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적 원양어선 조업감시센터 강원진 센터장 “불법어업 감시는 결국 원양업계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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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6일 유럽연합(EU)은 한국을 가나, 네덜란드령 쿠라카오와 함께 예비 불법어업(IUU)국으로 지정했다. 아프리카 국가, 대서양 작은 섬나라와 함께 불법어업을 하고 있는 나라로 거론됐다는 점에서 외교가에서는 ‘대참사’라는 얘기가 나왔다. 해양수산부가 이명박 정부때 분해됐다가 박근혜 정부 때 재출범하는 어수선하던 때여서 정부가 제때 대응을 하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 됐다.

강원진 조업감시센터장(왼쪽에서 네번째)과 동료직원들이 부산 기장군 조업감시센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원진 조업감시센터장(왼쪽에서 네번째)과 동료직원들이 부산 기장군 조업감시센터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불법어업을 하는 한국원양어선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이들의 조업상황을 모니터링해줄 것을 요청했다. 불법어업국으로 최종 지정되면 한국국적의 배들은 유럽연합 회원국에 수산물과 수산가공품을 수출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항구도 이용하지 못한다. 수산업에 관한 한 국제적으로 완전 고립된다는 뜻이었다.

이때 한국 정부가 급박하게 꺼낸 카드가 조업감시센터(Fisheries Monitoring Center)였다. FMC는 5대양에 있는 한국국적 원양어선들의 위치와 조업상황을 실시간 들여다볼 수 있는 원양어선 전담 종합상황실이다. 한국은 예비 불법어업국 지정 4개월 만인 2014년 4월 부산 기장에 FMC를 설립하고 조업감시시스템 개발을 완료했다. 밤낮으로 작업해 당초 예상보다 4개월을 앞당겼다. 한국의 앞선 정보통신(IT)기술이 있기에 가능했다. 훗날 FMC를 실사하러온 유럽연합 관계자는 “한국이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FMC 설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놀라워했다.

당시 해양수산부에서 FMC 설립을 주도했던 담당 주무관은 7년이 지난 지금 센터장이 돼 FMC 운영을 지휘하고 있다. 강원진 조업감시센터장은 “당시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며 “밤잠 안 자며 FMC 설치를 도운 업체와 관계자에게는 지금도 죄송하고 또 감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강 센터장을 최근 부산 기장군 조업감시센터에서 만났다. 조업감시센터에는 3대의 대형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이 스크린에는 5대양에서 조업하고 있는 200여척의 한국국적 원양어선들이 점점이 표시돼 있다.

-FMC가 부산에 설치된 이유는 뭔가.

“유럽연합은 디데이를 정하고 그 시간 안에 반드시 설치하라고 요구했다. 원양산업과 정책부서에 있었지만, 조업을 감시하는 노하우나 인력은 없었다. 이런 업무를 유사하게 하는 기관을 찾아보니 연근해어업 불법을 지도단속하는 어업관리단이 있었다. 어업관리단은 동해, 남해, 서해 3곳에 설치돼 있다. 원양어선의 90%는 부산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부산에 있는 동해어업관리단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동해어업관리단 구성원들을 보니 배를 탔거나 어업지도선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었다. 대부분 수산이나 선박운항 전공이고. 어선항해사 자격증도 갖고 있는 직원도 많았다. 원양어선을 실제로 탄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곧바로 흡수하면서 FMC가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었다.”

-연근해어선과 원양어선 모니터링은 어떻게 다른가.

“전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국적 원양어선은 200여척이다. 숫자는 매우 적게 보이지만 문제는 관할해야 하는 지역이다. 전 세계 수역을 24개로 나눠 감시한다. 말도 못 하게 넓다. 이 수역 전체를 2인1조, 3교대로 근무하면서 모니터링한다. 센터에서는 VMS와 전자해도에 기반한 조업감시시스템을 이용해 불법어업 가능성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선박 항로 진행상황을 지켜보다 그대로 직진해 다른 나라의 EEZ를 침범할 것 같으면 곧바로 전화로 연락해 경고한다. ‘잘못하면 EEZ를 넘으니 확인하고 조업하라’고 말이다. 선박은 빠르게 방향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이동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예측이 가능하다. 설립 초기에는 이런 역할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라 빠르게 운영이 안정화됐다.”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모니터만 보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고기 잡는 어선들에는 보이지 않는, 넘어가서는 안 될 선들이 모니터에서는 보인다. 문제는 그 선 한줄이 실제로 현장에서는 몇마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니터상으로는 금에 물렸지만 실제로는 EEZ와 거리가 아직은 좀 있을 수도 있다. 어선들로서는 가급적 EEZ에 붙어야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래서 우리 선박들이 최대한 선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연락한다. ‘너무 가깝다. 이제는 빠져라’ 하는 식이다.”

-전 세계 수역을 7명이 관리하려면 힘들겠다.

“감독도 감독이지만, 제도적으로도 어려움이 있다. 연근해는 국내 수산법 기반 아래 운영된다. 우리 법만 숙지하면 된다. 반면 원양의 경우 24개 조업수역에 19개 지역수산기구가 있다. 수역마다 기구마다 보존관리조치, 입역보고, 어선표시 등이 다 다르다. 이를 단시간에 숙지해 업무를 수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조업감시센터 전경

조업감시센터 전경

-FMC는 조업 감시만 하나.

