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폭넓게’ 아닌 ‘깊게’ 주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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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찬 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인터뷰

재정은 종종 ‘곳간’으로 비유된다. 곳간의 사전적 의미는 ‘물건을 간직해 두는 곳’이다. 챙겨야 할 무언가를 보관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지난 9월 6일 국회에서 국가재정을 두고 “나라 곳간이 비어간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곳간을 금칙어로 설정해야 한다. 재정담당자조차 ‘쌓아두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곳간 프레임에 갇혀 국가재정은 무조건 쟁여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미다.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과감한 증세와 함께 확장재정을 오래도록 주장해왔다. 2018년 4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으로 취임한 뒤에도 증세와 확장재정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연구원장 퇴임 직전인 지난 5월 24일에는 “2022년 대선 이후 한국 경제는 증세가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후보들은 세금을 더 이상 기피공약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 종합부동산세도 “과세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찬 교수를 지난 9월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2시간가량 이어졌다. 김유찬 교수는 일부 언론이 ‘슈퍼 예산’이라고 비유한 내년도 예산을 두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대적인 확장(재정)이라고 보기 어렵다. 올해 본예산과 추경을 다 합치면 내년도 예산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한국 정부의 재정운용을 어떻게 보는가.

“미국이나 일본, 영국, 독일 이런 나라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한 10% 이상을 재정으로 썼다. 2020년 통계만 봐서 그렇다. 2021년에도 큰 규모의 지출이 있었다. 우리는 2020년 기준으로 3% 수준이다. 추경 규모가 그렇다는 것이며, 이중 상당 규모는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이뤄졌다. 결론적으로 신중한 수준의 확장재정이다. 충분한 수준의 확장재정정책을 시행한 것은 아니다. 이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부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과감히 돈을 풀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기획재정부가 어깃장을 놓는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확장재정을 하고 싶어도 기재부의 반대로 못 한다는 뜻이다. 기재부는 보통 국가부채를 우려하며 재정건전성을 주장하는데, 기재부 반대 때문에 재정확대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재부는 재정을 책임지고 담당하는 입장에서 그런 의견을 낼 수 있다. 실제로 반대도 하고.”

-최종 의사결정은 결국 청와대에서 하는 구조인데.

“기재부는 실무부서일 뿐이다. 청와대와 국회는 경제학자들의 의견, 기재부 의견을 들어가며 결정을 내린다. 장기적으로 국가경제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실무부서(기재부) 반대를 무릅쓰고 정치적 결정을 하는 것이다. 실무부서는 거기에 따라야 한다. 예산 결정은 최종적으로 정치적 결정이다. 물론 정치적 결정이라 하더라도 경제적 합리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 결과는 정치권에서 책임질 일이다. 안 좋은 결과는 선거를 통해 심판받게 된다. 이게 민주주의 정부가 돌아가는 과정이다.”

-지금 청와대도 신중한 확장재정에 동의하는 것 같다.

“기재부가 정치권의 결정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도 분명 있지만, 모든 결정은 실무부서 의견과 청와대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합의해 이뤄진다. 최근 신중한 수준의 재정확장, 그러니까 내년도 예산안도 전부 청와대와 기재부의 최종 합의가 이뤄지고 나서 결정된 것이다. 크지 않은 수준의 확장재정을 청와대에서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채무를 우려했기 때문일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속에서 여러 번 추경했고, 국가부채가 늘어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히 재정은 건전한 편이다. GDP의 50% 정도가 국가부채인데, 이는 선진국이라 불리는 여러 나라에 비해도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거기다 우리나라 국가부채에는 금융성 부채비율이 40% 정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러한 성격의 국가부채가 거의 없다. 금융성 부채는 금융자산을 끼고 있는 부채다. 최소한의 리스크는 있지만, 자산과 부채가 상쇄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는 성격의 부채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나라빚’ 증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세금이 들어오는 것보다 정부가 돈을 많이 쓰면 상대적으로 재정이 나빠지는 것은 맞다. 중요한 것은 재정 자체가, 재정건전성 자체가 경제 운용의 유일한 목적과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위기 시기에 재정확장으로 경제가 활성화되면 세수입이 늘어 재정확장을 안 했을 때에 비해 미래에 재정상태가 오히려 더 나아질 가능성도 있다. 재정이 경제활성화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면 돈을 많이 쓰는 것이 맞다. 재정은 국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2년 예산안 및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2022년 예산안 및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부채도 많지 않고, 경제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과감한 재정정책을 써도 될 것 같은데.

