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은밀하고 화려하게 펼쳐진 ‘그들만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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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와 비싼 땅값으로 알려진 곳이다. 서울 지하철 신분당선 압구정역을 나서면 청담동의 명품거리가 시작된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물건. 옷과 장신구와 가방 따위가 물건만큼이나 비싸 보이는 매장에서 행인을 유혹한다. 청담동 명품매장의 판매고는 전 세계에서 수위에 든다고 알려졌다. 그만큼 돈이 차고 넘쳐흐르는 곳이다. 거리는 조용하고 깨끗하며 도도하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고급주택가가 청담동의 주인 노릇을 한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고급주택가가 청담동의 주인 노릇을 한다.

청담동은 한강을 끼고 맑은 호수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맑은 못을 끼고 있던 마을은 청수골이라는 이름도 가졌다고 한다. 강남 개발 초기부터 청담동은 고급 주택이 들어섰다. 한강변 구릉지에는 저택들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강가로 아파트들이 강변을 내려보며 들어섰다. 이곳의 땅값과 집값은 서민에겐 비현실적인 숫자로 다가올 뿐이다.

청담사거리까지 이어진 명품거리는 다시 연예인거리로 이어진다. 청담동 골목 곳곳에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들이 있다. 골목 어귀엔 케이스타 로드라는 간판이 걸렸다. 스타 단골집이라는 식당과 카페도 지도에 표시해둬 관광객을 유인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연예인 구경을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온 인파가 골목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인적은 드물어졌지만 가게들은 여전히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한다. 불황도 골목의 눈치를 보는 듯 이곳 상점들은 ‘임대’ 표식을 붙인 빈 점포가 드물었다.

연예기획사가 여럿 있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업소도 쉽게 볼 수 있다. 골목을 좀더 깊이 들어가면 오래된 공동주택을 개조한 사무실과 새로 지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얼핏 봐서는 잘 알기 어려운 간판들이 붙어 있다. 출입문에 예약 손님만 받는다는 문구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영업점이 자기 존재를 더 잘 알리기 위해 애쓰는 반면 이 골목 가게들은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간판을 달아 둔 것 같다.

‘고급’ 분위기가 만든 상권

택배원에게 골목 분위기를 묻자 “연예인들이 드나드는 미용실이나 의상전문점들이 많다. 간판만 봐서는 뭐 하는 곳인지 알기 어렵지만, 얼굴 잘 알려진 이들이 소리 없이 드나든다”라고 전한다. 큰 길가에 요란하게 광고판을 붙이고 오가는 행인을 위해 문을 열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별한 이들을 위한 상권이 조용히 펼쳐져 있다. 청담동 골목길 안 음식점과 카페도 그렇게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여럿 있다.

청담동은 강남에서 비교적 오래된 동네다. 그런 까닭에 네모반듯한 골목에는 아주 오랜 단독주택도 보이고, 연립주택도 있다. 단독주택은 고쳐 회사나 영업장으로 쓰는 곳이 많았다. 부동산업자는 “대지 딸린 단독주택은 대략 100억 안팎에서 입지가 좋으면 150억원까지 간다. 예전엔 연예 관련 회사에서 유행처럼 사들였는데 요즘엔 주춤하다”라고 말했다.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기본이 100억이 넘고 신축 아파트는 그보다 더 나간다고 했다. 청담동은 지난해 부동산 대책에 따라 토지거래허가제가 발동돼 있다. 이곳에 부동산을 사려면 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대출도 불가능해 그야말로 현금 거래만 가능하니 지금 청담동에 집을 사는 이들은 실로 현금다발을 쌓아둔 사람들이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부동산에도 ‘한남동 청담동 전문 부동산’ 또는 ‘일생에 단 한 번 청담동 오너’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이 골목에 닻을 내린 주민뿐 아니라 업자들이 느끼는 자부심도 엿볼 수 있다. 그 흔한 구멍가게도 보기 힘들고 중소형 마트도 볼 수 없는 곳이 청담동이다. 다만 큰길 뒤편 골목에는 근처 사무실 직원들이 줄을 서 있는 떡볶이집도 있고, 막힌 하수구를 뚫고 에어컨을 고쳐주는 철물점도 보인다. 단지 그 영역이 좁아 청담동의 말석에 겨우 붙어 있는 꼴이다.

