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부모에게도 집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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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고시원, 모텔, 보호시설 등에 주로 거주

은영(가명·19)이가 공인중개사에게 반복해 들었던 말은 “안 된다”였다. 월세 20만원짜리 원룸을 얻으려 찾아간 부동산이었다. 미성년자가 임대차 계약을 맺으려면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부모나 친척 ‘어른’의 동의서 없이는 임대차 계약을 맺을 수 없다. 은영이가 어머니·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지 3년이 넘었다. 연락을 달가워할 리 없었고, 연락하고 싶지도 않았다.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 경향신문 자료사진

다세대주택 밀집지역 / 경향신문 자료사진

운 좋게 소개받아 집을 보러갔더니 이번에는 애가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은영이는 15개월된 아이를 키운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집을 보러갈 때면 아이를 업고 갔다. “안 된다는 이야기만 대여섯 번” 들었다. 수도권 외곽, 그것도 도심이나 산업단지와 떨어진 변두리라 수요가 많지 않은 지역이었는데도 “안 된다”고 했다. “애가 있는 게 죄는 아닌데, 아마 (제가) 어리다는 이유에서 그랬겠죠. 너무 안 구해지더라고요.” 은영이가 말했다.

주거환경은 ‘절대 취약’

은영이는 ‘청소년 부모’다. 청소년 부모는 보통 청소년복지지원법(이하 청소년복지법)상 청소년의 기준인 만 24세 미만인 부부를 지칭한다. 은영이는 지난해 초 아이를 낳았다. 남편도 미성년자다. 민간단체에서 지원해준 주거에서 1년을 채우고 나왔다. 어렵게 구한 빌라 반지하에 6개월 살았는데 “아기 피부가 다 짓물러” 집을 다시 알아봤다. 집을 구하다, 구하다 실패해 몸이 불편한 친언니와 함께 집을 구했다. 방 3개의 5층 빌라에 산다. 보증금 130만원에 월세 110만원, 목돈도 없는데다 받아주는 곳을 찾다 보니 비싼 월세를 부담하게 됐다. 친언니가 친구와 월세 55만원을 내고 은영이가 나머지 절반을 낸다. 남편이 아이를 보고, 은영이가 하루 12시간 전자제품 부품 불량 체크하는 일을 해 번 월 200만원에서 월세를 낸다. 은영이는 “이웃 신고 안 들어오도록 약속하고 들어왔어요”라고 말했다.

청소년 부모는 어떤 집에서, 얼마의 집세를 내며 지낼까. 현장에서는 “집이 없으면 육아계획을 세우거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최영화 ‘청개구리 밥차’ 활동가)거나 “주거가 일정해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이지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청소년 부모 멘토)고 말한다.

정작 정부가 청소년 부모의 규모나 주거실태 파악에 나선 적은 없다. 규모만 어림짐작할 뿐이다. 통계청 인구통계를 보면 2018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 32만6822명 중 19세 이하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1300명이다. 만 24세 미만 청소년 부모 중 19세 이하는 2018년 기준으로 최소 1300명이 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출생신고하지 않은 아이까지 포함하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보호시설에서, 원룸에서, 고시원에서, 모텔에서, 일부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살고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한국에선 청소년 부모 정책을 둘러싼 정부의 빈자리를 민간이 채우는 구조다. 청소년 부모 통계도 민간에서 먼저 냈다. 한국미혼미지원네트워크가 2020년 초 발간한 ‘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이하 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를 보면, 조사대상이었던 청소년 부모 315명 중 절반(44.4%) 정도는 ‘보증금 있는 월세’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임대 유형인 전세임대주택일 가능성이 큰 전세(18.7%) 비중도 적지 않다. ‘가족 및 친척 거주지에서 무상으로 거주’(15.2%)하거나 고시원과 같은 ‘보증금 없는 월세’(6.7%) 혹은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6.3%)는 응답도 이어졌다.

생후 5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수진(가명·18)이는 ‘가족 및 친척 거주지에서 무상으로 거주’하는 사례다. 수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경남지역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 아버지는 중학교 1학교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여서 영구임대아파트를 제공받았다. 원래는 만 24세를 넘은 남편과 함께 방 2개짜리 빌라에 살았다. 남편이 ‘아이를 소파에 던져’ 집을 나왔다.

임신했을 때도 옥상에서

청소년 부모는 크게 은영이와 수진이처럼 원부모와 동거 여부로 나눠볼 수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원하는 청소년 부모 25가구 중 9가구는 청소년 부모의 부모님 집에 함께 산다. 나머지 16가구는 원부모와 관계가 단절되거나 연락은 하더라도 따로 거주한다. 주로 한부모 시설이나 공공임대, 민간임대주택에 거처를 마련했다.

