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오래돼 더 귀한’ 골동품을 닮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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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는 이름부터가 오랜 시간의 흔적을 보여준다. 조선을 세울 무렵 무학대사가 동대문 인근부터 십리를 걷고 살폈다는 설도 있고, 인근 십리가 논과 밭으로 펼쳐진 땅이라 그리 불렀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아직도 ‘답십리’라는 옛 이름을 동명에 달고 있는 곳이다. 그 이름 덕인지 서울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을 나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골동품을 취급하는 고미술 상가다.

답십리는 전문 상가 지역과 주택가가 붙어 있다.

답십리는 전문 상가 지역과 주택가가 붙어 있다.

답십리에 고미술 상가가 들어선 것은 1970년대부터라 한다. 1980년대 청계천을 정비하면서 황학동과 아현동, 인사동과 이태원 등지에 있는 골동품 상인들이 모여들어 고미술 전문상가를 이루었다. 이면 도로의 주상복합건물 여러채에 고미술 상가가 연이어 있다. 길을 걸으면 작은 석상부터 돌탑이며 오래된 장롱과 문짝, 하다못해 짚으로 짠 멍석과 망태기까지 옛 물건을 두루 볼 수 있다.

상가 안에는 각기 전문적인 가게들이 있어 어떤 곳은 가구를, 또 다른 곳은 그림과 생활용품 등을 취급하고 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장사했다는 반백의 상인은 “골동품이라고 반드시 비싼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작은 소품으로 옛사람들의 자취를 감상할 수 있는 물건도 있고, 향수를 돌아보기 위해 등잔 같은 소소한 것을 찾으러 오는 분도 있다”고 말한다. 바깥에 내놓은 물건의 경첩을 고치느라 분주하고 그 옆에서는 소반에 쌓인 먼지를 닦는 안주인도 보인다. 그는 요즘에는 골동품도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건이 많다고 했다. 출처가 알쏭달쏭하고 진위도 불분명한 물건도 없지는 않다고 귀띔한다.

사라지는 옛 골목들

상인들은 이곳 분위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가고 있다. 요즘엔 또 경매시장으로 거래가 많이 넘어갔다”라고 전한다. 먹고사는 데 필수인 상품도 아니고 단지 기호와 취향, 감상을 위한 물건이라 전체 경제의 분위기가 시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상가마다 가게에 가득가득한 골동품은 세월의 먼지가 쌓일수록 그 값어치가 올라가는 역설적인 면도 있다. 대부분의 상인은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을 때보다 답십리에 모인 것이 장사와 영업에는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고미술 상가 단지에서 작은 길 하나를 건너면 답십리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상권이 있다. 건축현장과 기타 산업현장에 필요한 자재 공구 전문상가이다. 을지로에 있던 가구 장식 가게들이 답십리에 둥지를 튼 지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옛 장식장이나 문갑 경첩에 황칠을 한 장식들을 황물이라 하는데 골동품 상가와 더불어 황물거리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지금은 황물의 시대가 아니다. 그를 대체한 기타 건축 관련 자재들과 페인트, 공구 등을 파는 가게들이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황물은 황물로라는 거리의 이름만 남겼다. 골목을 걸으면 온갖 플라스틱 물통과 철물, 각종 자재를 취급하는 가게를 볼 수 있고, 길에는 그것을 실어 나르는 차가 부지런히 드나든다. 대부분 도매업자라 거래되는 물량도 상당해보였다.

건축자재시장이 답십리 황물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건축자재시장이 답십리 황물거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거리 뒤로 아주 오래된 답십리 골목길이 있다. 길은 좁고 반듯한 대신 집을 따라 휘어지고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세심하게 꾸민 화단과 화분들이 이 골목 사람들의 애착을 보여주고 있다. 1980~1990년대에 지은 다세대주택과 다가구주택이 골목의 주인이다. 한두채씩 오랜 시간을 견딘 블록집도 남아 있다.

