 많이 남을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자체 곳간’만 같아라?

2019년보다 코로나19가 퍼진 2020년에 전체 예비비가 더 남은 지자체도 보였다. 연도간 차이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적극적으로 지자체 재정을 쓰지 않은 정황 중 하나다. 2020년 서울 자치구 예비비와 나라살림연구소에서 제공받은 2019년 예비비를 비교해보니, 서울 광진, 성북, 마포, 영등포에서 2020년 예비비가 전년 대비 10% 이상 늘었다.

지자체 예비비가 불어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이상민 연구위원은 “7년 전쯤부터 전국에 예비비가 쌓이기 시작했다. 행정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예비비에 그대로 담긴다”고 했다. 지자체는 세수 예측을 정밀하게 하지 않은 채 보수적으로 예산을 편성한다. 예산이 남으면 6~7차례씩 혹은 그 이상 추경을 진행한다. 중앙정부와 달리 한국 지자체는 경기가 나빠서가 아니라 예산이 남아 추경을 한다.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한 가게에 전기사용계약 해지 예정 알림장이 여러장 붙어 있다. / 이석우 기자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 한 가게에 전기사용계약 해지 예정 알림장이 여러장 붙어 있다. / 이석우 기자

추경을 해도 예비비가 많이 남는 이유로는 크게 두가지가 거론된다. 서울에선 자치구 사이 ‘눈치보기’ 의혹이 있다. 25개 중 24개 자치구 구청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어서 서로 의견을 한쪽으로 모으기 쉬운 구조다. 예를 들어 “서울시 구청장협의회를 통해 합의되지 않으면 코로나19 지원정책도 독자적으로 진행하길 꺼리는”(이기중 관악구의원) 식이다. 서울은 올해 부동산가격 상승으로 세수가 더 걷혀 예비비를 더 지출할 여력이 되지만, 서로 눈치보기가 작동한다면 이번에도 예비비 사용은 어려워진다.

예비비를 누구에게, 어떻게 쓸 방법을 떠올리지 않아 (혹은 못 해) 적극 집행하지 않기도 한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직후에는 사실 어디에, 어떻게 예비비를 써야 할지 잘 몰랐다”(대구 D시)는 이야기처럼 예비비를 위기 상황에 쓰려면 ‘적극 행정’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자체장의 의지와 공무원들의 역량이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부각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적 없는 ‘목적성 예비비’ 규제해야
‘균형재정 원칙’ 따라 초과수입 발생 시 추가지출 계획 세워야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원


국가재정에 오해가 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가정 살림을 통해서 국가재정을 비유적으로 이해하면서 생긴 오해다. 그러나 가정 살림, 중앙정부 살림, 지방정부 살림 운용의 원칙은 모두 다르다. 가정은 경기가 안 좋으면 지출을 줄여야 한다. 수입이 늘면 지출을 늘릴 수 있다. 월급이 올라 소고깃집에서 외식하는 것이 가정 살림의 행복이다. 중앙정부는 반대다. 경기가 안 좋으면 오히려 지출을 늘려 적자재정을 펼쳐야 한다. 내수경기를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회복되면 흑자재정으로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마련하는 것이 원칙이다.

지방정부는 어떨까? 지방재정은 균형재정이 원칙이다. 흑자도 안 되고 적자도 안 된다. 수입만큼만 지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1조원을 벌면 1조원을 쓰고, 2조원을 벌면 2조원을 써야 한다. 거꾸로 말하면 1조원만 필요하면 1조원만 걷어야 한다. 중앙정부가 세금을 걷고 지출하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부의 재분배 역할, 경기조절 역할 등이 있다. 그러나 지방정부가 세금을 걷고 예산을 지출하는 이유는 원칙적으로 행정서비스 제공이다. 거꾸로 말하면 시민이 지방정부에 세금을 납부하는 이유는 받은 행정서비스 비용을 지불한다는 의미다.

지방정부 균형재정 원칙은 지방회계법이나 지방재정법이 아닌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원칙이다. 지방정부 균형재정 원칙은 재정운용의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지방자치제도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내가 지방정부에 돈을 내면 지방정부는 내가 낸 것만큼 행정서비스로 되돌려주는 것이 지방정부 재정운용의 원칙이다.

그런데 지방정부에 지나치게 많은 돈이 남아 있다. 2019년 말 기준 32조원의 남는 돈(순세계잉여금)이 존재한다. 아무런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그냥 지자체 통장에 존재하는 돈이 32조원이다. 민간에 있으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내수경제에 보탬이 될 돈을 지방정부가 흡수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 ‘돈맥경화’를 일으키고 있는 돈이다.

물론 행정을 하다 보면, 어느 정도 돈이 남는 것은 당연하다. 초과수입이 생기거나 불용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예비비도 편성해야 한다. 만일의 사태가 생기지 않았다면 설정해놓은 예비비는 그대로 남게 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다. 적절한 수준의 예비비는 당연하지만, 허용범위를 벗어난 예비비 설정은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원칙적으로 예비비는 일반회계의 1% 이내에서 편성해야 한다. 그러나 재난 대비 등 특정한 목적을 지정한 목적성 예비비는 1% 범위 밖에 존재한다. 문제는 이런 목적성 예비비의 설치 목적이 그 목적으로 사용할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실질적으로는 발생한 수입에 맞춰 지출사업을 편성하지 못하거나 안 할 금액을 그냥 지출하지 않기 위한 용도로 쓰인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조금 설명이 더 필요하다.

중앙정부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이유는 메르스나 코로나19 같은 추가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면 지방정부가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이유는 초과수입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균형재정 원칙인 지방정부는 초과수입이 발생하면 그만큼 지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추가수입만큼 지출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이때, 추경에서 예비비를 증액한다. 추경 때 예비비를 증액한다는 의미는 균형재정 원칙을 어기고 초과수입을 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행정서비스에 대한 비용은 받았으나 행정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목적 없는 목적성 예비비를 규제해야 하는 이유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김원진·김서영 기자 onejin@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