어느 쪽이 더 나은 형태의 주거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청소년 부모와 원부모와 함께 지내면 “아이를 맡겨두고 검정고시를 치고 왔다”(수진)는 이야기처럼 양육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부모와 살더라도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집안의 경제적 여력이 충분치 않으면 청소년 부모의 스트레스도 커진다. 수진이는 어머니와 사이가 나쁘지 않지만, “언제까지 몸이 불편한 어머니에게 양육을 기댈 수 없다”며 성인이 되는 대로 세대분리를 하고, 일자리를 구해 독립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도 머물 집이 있으면 어느 쪽이든 나은 편이다. 정부나 민간기관에 포착되지 않은 청소년 부모는 더 열악한 환경에 놓인 경우가 많다. 지원 시설이 그나마 존재하는 “수도권을 벗어나면 청소년 부모를 도울 자원조차 부족하다.”(김민영 자주스쿨 대표). 지은(가명·22)이는 네 살 딸 아이를 홀로 키운다. 한부모 시설에 있다가 아버지에게 보증금을 빌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돈이 필요하다며 보증금을 다시 달라고 해 급하게 집을 뺀 뒤 고시원에 들어갔다. ‘보증금 없는 월세’에 사는 청소년 부모가 됐다. 한몸 정도는 누일 수 있지만, 고시원에 아이까지 데려갈 순 없었다. 포털사이트에서 비공식 위탁모를 수소문해 아이를 맡기는 선택을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지금은 돈을 벌며 빌라에 살지만, 은영이는 임신 6개월 때까지 일정한 주거지가 없었다. 이미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뒤였다. 다세대주택 옥상에서, 겨울에도 히터가 작동하는 공중 화장실에서, 빌딩 계단에서, PC방에서 잤다. 옥상에 옷 몇벌을 두면 훔쳐가는 이도 있었다. 은영이는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자는 생활은 돈 많은 언니·오빠들이나 할 수 있어요”라고 했다. 은영이는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지내고 있다’고 답한 6.3%에도 속하지 못했던 셈이다.

청소년 부모의 법적 정의와 청소년 부모를 특정한 주거지원 근거는 올해 처음 마련됐다. 정부는 오는 9월 24일 개정 시행되는 청소년복지법에서는 청소년 부모를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모두 청소년인 사람(만 24세 미만)’으로 규정했다. 청소년복지법에는 가족지원서비스, 복지지원, 교육지원, 취업지원 규정이 포함됐다.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 8월 20일 재입법 예고됐는데, 개정안은 ‘가족지원서비스 및 복지지원’에 ‘청소년 부모와 그 자녀의 의식주 등 기초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자원’을 규정했다. “청소년 부모에게 양육자 역할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청소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 권리도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김지연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를 담은 입법이다.

주거지원 등 청소년 부모를 도우려는 정부의 움직임은 첫발을 뗐지만, 여전히 한계는 남는다. 이선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 팀장은 “청소년 부부가 원가정 부모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만 전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인 청소년 부모가 그들의 부모와 연이 끊겼는데, 부모의 소득이나 재산이 잡히면 부양의무자 기준이 적용돼 기초생활수급 등 각종 지원대상에서 제외될 우려가 있다. “청소년 부모가 ‘가정’을 꾸렸다면, ‘가정’을 기준으로 지원해야지 부양의무기준을 섣불리 적용해선 안 된다”(이선영 팀장)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주거지원 빈틈 막아야

청소년 부모가 모텔이나 고시원을 전전했던 이유 중 하나는 정부지원의 ‘사각지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표사례가 LH가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 입주였다. 공공임대주택은 유형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보통 기초생활수급대상이나 아동시설 퇴소자, 한부모 가족에게 우선 공급한다. 청소년 부모가 그들의 부모에게 소득이 발생해 기초생활수급대상이 아니면 공공임대 입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청소년 부모 2명 중 1명(50.8%)은 국민기초생활수급과 법정 한부모 둘 다 등록하지 못한 상황(‘청소년 부모 생활실태 조사’)인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 부모에게 공공임대도 지금까지 높은 문이었다. 청년대상 공공임대주택은 전부 만 19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만 18세 이하 청소년 부모는 입주 자격이 없다.

청소년복지법 개정을 계기로 삼아 “청소년 부모들이 지원대상에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류정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시스템을 개선해 지원 체계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나온다. 류정희 연구위원은 긴급복지지원제도를 예로 들었다. 긴급복지지원법 제4조에는 긴급지원 대상자에게 주거지원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1 긴급복지지원사업 개정사항’을 보면 1개월이 원칙이지만 추가 9개월까지 주거지원이 가능하다. 류정희 연구위원은 “긴급 지원이 끝났을 때 청소년 부모들이 갈 수 있는 주거를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체계적으로 마련해주는 시스템이 아직까지 없다”고 했다.

현장에서는 “집과 다른 자원도 함께 투입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청소년 부모 지원을 한데 묶어야 한다고 본다. 주거지원과 동시에 “상담, 교육 등도 투자하는 방식으로 집중 지원해야 청소년 부모가 집에 정착할 수 있다”(최영화 활동가)는 것이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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