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탈레반

(3)새롭지 않은 탈레반의 새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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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의 새 내각이 지난 9월 7일 발표됐다. 탈레반이 예전보다 여성에게 유화책을 쓸 것이라는 서구사회의 기대와는 달리 33명 전부 남성으로 구성됐다. 탈레반 강경파가 내각을 완전 장악한 형태다. 이번 내각의 최고지도자로 호명된 사람은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이다. 1961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2016년부터 탈레반을 이끌고 있다. 그는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정치, 종교, 군사 분야 등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한다. 신정정치를 지향하는 새 내각은 샤리아(이슬람 원리주의) 이슬람 율법학자인 그를 최고지도자로 내세우며 다시 한 번 이슬람 샤리아 율법이 근간이 되는 국가를 표명한 것이다. 지난 20년간 탈레반은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은신한 채 활동해왔다. 아쿤드자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이번 내각을 발표하며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새 정부 구성 발표 직후 성명을 내고 “앞으로 아프간의 모든 삶의 문제와 통치 행위는 신성한 샤리아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새 내각 구성원들이 샤리아를 수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모든 국민에게 약속한다”고 말했다.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자국 문제에 개입하는 파키스탄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탈레반의 한 대원(왼쪽)이 이를 감시하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여성들이 자국 문제에 개입하는 파키스탄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탈레반의 한 대원(왼쪽)이 이를 감시하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과거 탈레반 정부의 정통성 잇기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이어진 이전 탈레반 정부도 샤리아 율법을 앞장세운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였다. 특히 여성에 대한 가혹한 핍박을 한 정부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쟁 명분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번 탈레반의 새 내각이 샤리아 율법을 내세우고 율법학자를 최고 지도자로 내세운 것은 과거 탈레반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보이는 대목이다. 미국과 평화협상을 하는 동안 주로 나타나며 서구사회에 새로운 ‘탈레반의 얼굴’이라 불리던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는 제1부총리로, 그전 탈레반 정부에서 외무장관과 부총리를 맡았던 하산 아쿤드는 총리로 발표됐다. 과거 탈레반 정부의 주요인사가 새로운 내각에 기용된 것 또한 이전 정부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또한 카타르 도하에서 탈레반 정치사무소 고위 간부였던 압둘 살람 하나피가 제2부총리가 됐다.

[돌아온 탈레반](3)새롭지 않은 탈레반의 새 내각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은 카불을 장악한 이후 20년 전과 다른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서구사회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샤리아 율법에 맞춘 탈레반 정부가 다시 탄생한 것이다. 그동안 체면과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탈레반의 습성을 봐서는 8월 31일, 미군이 철군을 완료한 시기에 맞춰 그다음 날인 9월 1일 탈레반의 새 내각이 발표돼야 한다. 이렇게 내각이 늦게 발표된 것을 두고 외신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탈레반 내부균열이 시작됐다는 구체적 소식도 전해졌다. 탈레반 내부에도 온건파와 강경파가 있는데 이 두 세력이 내각 구성을 앞두고 의견충돌과 더불어 서로 총을 쏘는 상황까지 갔다는 것이다. 탈레반 새 내각이 발표되고 가장 의아한 것은 총리가 3명이나 발표된 점이다. 항간에는 탈레반 세력 안에 3개의 분파가 힘을 겨뤘으리라 짐작하고 있다.

새 내각에 포함된 테러범

이 세력 중에 하카니 네트워크는 강경한 탈레반 연계 군사조직이다. ‘하카니’라는 말은 그들이 배출된 마드레사에서 따온 말이다. 하카니 네트워크의 조직원들은 이름에 하카니를 붙여 자신의 출신을 나타낸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하카니 네트워크는 하카니 형제의 아버지 잘랄루딘 하카니가 설립했다. 1990년대 후반 탈레반과 손잡은 극단주의 조직으로, 2017년 150명의 목숨을 앗아간 카불 트럭 폭탄 테러 등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파키스탄 탈레반과 손잡고 국경 일대에서 조직원이 최대 1만2000명으로 추정되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하카니 네트워크가 조성됐다. 미국 정보기관도 2004년 즈음부터 하카니 네트워크의 박멸을 위해 파키스탄 국경 일대에 드론을 이용한 공격을 시작했다. 그 공격으로 하카니 네트워크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많이 사망했다. 그런 하카니 네트워크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고, 강경한 분파이기도 한 시라주딘 하카니는 이번 새 내각에서 내무장관을 맡아 검찰과 경찰을 이끌게 됐다. 이는 정말 우려되는 일이다. 시라주딘 하카니는 미 정부와 연방수사국(FBI)의 최우선 수배 대상 중 하나로 현상금은 500만달러(58억1000만원)에 달한다. 그는 2008년 아프간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 암살 기도 계획에도 관여했으며, 각종 테러사건의 기획자로 알려졌던 인물이다. 즉 테러범이 경찰과 검찰총장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미국으로서는 경악할 상황이다.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피사주에서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항복한 저항군 대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카피사 AP=연합뉴스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피사주에서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항복한 저항군 대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카피사 AP=연합뉴스

