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생각한다

정유라와 조민 옹호의 대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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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가을, 대한민국은 얼굴도 모르는 두 학생의 성적을 두고 진실게임에 빠졌다. 입시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지지자들은 그의 딸 조민의 고등학교 성적이 상위 1%라며 의혹을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자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주광덕 의원은 조민의 국어 성적이 8등급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이에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입시전문가를 불러 조민의 텝스 성적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관해 긴 시간을 할애해 설명했다. 조국 전 장관의 지지자들은 나경원 전 의원 아들의 서울대 포스터 저자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자 바른미래당 이준석 최고위원이 “조국 전 장관 딸의 한영외고 성적 1% 설은 가짜였지만, 나 의원 아들의 미국 고등학교 수학 성적은 전교 1등이 맞다”며 성적 감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오늘을 생각한다]정유라와 조민 옹호의 대칭성

이 볼썽사나운 성적 포르노는 양측이 인증과 반박을 거듭하며 과열됐고, 급기야 출처 불명의 성적대조표가 돌아다니고, 생활기록부가 무단으로 유출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사람들은 서로 자기편 자식은 공부를 잘했고 상대편 자식은 공부를 못했다고 믿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학생의 성적이 어떻든 그것이 입시비리 의혹과 관련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성적이 좋은 학생의 부모가 그렇지 않은 학생의 부모보다 더 도덕적일 거라고 믿을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양측의 관심사는 진영을 뛰어넘어 한가지 질문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성적순 서열이 훼손됐는가?” 조국과 나경원의 이름을 가린다면 그들은 정확히 같은 믿음에 관해 말할 것이다. 원래 실력이 좋은 학생이었으니 과정이 어떠했든 그런 건 문제가 못 된다는 항변 말이다. 이유불문 시험점수가 높은 사람이 우대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믿음, 뛰어난 누군가를 위해 과정은 좀 훼손돼도 좋다는 관대함.

지난달 부산대가 조민의 입학 취소를 발표하자 김어준은 조민의 입학성적을 언급하며 “입학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데 대체 어떤 입학 사정의 업무가 방해받았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성적이 좋았으니 위조 자료 제출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원래 지지율이 높았던 박근혜씨를 위해 댓글공작을 벌인 원세훈은 왜 감옥에 갔을까? 지난 2년간 서류 위조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해온 김어준과 그의 지지자들은 왜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한 걸까?

2014년 국회 교문위에서는 여당 의원들이 입시비리 의혹을 받는 한 학생의 승마대회 수상실적을 줄줄 읊어대고 있었다. “이 선수가 얼마나 훌륭한 선수인지 보십시오”, “이렇게 훌륭한 선수인데 오히려 장려해야 할 선수를 죽이는 일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맹활약 덕에 정유라의 입시비리 의혹은 거대한 국정농단 게이트와 함께 2년을 더 땅속에 묻힐 수 있었다. 시험점수 뒤에 숨어 도덕적 파탄을 은폐한다는 점에서 정유라와 조민의 옹호자들은 한팀이다. 나는 그들이 왜 그렇게 열심히 싸웠는지 모르겠다.

<정주식 직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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