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도 탈탄소 바람 속도 내는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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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선박·수소 활용 등 탄소중립 잰걸음

전례 없는 폭염과 폭우, 산불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체감하면서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바다 위, 하늘 위라고 예외는 아니다. 1년간 인간이 배출하는 510억t의 온실가스 중 16%가 교통과 운송 분야에서 나온다. 특히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5~10%는 배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은 7월 14일 버뮤다와 유럽 소재 선사와 총 9112억원 규모 초대형 LNG운반선 4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4000입방미터급 LN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 한국조선해양 제공

한국조선해양은 7월 14일 버뮤다와 유럽 소재 선사와 총 9112억원 규모 초대형 LNG운반선 4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사진은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7만4000입방미터급 LN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 한국조선해양 제공

국제해사기구(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는 지난 6월 10~17일(현지시간) 열린 제76차 회의에서 2023년부터 2026년까지 4년간 매년 2%씩 탄소배출을 줄이는 안을 채택했다. IMO는 ‘2020 플랜’을 통해 2050년까지 선박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70% 줄이고, 50%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번 감축안이 1차 계획이다.

e퓨얼·SMR 등 물류 분야 탈탄소 진행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월 14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한 정책 수단을 담은 ‘핏포 55’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EU 탄소 배출권거래제(ETS)를 개정해 해상과 항공 운수 분야도 포함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위원회는 또한 바이오 연료 등 지속가능한 연료를 더 활발히 활용하기로 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항공·선박 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해 항공 및 해양 부문에서 장기적으로 탄소 연료가 지속가능한 연료보다 더 비싸게 만들기로 했다.

글로벌 흐름이 운송 분야의 탈탄소를 향하면서 국내 조선·해운 산업의 대응도 구체화되고 있다. IMO가 탄소배출 규제에서 연간 4% 감축을 주장한 미국과 EU 대신 한국, 일본, 노르웨이 등 조선 국가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가질 처지는 아니다. 정부는 조선업계, 대학, 연구소와 함께 수소·암모니아를 활용한 ‘한국형 친환경선박(일명 그린십-K)’을 개발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2031년까지 총 2540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으로 지난 6월 29일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했다. 친환경추진 선박은 수소·암모니아 등 친환경연료를 활용하는 저탄소·무탄소 선박과 전기·하이브리드 선박 등 차세대 추진시스템을 갖춘 고부가가치 선박을 의미한다. 정부는 친환경선박 핵심기술·설계기술 개발로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대비 7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조선업계는 지난 4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생태계 전반의 친환경화를 통한 탄소중립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이다. 한국조선해양은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머스크와 메탄올 추진선 수주를 협상하고 있다. 메탄올 추진선은 LNG추진선보다 진일보한 기술로 벙커C유보다 황산화물을 99% 줄일 수 있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를 선박 추진에 사용하는 방안도 연구되고 있다. 삼성중공업을 비롯해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소들이 원자력연구원 등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선박 운용기간인 20년 동안 연료 공급 없이 운항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정익 카이스트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원자력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수소 등 다양한 추진방식을 검토하는데 수소나 재생에너지 추진은 아직 검증해야 할 기술이지만 원자력 추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검증된 기술”이라면서 “비록 군용으로 활용했지만, 민간에서도 이미 운영하는 나라가 있어서 가장 확실한 탈탄소 선박추진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의 경우 전기·수소차로 이행하는 전환기 동안에는 탄소중립 연료인 ‘e퓨얼(efuel)’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e퓨얼은 전기분해로 얻어진 수소에 이산화탄소, 질소 등을 합성해 생산된 연료를 말한다. 궁극적으로 가솔린과 디젤과 같은 물성을 갖는 e가솔린·e디젤을 활용하면 기존 내연기관을 사용하면서도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기배터리 전환이 어려운 선박, 항공, 상용차 분야의 탄소중립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모으지만 가격이 비싸고, 에너지 효율이 아직 낮아 현 기술 수준에서는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

육상 물류는 전기차·수소차로 이분화

수소는 해운·항공, 육상 전 분야에서의 활용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는 대형 장거리 운송에서 이산화탄소 가격이 t당 100달러, 해운·항공 분야에서 탄소비용이 t당 170달러에 이를 경우 수소가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수소는 무겁고, 장거리를 다니는 운송수단에서 더 적합하다. 반면 시내 등 단거리를 주행하는 경우 배터리가 더 적절하다. 결국 육상 물류 분야에서는 소형 물류 차량의 경우 전기차로, 중대형은 수소차가 양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와 연관돼 ‘그린 암모니아’도 주목받는다. 그린 암모니아는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생산한 그린 수소를 이용해 제조한 암모니아를 말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재생에너지로 물을 분해해 만든 그린 수소를 공기에서 분리한 질소와 합성해 암모니아로 만들어 들여올 수 있다. 이렇게 가져온 암모니아에서 질소를 제거하면 다시 수소로 사용할 수 있다. 암모니아는 액화수소와 달리 상온에서 쉽게 액화되고 액화수소 대비 단위 부피당 1.7배나 수소 저장용량이 크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수소를 저장하는 운반책으로 쓰기 적절하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운송 수단 및 유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점도 유리하다.

물류 시장의 전기화는 소비자들의 기후위기 경각심이 커질수록 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유럽계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은 최근 한 물류회사와 운송 계약을 체결하면서 “전기차 구매비용을 지원할 테니 자사 제품은 무조건 전기차로 배송해달라”는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의 규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소비자들이 저탄소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라면서 “유럽에선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제품은 쓰지 않겠다는 시민단체의 불매운동이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유럽 기업 입장에선 배송을 포함한 전 과정상에서의 탄소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류 분야 탈탄소가 힘을 받으려면 화석연료를 우대하는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배정환 전남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선박용 경유나 중유에 대한 면세제도를 없애고 바이오 중유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중장기적으로는 수소연료전지에 기반을 둔 선박 시스템이나 재생에너지를 초고압직류송전(HVDC) 방식으로 공급받아 전력 손실과 무게를 줄이는 전동화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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