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미라클’ 아프간 조력자, 한국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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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 도운 아프간인들 안전 보장 취지… 난민 아닌 ‘특별기여자’ 자격 체류

8월 26일 오후 4시 27분 인천공항에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378명을 태운 한국군 수송기 KC-330이 도착했다. 이들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새벽 4시 53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공항을 출발해 약 11시간 만에 한국에 왔다. 전체 수송 예정 인원은 391명이었으나 현지에서 탑승 준비를 마친 378명이 먼저 들어왔다. 정부에 따르면 수송 대상자 중 영유아가 100여명이며 6~10세도 80여명이다. 절반 가까이가 10세 이하인 셈이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이 8월 26일 오후 공군 수송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연합뉴스

과거 한국을 도왔던 아프가니스탄 조력자들이 8월 26일 오후 공군 수송기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연합뉴스

이번 수송의 작전명은 ‘미라클(기적)’이다. 미군 철수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세력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거머쥔 아프가니스탄에서 삼엄한 경계를 뚫고 아프간인 76가구를 극적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신원 검증된 아프간인들 선발

한국 정부가 분쟁지역의 외국인을 대규모로 이송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이들이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코이카,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 등에서 근무한 한국의 ‘조력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외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은 현지에서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탈레반은 “통역 등 서방 국가를 위해 일한 모든 이들을 사면할 것이다. 어떠한 보복행위도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신에 따르면 곳곳에서 조력자에 대한 처형과 협박이 이어지고 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입국은 대한민국 외교사에 있어 인도적 고려에 따라 적극적으로 인력과 자산을 투입해 현지인들을 구출해온 첫 번째 사례다. 친구를 잊지 않는 국가로서 도의적 책무를 이행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에 들어온 아프간인들의 신원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들은 주로 의사,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통역, 강사, 행정 등 전문인력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아프간에서 짧게는 1~2년, 길게는 7~8년 동안 장기 근무한 분들이라 서로 잘 알고 있다”며 “채용 당시에도 신원조회를 철저히 했고 이송 전에도 전문가가 카불로 들어가 다시 체크를 했다. 위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만기 국방부 국방정책실장도 8월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검증된 사람으로 선발했기에 선발된 인원은 (탈레반과 연루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제로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일단 난민이 아닌 별도 자격으로 국내에 체류한다. 외교부는 이들이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라고 선을 그었고, 법무부는 국가유공자법상 특별공로자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특별기여자’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이들을 위해 법무부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기여가 있거나, 공익 증진에 이바지한 외국인’에게 체류자격(F-2)을 줄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법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원칙적으로 비자가 있어야 입국이 허가되지만, 이들에게는 공항에서 바로 단기방문(C-3) 도착비자를 발급한다. 이후 장기체류가 허용되는 체류자격(F-1)으로 변경해 안정적인 지위를 허용할 생각이다. 이어 취업이 자유로운 체류자격(F-2)을 부여해 자립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충북 진천 소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6주간 머무른다. 아울러 법무부는 국내에 체류 중인 아프간인 434명(8월 20일 기준)에게 인도적 특별체류 조치를 시행한다.

8월 26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하는 버스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8월 26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이 임시생활시설로 이동하는 버스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를 도운 아프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을 치밀한 준비 끝에 무사히 국내로 이송할 수 있게 돼 다행으로 생각한다. 국내 도착 후 불편함이 없도록 살피고 방역에도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유례없이 인도주의에 기반을 둔 결정을 내렸으나, 난민 수용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2018년 제주도로 들어온 예멘인 484명이 난민 신청을 하며 벌어진 1라운드에 이어 3년 만에 2라운드가 펼쳐지고 있다.

수용 측의 논리는 한국도 아프간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은 2001년 시작된 아프간전쟁에 비전투부대를 파병했고, 탈레반 축출 후엔 지방재건팀을 파견해 학교, 보건소, 병원 등을 운영했다. 난민인권네트워크는 “파병국으로서의 한국의 책임을 고려하면 당연한 조치”라며 “추가로 피란 조력이 필요한 인원이 있는지도 파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두 번째로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탈레반 치하에서 혹독한 처분이 예상되는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도움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8월 20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임산부가 있는 가족, 아동과 그 가족만이라도 받아들임으로써 국제사회가 연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난민 수용 둘러싼 갑론을박

난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답보 상태다. 2018년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는 응답은 49.1%였다. ‘찬성한다’는 39%는 그쳤다. 2020년 유엔난민기구와 한국리서치가 진행한 조사에서도 ‘반대한다’(53%)가 찬성(33%)보다 높았다. 반대 사유로는 주로 경제적 부담, 범죄 등 사회문제 우려, 문화·종교적 이질감이 꼽혔다. ‘미라클’을 두고도 입국 반대 청원이 등장하는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이번에 온 아프간인들은 ‘조력자’임을 인정받아 체류하게 되는 것으로, 난민 지위 인정과는 다르다.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이들은 갑작스럽게 왔던 예멘 난민과 단순 비교가 힘들다. 향후 (난민 인정에 있어서) 아프가니스탄 내부의 상황이 판단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나오는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탈레반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곳에 있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아프리카연구부장)는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와 친밀해질 수 있는 경험과 연습,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난민을 수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은 지금, 접점을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당국이 난민 신청자 중에 불순한 인사는 없는지 크로스체킹을 하고, 시민단체가 정착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어주는 식으로 각자 할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과거 제주도를 찾은 예멘 난민이 그랬듯 앞으로 아프간 난민이 별도의 경로로 한국에 도착해 문을 두드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때 난민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진짜’ 얼굴이 드러날 것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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