한낮에도 고요한 골목길에서 이곳 사람들이 일터로 나가 부지런하고 바삐 산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간혹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마중하는 노인이 보이고, 택배 배달부가 부지런히 다세대주택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낮은 주택지 뒤편으로 답십리의 또 다른 주거지역인 아파트촌이 우뚝 서 있다.

답십리에서 전농동으로 넘어가는 긴 고갯길이 있는데 이곳은 통칭 촬영소고개로 부른다. 1964년부터 1970년까지 연합영화사 촬영소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곳을 아직도 답십리 촬영소라 부르고 있다. 동대문구체육관과 동답초등학교 인근에 촬영소가 있었다. 지금은 촬영소 고갯길 일대를 영화문화의 거리로 이름 붙이고, 영화전시관과 답십리 영화미디어아트센터가 들어서 옛 기억을 이어가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1970년대부터 자리 잡았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1970년대부터 자리 잡았다.

답십리 대부분 지역은 아파트가 점령했다. 그 확장의 기세는 멈추지 않아 작게 남은 골목길들도 재개발의 깃발 아래 사라지고 있다. 답십리에서 족발골목으로 유명했던 현대시장 일대도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시장으로 통하는 길에는 출입을 금하는 표지판이 붙었고 오래된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골목을 밀고 6동의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아파트는 아무리 지어도 모자라고 골목은 자신의 영역을 차츰 내주고 있다.

자동차 부품, 사교춤의 중심지

답십리에는 또 다른 상권이 있는데 자동차 부품 상가다. 대로변으로 길게 여러동의 전문상가가 있고, 골목 곳곳에 그보다 많은 부품가게가 있다. 최신 자동차의 부품부터 단종된 차량의 부품까지 무엇 하나 구할 수 없는 것이 없는 곳이다. 특히 골목에는 없는 부속도 직접 기계로 깎아주는 부품 깎는 장인들이 숨어 있다. 어두운 공간을 밝히는 조명 아래 반백년도 더 된 기계들이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쇠를 깎아 부속을 만들어낸다.

오토바이를 타고 인근 업체에 배달하고 온 부품 가공공장 주인은 “규격만 알면 다 깎아 만들 수 있다. 이 골목에서 일한 지 40년이 넘었고 단골은 해외에도 있다. 전화로 차량 연식과 부속 이름만 불러주면 뭐든지 맞춰 만들어준다”라고 했다.

골목 곳곳에 아랍문자로 간판을 건 부품가게들이 줄줄이 박혀 있다. 시리아, 이라크, 이란에서부터 중앙아시아 출신들이 자동차 부품 골목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이들은 중동과 구소련 일대에 수출된 대우자동차 부품을 비롯해 중고차로 팔려간 승용차와 화물차 부속까지 e메일과 전화로 주문을 받아 컨테이너로 실어 보내는 큰손들이다. 덕분에 일대에는 이슬람 음식을 파는 식당도 들어섰다. 식품점은 율법에 따라 생산된 할랄 푸드를 취급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닌 세계적이라는 사실은 답십리 뒷골목에서도 느낄 수 있다.

답십리 골목은 1980년대 이후 도시 주택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답십리 골목은 1980년대 이후 도시 주택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상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상인은 “여기도 많이 줄었다. 하남에 부품 상가가 새로 생겨 그곳으로 옮긴 이들이 많아졌다. 수십년 인연 맺은 거래처들이 이곳에 있어 중고 부품점은 자리를 옮기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신품 부속 가게들은 어디 있으나 마찬가지라 많이 넘어갔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래도 재개발한다는 말은 없어 마음 편히 장사할 수 있다고 했다. 상가 안은 온통 부품 박스가 가득 쌓여 있고, 급하게 부품을 나를 오토바이 택배원들이 주문을 기다리며 앉아 있다.