청담동을 상징하는 강남돌과 명품거리

청담동을 상징하는 강남돌과 명품거리

전통시장 대신 청담동 복판에는 백화점 식품 전문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소문으로 듣기에 품질 좋은 물건들만 선별해 비싼 값에 판다는데, 청담동 주민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꼽힌다. 고급 한정식집은 맞춤 반찬을 따로 팔며 배달하고 있었다.

골목 안엔 아는 이만 찾아갈 수 있는 그릇가게도 있는데, 유약 빛깔 고운 접시 한점에 대략 10만원은 훌쩍 넘기고 대접이며 밥공기도 그에 버금간다. 그런데도 가게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다. 그 곁으로 영국제 수입 옷감을 내세운 맞춤 양복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한편에는 고상한 한복집이 우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골목 군데군데 결혼 관련 업체가 보이고 바짝 붙어 보석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결혼하기 위해 광장시장 그릇가게와 이불집을 돌아다니고, 시장통 맞춤 양복을 재면서 분주히 금값을 알아보러 다니는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이 그곳에 있다.

청담동에 결혼 관련 업체가 모여든 것은 대체로 2010년 이후의 일이라고 한다. 결혼 상권은 압구정동 쪽으로 몰렸다가 도산공원 인근을 거쳐 최종적으로 청담동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서울의 결혼 관련 고급 업체들은 대부분 청담동에 모여 있다. 웨딩 스튜디오와 드레스, 컨설팅업체 그리고 보석상과 기타 유관 업종들이 사슬을 이뤄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이유는 청담동의 고급 분위기가 가장 큰 몫을 하고 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중매쟁이들은 적어도 ‘사’ 자 붙은 신랑감만을 꿰차고 있다 한다.

청담동에는 작은 화랑들이 많다. 개인전 안내판을 내건 화랑들이 곳곳에 있다. 건물 관리인은 “요즘엔 많이 없어졌다”고 하는데 압구정로 지나 삼성로 인근이 화랑거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됐다고 한다. 고상함이 취향인가 싶은 것은 골목 안에서 페인트 카페라는 곳이 여럿 있다. 그림도 그리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이라는데 청담동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연예인이 자주 찾는다는 청담동 연예인거리

연예인이 자주 찾는다는 청담동 연예인거리

뒷길에 숨은 정겨운 풍경

명품거리에서 도산대로 뒷길로 이어지는 긴 골목길은 음식거리라는 푯말이 붙었다. 골목 입구에 소위 맛집이라는 곳들이 표시돼 있다. 랍스터 전문점도 있고 스테이크 하우스며 수제맥주 양조장도 보이고 프랑스식 디저트 가게도 있다. 프랜차이즈 포장마차도 보이고 일본식 주점과 초밥집도 눈에 띈다. 청담동답게 식당 분위기와 메뉴는 화려하다. 그사이 수줍게 숨어 있는 ‘아침식사됨’ 표지판의 백반집은 정겹다.

청담동 골목 사이로 슈퍼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대체로 잘 나고 잘 차려입은 선남선녀들이 골목을 거닐지만, 점심시간을 틈타 맛있고 저렴한 밥집까지 먼 걸음을 하는 젊은이들도 마주친다. 그들을 상대로 잘 차려진 점심 한상을 내놓는 식당도 있다. 얼음 섞인 커피 한잔을 들고 골목길을 부지런히 걸어 사무실로 돌아가는 노동에 지친 젊은이도 있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고 주변에는 아이들이 다니는 태권도 도장도 있고 학원도 있다. 다만 학원은 무슨 아카데미라든가 성장 도움 하우스 등의 괴이한 명판을 붙이고 있다. 대형보다 작은 단위의 학원이 많다. 학원도 청담동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묻어 있다.