“자신 있게 ‘돈을 이곳에다 쓰자’ 이런 제안을 충분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중한 확장재정으로 의견이 모이지 않았나 싶다. 여러 진지한 경제학자들도 돈을 더 써야 한다고 말을 많이 하는데, 정부가 움직이려면 더 들어가는 돈이 구체적으로 어떠어떠한 항목에 쓰여야 한다는 데까지 답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예산이 편성된다. 20조원을 더 쓴다고 하면, 그럼 20조를 어디에 쓸 거냐. 환경 부분이라면, 환경의 어떤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몇천억원을 어디에 쓰고, 어떻게 쓰고. 이런 것들이 아이템이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작업에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국가재정을 통한 자영업자 지원은 정책 아이템이 꼭 필요한 정책 영역은 아닌 것 같은데.

“정부 결정으로 영업 제한이 이루어진 이상 적절한 보상은 뒷받침돼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으면, 위기와 더불어 드러나게 마련이다. 자영업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 중 하나다. 다만 자영업자를 돕거나, 재난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재난지원금을 더 준다고 할 때, 돕는 방법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자영업 종사자의 숫자가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너무 많다. 기업이 수익극대화를 위해 고용을 필사적으로 줄이면서 해고된 이들이 자영업자로 내몰렸다. 특수고용노동자라 불리는 보험판매 종사자도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와 관련된 공적 데이터가 여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게 많다.”

-다른 나라의 정책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주요 국가에선 2020년 3월부터 자영업자에게 전격적인 지원을 했다. 지원에는 재정이 대거 뒷받침됐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 이런 나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험이 있었다. 재정을 확 풀지 않으면 오히려 경기 침체가 길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로나19가 터지고 난 직후부터 재정을 과감하게 썼다. 다만 지원의 방법론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외국에서 자영업자 지원이 심플한 것처럼 보이지만, 나라마다 맥락이 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해고가 쉬워 경제위기 상황에서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일률적으로 지원금을 줄 명분이 있다. 반면 독일은 해고가 어려우면서 노동-고용 체계가 잡혀 있다. 조업 단축을 하면 지원금을 주고, 자영업자의 상황도 대체로 파악이 가능하다. 공적 데이터가 쌓여 있다는 의미다. 이럴 때 자영업자 지원도 수월해진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자영업자를 지원하려면 어떤 방법을 택했어야 할까.

“재난지원금을 ‘폭넓게’가 아니라, ‘깊게’ 주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진짜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재난지원금 지급대상에 포함될 것이어서, 조금 깊게 지원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재난지원금 하위 88%라는 것은 타협이다. 100% 다 줘야 한다는 쪽, 어려운 사람에게 많이 줘야 한다는 쪽의 의견 사이에서 정한 것이다. 하위 50% 정도에 매달 50만원씩 주는 방향이 어떨까 싶다. 하위 50% 중에서도 재산세 과표가 4억원을 초과하거나, 금융소득이 200만원 이상이 있으면 제외하는 거다. 금융소득 200만원이면 금융자산이 대체로 1억원은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분들 빼고 정말 힘든 분들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50조~60조원 더 투입해 좁고, 깊게 지원을 해도 우리 재정에는 문제가 없는 수준이라고 본다.”

-자영업자 손실보상제가 지난 7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입법이 아닌 정책으로 풀었어야 했다는 지적이 있다.

“법으로 만든 것은 관료나 국회에서 쉽게 건드리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법으로 만들면 보상액을 충분하게 하진 못할 가능성이 크다. 폭넓고, 깊게 지원하려고 한다면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 법제화하면 좀 지원의 정도와 범위가 약하게 가는 부작용도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정책적으로 해결했다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지원액이나 범위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투입할 재정이 늘어난 건 사실인데, 정작 증세 논의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증세는 꼭 필요하다고 본다. 업종별로 보면 경제위기 통해 오히려 이익을 많이 누리는 곳도 있다. 소득세와 법인세, 상속증여세 그리고 재산세 분야에서 증세 여력은 충분하다. 한쪽에서는 엄청 고통받고 있는데. 재난상황에서 사정이 좋아진 쪽은 이익을 나눠야 할 책임이 있다. 사회 연대 차원에서도 가야 할 방향인데 정치권은 선거를 앞두고 증세 얘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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