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품은 올림픽, 모두를 품는 계기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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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성찰 통해 국내에 실재하는 인종차별에 침묵 말아야

‘다양성과 조화’를 표방한 2020 도쿄올림픽 중 비장애인을 위한 올림픽이 지난 8월 8일 막을 내렸다. 개막식에서 거의 모든 참가팀이 ‘남녀 공동 기수’를 앞세웠고 무슬림, 원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이 각 국가를 대표해 등장했다. 육상 중장거리 2관왕을 차지해 ‘신인류’라 불리는 난민선수, 정신건강을 이유로 결선경기를 포기한 체조선수, X자 표시를 하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한 투포환선수,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동시에 참가하며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탁구선수까지.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최초 선수들의 등장은 올림픽이 상징하는 시대정신과 영웅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경기에서 뛰고 있는 오주한 선수의 가슴에 ‘KOREA’가 선명하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도쿄올림픽 남자마라톤 경기에서 뛰고 있는 오주한 선수의 가슴에 ‘KOREA’가 선명하다. /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혼혈’ 선수는 구분짓기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승리 제일주의가 국가의 위상을 대표했다. 금메달을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질책을 받았다. 선수들은 세계에서 2·3위를 하고도 서러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국 선수들 역시 ‘4위’에 그쳤어도 최선을 다해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을 자랑스러워했다. 국민도 그 모습에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포용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가 살펴야 할 부분이 있다. 남자 마라톤에서 부상으로 경기를 포기한 오주한 선수에 대해 “찬물을 끼얹네”라는 한 방송사의 해설이 한 예다. 마라토너 오주한 선수는 케냐 출신 한국인이다. 그의 고향은 케냐 북서부 투르카나다. 케냐에서도 비주류 소수민족 출신이었던 그는 염소를 키우며 자식을 키웠던 홀어머니를 생각하며 달렸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오창석 감독은 그가 마음껏 뛸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귀화를 도왔지만, 올림픽 두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오주한 선수는 영적인 아버지와 고국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을 것이다.

주한(走韓),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그의 이름에는 33년의 보이지 않는 삶의 궤적이 담겨 있다. 그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다면, ‘이름’에 환호했을 것이다.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기특하다’는 시선과 과잉 자부심의 해설을 듣게 됐을지도 모른다. 만약 메달 가능성이 있는 한국인 국내 마라톤 선수가 있었다면 우리 사회가 오주한 선수를 주목했을까? 이렇게 급하게 특별귀화를 허락했을까?

최영석 감독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태국에 태권도 금메달을 안겼다. 그는 태국에서 20년간 제자를 양성하면서 스포츠 외교에 힘썼다. 우리 언론은 한국이 태권도 종주국으로 금메달을 따야 하는데, 외국에 한국인 지도자들이 위협이 된다며 ‘부메랑 효과’라는 말을 썼다. 태국으로 귀화를 신청한 최영석 감독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탈리아 출신인 라바리니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이 20년간 한국 배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귀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럭비국가대표 안드레진 코퀴야드(한국명 김진) / 김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럭비국가대표 안드레진 코퀴야드(한국명 김진) / 김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남자 럭비 대표팀에 안드레진 코퀴야드 선수가 있다. 그는 17세 이하 미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다가 한국럭비협회의 요청을 받고 귀화해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를 백인 아버지를 둔 ‘혼혈’ 선수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국어원은 ‘혼혈아’라는 단어가 사람을 인격적 개체로 바라보지 않고, 인종 간에 이루어진 결합이라 여기는, 특정 인종을 비하하거나 차별하는 표현이라 했다. 어떨 땐 혼혈, 어떨 땐 다문화, 어떨 땐 한국계라 하고 있다. 백인 혼혈은 예능 프로그램에, 동남아 혼혈은 다큐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식이다. 불쌍하고 도와줄 수 있어야 ‘다문화’라는 식으로 구분 짓는 인식이다. 혼혈이라는 말을 대체하기 위해 ‘다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구분짓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제2의 제3의 용어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조건부 함께를 외치지 않길

통계청은 귀화한 내국인, 이민자 2세, 외국인을 포함한 이주배경인구가 2020년 222만명(4.3%)에서 2040년 352만명(6.9%)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9 법무부 자료를 보면 유엔 193개국 중 60% 이상의 세계(110개국, 20만명)가 대한민국 안에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가 체르노빌 원전사진 한 장으로 우크라이나가 대표됐을 때의 심정과 한일 양국을 응원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한일전을 관람할 때의 심정도 함께 고려할 수는 없는 걸까?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는 일본 국적을 선택했지만, 흑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긍정한다. 일본 역시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해 일본 내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하는 나이키 광고의 시작이 됐고, 재일 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광고가 다뤘을 때 많은 한국인은 일본의 인종차별에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세계를 향한 비판적 성찰을 이제 우리에게 비추어 국내에 실재하고 있는 인종차별에도 침묵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함께’라고 했을 때, 어디까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조건부 ‘함께’를 외치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상이 반영되고 있는 이번 올림픽 이후에는 누군가가 능력으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영웅’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사회로 나아갈 것을 꿈꿔본다.

<박에스더 월촌중·서울다문화교육지원센터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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