이번에 부총리직을 맡게 된 압둘 가니 바라다르도 테러 용의자였다. 그는 미군에 쫓겨 거의 궤멸하다시피 한 아프간 탈레반을 파키스탄으로 이동시켜 파키스탄 탈레반 조직 안에서 훗날을 도모한 인물이다. 또한 칸다하르를 거점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도로변 폭탄을 설치해 미군과 연합군을 살해하는 작전에 돈과 사람을 제공하던 거물급 탈레반 인사다. 그가 유명한 것은 물라 모하마드 오마르와 탈레반을 창설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즉 탈레반 창시자이며 미군을 피해 20년간 숨어지내다 이번에 극적인 부활을 한 셈이다. 이런 사람이 총리급이 됐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일이다.

내부 갈등에 외부 저항까지

3명의 총리 중 가장 대립적인 관계를 갖는 사람이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하카니 세력이다. 내각 발표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여러 증언이 나왔는데 그중 두 세력 간에 총격전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ANI통신 등 인도 매체는 탈레반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 측과 또 다른 탈레반 간부 아나스 하카니 측 대원들이 지난 9월 3일 밤 수도 카불에서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총격전이 발생했다고 지난 9월 6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 9월 4일 트위터를 통해 친저항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인 북부동맹의 트윗을 소개하면서 공개됐다. 북부동맹은 트위터를 통해 “바라다르는 그의 대원들에게 판지시르에서 싸우지 말고 카불로 복귀하라고 명령했다”며 “바라다르는 심하게 다쳐 치료를 위해 파키스탄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각 발표 후 나타난 바라다르는 건재했다. 카불 톨로TV의 익명을 요구한 한 기자는 “두 세력 간 하급 병사들끼리의 작은 총격전이었다. 그 일이 알려지며 크게 비화한 듯하다. 하지만 먼 미래에 두 세력 간의 동거가 큰 사건을 일으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파키스탄대사관 인근에서 반 파키스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지난 9월 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파키스탄대사관 인근에서 반 파키스탄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총을 든 탈레반 대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최초 보도는 아프간 소규모 매체인 판지시르 옵서버의 뉴스를 인용해 인도 매체들이 보도했다. 하지만 판지시르 옵서버는 북부동맹의 영향권 내의 매체라 선전전에 이용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탈레반과 북부동맹 모두 지금 판지시르가 서로 자기들 영향권 안에 있다는 주장하며 선전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탈레반은 지난 9월 6일 저항세력인 북부동맹과 아프간 국민저항전선을 몰아내고 판지시르 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선언했다. 이어 탈레반 SNS에는 탈레반 대원들이 판지시르 주정부 건물 앞에서 촬영한 사진이 올라왔다. 이 사진이 합성인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이를 두고 탈레반이 북부 상당 부분까지 진출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됐다. 하지만 북부동맹은 탈레반의 거짓선전이라면서 “판지시르는 넘어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누구 말이 사실일까. 현지 취재원을 통해 상황을 확인해봤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하는 판지시르 뒤로 힌두쿠시산맥이 있다. 이 산맥은 1년 내내 눈이 쌓일 만큼 높고 험준하다. 현재 북부동맹과 아프간 저항전선은 이 힌두쿠시산맥 북쪽에 있다. 즉 이 산맥을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 대원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미국 대사관 앞을 경비하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 대원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의 미국 대사관 앞을 경비하고 있다./카불 AFP=연합뉴스

되물림된 내전, 앞날은

탈레반 새 내각은 내부 갈등과 더불어 북부동맹 등 저항세력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에 IS-K(이슬람국가 호라산)가 동부에 버티고 있다. 이들은 IS의 아프간 지부로서 지난 카불공항 테러의 주범이다. 탈레반은 이들과 테러와의 전쟁에도 직면해 있다. 탈레반이 한 국가의 내각으로서 정상적인 기능을 하기에는 첩첩산중이다. 이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바로 새 내각의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모하마드 야쿠브(31세)다. 그는 과거 탈레반 정부의 수장이었던 물라 오마르(2013년 사망)의 아들이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이 났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그는 20년이 지나 탈레반 국방부 장관이 됐다. 이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아하마드 마수드(32)는 과거 북부동맹을 이끌던 전설적인 아프간 영웅 샤 마수드(2001 암살)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사망할 당시 열두 살 꼬마였던 그는 뒤를 이어 북부동맹의 지도자가 됐다. 두 2세의 전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내전의 대물림이라는 아픈 역사가 시작됐다는 의미다.

<김영미 다큐엔드뉴스 코리아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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