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도 못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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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묵혀두는’ 집에 아이들이 삽니다. 재개발을 기다리며 다세대·다가구 주택을 사두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재개발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그만큼 집이 오래되고 낡았다는 의미죠. 가격이 싸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곳에서 삽니다. 최대한 주거비를 줄이려 밀리고 밀려 다세대주택 반지하나 옥탑방, 무허가 주택까지 간 것입니다. ‘주거빈곤’에 처한 아이들이 서울·경기에만 22만7000가구라고 합니다. 두 자녀 이상 둔 가구도 있기에 22만7000명보다 더 많은 아이가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 삽니다.

김원진 기자

김원진 기자

주거빈곤이 미치는 영향은 다양합니다. 주거빈곤에 처한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더 아팠고, 교육받는 환경도 나빴습니다. 집에 냉방시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가정도 절반이나 됐습니다. 집이 부끄러워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못한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한정된 생활비에서 주거비, 식비를 아끼고 쪼개 쓰다 보니 간편식이나 인스턴트로 끼니를 해결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편하게 자지 못하고, 친구들과 집에서 놀지도 못하는 상황. “공정을 이야기하기 전에 최소한의 권리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20년 넘게 학교에 있었지만, 정부가 가난한 상황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정책을 내놓은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취재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공정한 입시 같은 정책에만 집중하는데, 아이들이 안전한 집에서 살 권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정작 국가조차 아이들의 ‘최소한’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면 그래도 주거환경이 나아지긴 하지만, 아동가구가 사는 공공임대주택이 최저 주거기준에 절반 넘게 미달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최대한 작고 좁은 공공임대주택만 공급하다 보니 생긴 일입니다. 국가가 정한 기준조차 국가가 어겼습니다. 아이들에게 ‘최소한’이라도 보장해주는 척하면서 사실은 최소한을 지키지 않는 셈이죠.

“20년 전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어느 전문가의 말처럼 주거빈곤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환경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과 나만 가난한 것 같은 세상은 다릅니다. 적어도 이 아이들이 부동산 앱 ‘직방’을 들여다보며 이사할 집을 매일 찾아보는 세상은 아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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