청담동 골목도 호경기는 아닌 듯한 것이 가끔 아주 가끔 비어 있는 점포가 보인다. 시내 대부분의 상점가가 열에 한 둘은 임대 푯말을 붙인 것에 비해 새 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이 골목도 불황의 자취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골목에 기대 통닭을 튀기고 김밥을 말아 팔며 콩나물국밥을 끓여내는 이들의 사정이야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대부분 말쑥한 상가들 사이로 눈에 띄게 낡은 상가가 보인다. 순대국밥이며 떡집 간판은 멀쩡했으나 문에는 모두 재개발로 ‘폐업’이라는 표지가 내걸렸다. 청담동의 거의 유일한 고시원도 문을 닫았다. 건물 앞을 청소하는 이는 “차라리 요즘 문을 닫았으니 잘 됐다. 장사가 안 돼 속으로 골병드느니 핑계라도 생겼으니 다행이다. 여유 있는 이들은 이 근처로 가게 얻어 다시 문 열었고, 그것도 안 되는 이들은 이 기회에 장사 접었다”라고 사정을 전했다.

화려한 건물 사이에 아주 오래된 연립주택도 볼 수 있다.

화려한 건물 사이에 아주 오래된 연립주택도 볼 수 있다.

가질 수는 없어도 즐길 수는 있다

청담동 앞쪽 길로 명품거리가 있지만 골목 안에도 명품을 파는 가게들을 볼 수 있다. 편집숍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명품들을 모아 파는 곳도 있고, 흠집 있는 명품을 가격을 낮춰 파는 가게도 있다. 아예 중고품을 골라 파는 점포가 골목 안에 숨어 있어 명품 수요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이런 가게들은 알음알음으로 소문난 가게라고 했다. 비단 명품 가게뿐 아니라 이 구역 골목의 이름난 음식점들도 이렇게 소문을 마케팅 무기로 삼고 더러는 유명인을 내세워 손님을 끌어들인다. 지역 상권 중 사회관계망 의존도가 높은 곳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사의 성패가 유동인구보다는 인터넷에 퍼지는 평판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금융과 주식 사기로 거액을 사취한 사기꾼도 청담동 저택에서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에 올려 신뢰를 쌓는 세상이다. 청담동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성공의 증거가 됐다. 그 이면에 어떤 덫이 숨어 있는지는 알 바 없고, 오직 이 지역이 갖는 분위기와 화려한 모습만이 눈길을 끌고 관심의 대상이 된다.

청담동이 가진 고급과 사치와 성공의 이미지는 방송과 드라마에서도 드러난다. 오래전 방영한 주말 연속극 <청담동 앨리스>는 청담동에서 신분 상승을 바라는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담아 동네 분위기를 드라마의 중요한 장치로 삼았다. 종편 채널에서 방영했던 <청담동 살아요>는 제목에 이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청담동 사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지, 청담동에 산다는 것은 어떻게 비치는지 드라마는 묻지만 결국 이 또한 청담동 주민과 엮여 신분 상승하는 숙녀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모두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를 담는다. 청담동은 갖고 싶어도 이미 가질 수 없는 것이 돼버린, 부유하고 화려한 삶의 대명사가 됐다.

하나의 성이 있고 그 성은 바깥의 모든 불행과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성안에 있는 선택받은 이들은 세상의 고난 따위와는 무관한 채 자신의 고귀한 취향을 즐길 뿐이다. 청담동 골목을 걷다 문득 떠오르는 우리 사회의 단절과 불행한 불통의 이야기다. 큰길 뒤편 골목 오래된 연립주택을 따라 비 오면 빗물이 넘칠까봐 모래주머니를 쌓아둔 반지하 집들도 줄지어 있다. 잘 지은 새 건물 사이로 아주 오래된 연립주택도 골목을 지키고 있다. 청담동의 더 깊은 속은 이렇게 다른 모습도 갖고 있다.

부와 사치와 아름다움과 예술을 가질 수 없어도 즐길 수는 있다. 가벼운 주머니로 청담동 명품거리를 느긋이 걷는다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활의 어려움이 어깨를 내리누를 때 차라리 청담동 명품거리와 화려한 골목을 걸어보자. 인간의 고귀함이 부와 사치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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