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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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항쟁기 일제는 조선인을 국외로 강제동원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거시적 관점의 기술입니다. 일제의 잔학성, 민족적 피해가 잘 부각됩니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만 역사를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당시 강제동원된 조선인은 누구이고, 고국으로 돌아와 가족들을 만났는지 등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시적 관점의 기술은 강제동원 피해를 한국과 일본의 국가 간 문제로 보이게 하기 때문입니다.

김찬호 기자

김찬호 기자

조금 시각을 달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한국 대 일본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한 인간에게 가해진 폭력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려고 했습니다. 그때 듣게 된 것이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의 국내가족’입니다.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때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강제동원이라는 명목하에 국외로 끌려가지도, 가혹한 노동환경에 처하지도 않았습니다. 국내에 머물러 있던 이들이 강제동원에 대해 무슨 증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80년째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는 한마디였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를 정부 기준으로 걸러내면 아무리 광범위하게 잡아도 ‘1931년 이후, 국외로 끌려가, 죽거나 다쳤거나 임금을 받지 못하는’ 등의 피해를 입은 경우만 해당됩니다. 그런데 ‘강제동원 피해자의 국내가족’은 이러한 기준을 의심하게 했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남편을 80여년째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인지 상상조차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이 고통은 세대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유해조차 찾지 못한 피해자의 자녀들 역시 고통 속에 있습니다.

이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각자 얼굴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물건 한가지씩을 들고 나왔습니다. 물건을 들고 사진을 찍는 이들을 보며 궁금해졌습니다. “국가 간 배상 문제에 얽매여 있는 우리는 강제동원 피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이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애써 모은 피해 증거들은 흩어졌습니다. 행방불명된 강제동원 피해자를 찾아 헤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피해자인 이들 가족뿐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피해 당사자가 사라지면 일본은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강제동원이 촉발한 다양한 피해에 대한 폭넓은 진상규명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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