“아니다. 원양에서 잡은 어획물은 시장에 유통될 때 두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양어선에서 1년에서 1년 6개월 정도 조업해 어창이 꽉 차면 운반선에 옮겨싣는다. 이를 ‘전재’라고 한다. 운반선에 전재할 때는 얼마나 전재할 것인지를 FMC에 신청한 뒤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때 불법어업에 연루된 경력이 있어 전재가 제한된 운반선이라면 전재신청이 반려될 수 있다. 직접 육지로 가져가 양륙을 할 수도 있다. 양륙이란 원양어선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거나 가까운 해외 항구에서 어획물을 하역하는 것을 말한다. 양륙할 때도 FMC가 ‘이 선박은 문제가 없는 선박’이라는 것을 확인해줘야 국내항이든 외국항이든 하역할 수 있다. 국내항 중에는 부산 감천항이 대표적인 원양어선들의 양륙항이다.

하역을 하면 보통 일주일 정도 걸린다. 이때 우리 직원들이 직접 가서 실제 잡아온 어획물이 신고한 어획물이 맞는지 확인한다. 직접 보지 않으면 그게 다랑어인지, 상어인지 모른다. 양륙이 끝나면 원양어선의 어창에 들어가 바닥까지 다 열어본다. 한달에 4~6척 정도 들어온다. 7명의 직원이 어선 모니터링에다가 전재·양륙 검증, 어획물 확인까지 다하고 있다.”

-원양어선이 고의적으로 위치추적장치(VMS)를 끄면 어떻게 되나.

“센터에서 곧바로 해당 선박에 전화를 건다. VMS가 꺼져 있으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 거다.”

-조업 중인 어선에 연락하면 새벽이거나 밤일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시간으로 새벽에 경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처음에는 센터에서 자동으로 보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밤샘하면서 실시간으로 지켜보면서 메시지와 전화를 한다는 것을 알고는 놀라더라. 인력이 더 있다면 더 꼼꼼히,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우리에게 원양어업이란 무슨 의미냐.

“우리나라 연근해 6만척이 생산하는 수산물의 절반을 200척의 원양어선이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수출한 수산물 중 물량 기준으로 가장 많았던 것이 참치라 불리는 다랑어다. 금액기준으로도 김 다음이다.”

-원양어업 자체는 점점 위축되고 있지 않나.

“2014년 원양산업과에 근무할 때 우리 원양어선은 300여척이었다. FMC센터장으로 오니 200여척으로 100여척이 줄었더라. 선사도 70개에서 50개로 줄었다. 2014년에는 대서양의 서아프리카 수역에서만 20~30척의 원양어선이 있었다. 기니, 시에라리온 인근인데 주로 민어류를 잡았다.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EEZ 관리가 강화되면서 우리 선박들이 조업하기 힘들어졌다. 지금은 서아프리카에는 한척만 있다. 여기에다 선원들 고령화에다 선원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원양산업은 갈수록 더 어렵다.”

강원진 조업감시센터장이 모니터에 표시된 한국 원양어선들을 가리키고 있다. 태평양 연안에 가장 많은 원양어선들이 나가 있다.

강원진 조업감시센터장이 모니터에 표시된 한국 원양어선들을 가리키고 있다. 태평양 연안에 가장 많은 원양어선들이 나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FMC의 활동은 선사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도 있겠다.

“불법어업 감시는 결국 업계를 위한 것이다. 불법이 발생하면 선사가 입는 충격은 엄청나다. 조업을 위한 쿼터를 못 받고 벌금도 많이 부과된다. 어업허가를 못 받기도 한다. FMC는 우리 선사들이 지속가능한 어업을 할 수 있도록 결과적으로 도와준다. 요즘은 NGO를 비롯한 많은 기관에서 원양어선들의 움직임을 모니터링하기 때문에 누구나 불법조업 의혹을 제기할 수 있다. 이때 ‘허가받은 내용이나 항적 등을 볼 때 불법어업 의혹이 없다’는 검증을 안 해주면 조업을 못 한다. FMC가 그 역할을 한다.”

-불법어업을 하다 적발되면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는 항만국조치협정(PSMA)에 가입돼 있다. 불법어업을 하다 적발된 IUU선박은 모든 나라가 실시간으로 열람한 뒤 입항 자체를 못 하게 한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항만도 이용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IUU선박 중에 선명을 바꾸고 호출부호를 바꾸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국제사회가 협력을 통해 끝까지 찾아낸다.”

-향후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면.

“2016~2017년 시범사업을 하면서 원양어선에 영상감시시스템 장치를 달았다. 카메라를 통해서 어획물들을 어떻게 잡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화면은 위성을 통해 전송된다. 그러면 센터에서 어획물의 양뿐만 아니라 어떻게 작업을 하고, 어떤 어종을 잡았는지도 볼 수 있다. 처음에 선사들은 반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스템을 달면서 해상에서 인터넷이 가능하게 됐는데 카카오톡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선원복지를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또 필요할 경우 카톡을 통해 각종 질문이나 의문사항을 당국에 손쉽게 물을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이 어선에 본격적으로 달리면 관련 분야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분석하는데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해외에서는 전문 분석가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떤 어류를 잡는지 감시하는 옵저버가 승선을 못 하고 있다. 그런 만큼 FMC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원양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200여척에서 원양어선을 더 늘리는 것보다 어획량을 유지해 가면서 오랫동안 조업을 하는 게 중요하다. 국제사회의 룰을 지키면서 깨끗하고 투명하게 잡아야 한다.”

<부산 | 글·사진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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