자동차 부품 골목에서 천호대로로 빠지는 길목에 무학성카바레가 있다. 답십리에서 장한평까지 천호대로 일대는 우리나라 사교춤의 중심지라고 한다. 카바레뿐 아니라 각종 춤 교습소와 댄스복 전문점이 곳곳에 있다. 무학성카바레는 춤 좀 춰본 이라면 다 안다는 카바레의 전설적인 곳이다. 춤을 즐기는 이들이 줄어드는 추세라 평일에는 무료이고 주말에는 3000원의 출입료를 받는다는데 각종 경품행사를 내걸고 손님을 부른다. “여기는 아직 물이 좋다”는 것이 카바레 입구에서 만난 이가 전한 이야기다. 무학성의 자랑은 춤 실력 있는 손님들이 많아 춤을 배우기가 좋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 불나방 같은 인생이라 빛나는 조명 아래서 빙글빙글 춤을 춰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무학성카바레는 답십리의 명소 중 하나이다.

무학성카바레는 답십리의 명소 중 하나이다.

현대시장이 문을 닫았고, 동부시장도 채소가게 한곳만 남아 시장의 기능을 잃었다. 장바구니를 든 주민은 “근처에 대형마트가 있어 대부분 거기서 장을 본다. 전통시장에 가려면 길 건너 용답시장으로 간다”라고 했다. 답십리에서 천호대교를 사이에 두고 용답동이 있는데, 용두동과 답십리 일부를 합친 동네다. 그곳 골목은 아직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하철역과 이어진 널찍한 골목엔 상점들이 줄을 이어 상가를 이루고 좌우로 주택가 골목이 이어지고 있다.

답십리는 퇴근하지 않는다

대부분 반지하가 딸린 3층짜리 다세대주택이 이 동네 골목길을 채운다. 답십리 옛 골목보다는 한층 정비된 흔적을 반듯한 골목길 모습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정육점과 생선가게, 국숫집과 방앗간 그리고 반찬가게들이 골목시장을 이뤄 성업하고 있다. 오후 이른 시간에도 술 한잔을 탐하는 주당이 문 닫힌 술집을 기웃거린다. 떡 한팩에 1000원에서 2000원을 받는 떡집 주인은 “여긴 비싸면 안 팔린다. 방앗간 한 지 50년째”라고 했다. 가게 안에는 동네 주민이 앉아 무언가 그들만 통하는 속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골목 끝쯤 환전상이 있고 창문에 현장 기능공 시험 요강이 붙어 있어 이 골목에도 중국에서 온 건설노동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답동 상점가와 시장은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용답동 상점가와 시장은 활기를 잃지 않고 있다.

답십리 일대는 상가와 공장과 주택가가 섞여 있다. 높은 담을 친 아파트단지도 있지만, 대부분 골목길은 일터와 주택가가 서로 이어져 있고, 가게 위로 주택들이 함께 있다. 도시의 상업지대가 밤이면 텅 비어버리는 것에 비하면 이 일대 골목길은 밤이 돼도 귀가에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과 창문 넘어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상인들도 먼 곳에 집을 얻기보다 가게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두고 있어 일터와 쉴 곳이 지척에 있다. 덕분에 답십리 골목들은 오래된 샛길도 남아 있고, 도시 가족들의 활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도시가 새로워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적당히 지난 흔적을 간직하는 일도 나쁘지 않은 모습이다. 답십리 고미술 상가에 진열된 물건은 실용적인 기능은 잃었다. 문살만 남은 옛 문짝과 무덤을 지키던 석인을 이 시대에 어디에 쓸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것을 보면 아름답기도 하고 지난 시절의 문화를 배울 수도 있다. 골동품이 폐물 취급을 벗어나 나름 값진 이유다. 골동품은 세월이 지날수록 값이 오르는 법이니 골목을 싹 밀어 새로 집을 짓기보다 적당히 살려 가치를 높여가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답십리의 오래된 골목길을 걸으면 지난 시간과 현재를 만날 수 있다. 고미술 상가도 둘러보고 황물거리의 자재 골목도 걸으며, 용답시장에서 떡 한봉지를 사들고 돌아오는 일도 도시 골목을 걷는 재미다. 답십리 골목길엔 지나온 시간이 주는 위안이 남아 있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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