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출직의 공직자 임명에는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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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관제’는 선거에서 이긴 사람이나 정당이 공직자를 임명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사냥 엽 자를 써서 관직을 사냥한다는 부정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처음 실시한 미국에서는 긍정적으로 쓰였는데, 엽관제로 임명된 공무원들이 임명권자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여론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정부의 효율성과 반응성이 높아진다는 논리였다. 반대로 전문성 부족, 빈번한 인적 교체로 인한 비효율, 관권선거와 부정부패 등은 엽관제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 / 연합뉴스

황교익 맛 칼럼리스트 / 연합뉴스

현대사회에서 하위직 공무원까지 교체되는 엽관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대통령과 지방자치단체장은 많은 공직자를 임명할 수 있다. 정치는 혼자 할 수 없고, 정책의 추진에는 관료집단이 필요하다. 그런데 관료집단은 고유의 조직 논리를 가지고 있고, 여론에 반응할 유인이 낮으며, 정책의 전환에 저항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선출직의 의지를 반영하기 위한 장치로 임명직이 필요하다. 소위 ‘민주적 통제’다.

공기업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고유의 공공성과 정책목표를 가지므로 사기업과 달리 민주적 통제가 필요하다. 물론 정치인 출신 공기업 사장들은 특별한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자리보전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낙하산인사’, ‘보은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그렇다 해서 무조건 내부승진이 답이라 할 수도 없다.

지방자치단체의 공기업 임원 임명도 늘 논란거리다. 단체장이 바뀌면 임기가 남은 기존의 임원이 중도사퇴하고 선거캠프에 있던 인물이 임명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공기업 임원과 임명권자인 단체장의 임기가 서로 같지 않다 보니 전임이 임명한 임원에게 새 단체장이 직간접적으로 사퇴를 압박하고, 임기가 남은 임원은 이를 거부하는 일도 벌어진다. 환경부의 산하기관장 블랙리스트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됐다. 현행법 위반은 처벌해야겠지만, 입법론으로는 공기업 등 산하기관장의 정무적 성격을 인정하고 임명권자와 임기를 함께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경기관광공사의 사장으로 내정됐다. 지방공기업법상 임원추천위원회의 심사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가석방심사위원회만의 결정이라고 할 수 없듯 황교익씨의 임명내정에도 단체장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뜻이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평소 같았으면 주목받지 못했을 지방단체장의 공기업 사장 임명이 유력 대선주자와 유명인 덕에 주목을 받게 됐다. 덕분에 우리는 이재명 지사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나라가 될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고, 지방공기업의 사장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

“가깝다고 한자리씩 주면 최순실된다”는 이재명 지사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된다. 이어진 내용은 이렇다. “이재명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는 말을 하던데, 인적자원을 엄청 가진 쪽이 국정운영을 잘할 것이라는 건 환상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인적자원은 많은 편이 좋고, 그들을 적절한 자리에 임명하는 것은 국정운영에 가장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 인적자원이 과연 좋은 자원인지, 적절하게 쓰이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평가와 정치적 책임이 필요할 것이다. 평가는 국민의 몫이고, 책임은 임명권자의 몫이다.

<이기중 서울 관악구 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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