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 지키며 떠나는 차박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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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왔는지 모르게 지나간 장마 구름이 걷히니 하늘엔 온통 별빛이 가득하다. 한주 전 차박 일정을 잡을 때만 해도 전국에 장맛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인천 강화군의 차박 캠핑장으로 향하는 길엔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멍하니 바라보는 ‘불멍’의 매력에 빠져보고자 차박 예정지 인근 마트에서 장작도 한묶음 사고, 작은 폭죽과 간식을 곁들였다. 장작 타는 내음을 맡으며 작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면 저도 모르게 ‘별멍’에 심취해 시간이 흘러간다. 첫 차박의 경험은 그렇게 멍한 평화로움 속에서 진행됐다.

강원도 홍천군 모곡 밤벌유원지에서 한 여행객이 차박을 즐기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강원도 홍천군 모곡 밤벌유원지에서 한 여행객이 차박을 즐기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말 그대로 차에서 잠을 자며 떠나는 여행을 뜻하는 ‘차박(車泊)’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존의 여행법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휴가철이라고 해서 인파가 몰리는 휴양지로 향할 처지도 못 된다. 자동차 한대에 몸을 싣고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차박은 누구든 차만 있으면 쉽게 택할 수 있다. 최소한의 여건만 맞으면 어디든 차를 세워두고 밤을 보내면 되기 때문에 타인과의 거리 두기를 신경 쓸 염려도 덜하다. 지난 7월 9일부터 10일까지 양일간 강화도 일대로 차박 여행을 떠나려 결정한 것도 무엇보다 거리 두기 차박에 안성맞춤인 환경이 이유였다.

서울 시내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은 다소 막혔지만 시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주행에도 속도가 붙었다. 강화대교를 타고 바다를 건너 만난 강화의 한적한 도로는 차박 여행의 매력 중 하나인 좋은 풍경과 함께하는 드라이브에 제격이었다. 모르던 새로운 길을 달려보는 것만도 신선한 자극을 주지만 경관이 빼어날수록 여행의 즐거움이 더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석모대교 다리를 한 번 더 지나 석모도에 이르러 민머루해수욕장까지 가니 섬과 바다, 하늘이 어우러진 여름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해수욕장 입장 시에도 체온을 재고 인적사항을 기록하는 코로나 시대의 관례는 사뭇 낯설지만, 적당히 미지근한 바닷물은 살짝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기에 충분했다.

현지 식당과 상점 이용하는 게 좋아

차박의 매력은 세세한 일정과 경로를 짜두지 않고도 마음 내키는 대로 이동할 수 있는 기동성에 있다. 이동과 숙박을 차 하나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대놓고 밤을 보낼 공간을 미리 정해뒀지만, 차박 때문에 지역 주민에게 민폐를 끼칠 곳만 아니라면 굳이 잠잘 곳까지 정해두지 않아도 무방한 자유로움을 즐겨도 된다. 하룻밤 머물 곳은 강화군 내가면에 있는 한 캠핑장으로 정했다. 이곳에서 주말 동안 ‘나 홀로 캠핑’ 차박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위해 와 있던 차박캠핑 커뮤니티 ‘부릉부릉캠프’의 운영자 정태겸 작가도 같은 점을 강조했다. “차박은 무엇보다 자유롭게 출발하고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는 그는 “최대한 차박 여행지 지역경제에 일조하기 위해 현지 식당과 상점에서 필요한 식사와 물품을 조달해줄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철을 맞은 지역의 특산물로 현지 분위기도 내고 맛도 즐길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이다. 숙박을 위해 캠핑장으로 이동하는 길에 외포리 선착장 인근의 현지 식당에 들렀다. 강화 특산 밴댕이 회무침을 비롯해 게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일반적인 캠핑이라면 ‘불멍’에 필요한 장작불을 피워 고기까지 구워먹는 쪽을 택했겠지만, 최대한 장비를 간소하게 꾸리고 여행지의 정서도 느껴보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차박의 정점인 차에서의 하룻밤은 차박용으로 개조한 승합차와 함께 보냈다. 자동차 지붕 위에 설치해 두고 5분이면 펼 수 있는 루프탑 텐트 안에 매트를 깔아두니 푹신하게 몸을 누일 수 있었다. 4인까지 누워도 공간이 충분해 3인 가족이 함께 누워도 걸리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텐트의 창에 방충망이 쳐 있으니 모기 같은 날벌레를 막아주면서도 바람이 통해 시원했다. 차 안에서도 잘 수 있게 뒷좌석을 떼어내고 평탄화 작업을 한 자동차 실내공간에도 3명은 충분히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바닥 밑에 장비 수납공간이 있고, 그 위에 매트를 깔고 누워 자면 된다. 트렁크 쪽 문을 열고 탈부착이 가능한 방충망을 쳐두면 이 공간 역시 여름철 모기 걱정은 없다.

쓰레기 챙겨 집으로 되가져오기

최근 차박이 대중화되면서 여행지 주민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를 버려두고 가는 일부 차박족의 행태다. 아무 곳에나 차를 대고 차량 흐름을 방해하거나 현지 주민들의 일상을 방해하는 소음을 내는 행위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생활을 존중하고 특히 거리 두기 방침 또한 제대로 준수하며 차박을 즐긴다면 차박 여행에 불편을 느낄 요소는 전혀 없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식자재를 챙기는 대신 현지 식당을 더 많이 이용하고, 가족처럼 동행이 가능한 인원만 떠나 조용히 불멍을 즐기며 대화하는 것만 해도 여행의 묘미는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장작 한꾸러미가 다 타고 나니 재만 남은데다 간식을 먹은 뒤 나온 쓰레기를 다 챙겨도 작은 봉지 하나면 충분해 집으로 되가져오기에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차박 주차공간을 캠핑장으로 정하면 몸을 씻거나 간단한 식사를 해결한 뒤 설거지를 하기에도 편리하다. 하룻밤 머물렀던 캠핑장은 폐교를 개조해 캠핑을 즐길 수 있게 해둔 곳이어서 넓은 운동장에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 여행객이 몰리는 시기만 피하면 한적한 차박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차박 여행지로 많이 추천하는 전국 곳곳의 캠핑장이나 차박 명소는 최소한의 시설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처음 차박을 해보려는 입문자들이 택하기에 좋다.

실제로 부릉부릉캠프가 대표적인 차박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객 2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차박을 시작한 지 2년이 안 된다는 여행객이 전체의 64.2%, 차박 경험이 10회 미만이라는 응답이 40.7%에 달했다. 그리고 응답자 중 44.6%가 오토캠핑을 하다가 차박으로 넘어왔다고 답할 정도여서 차박이 초보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여행이라는 점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캠핑카나 트레일러 같은 보다 전문적인 장비를 갖추고 즐기는 오토캠핑이나, 숙박을 위해 별도의 설치형 텐트를 챙겨가 즐기는 일반적인 캠핑보다 준비할 품목이 크게 줄어드는 것 또한 차박의 장점이다. 가끔 하룻밤 정도 집을 떠날 일이 있을 때는 침낭 하나 정도만 챙겨 차박을 즐긴다는 캠핑 동호인 장효원씨(40)도 “가족과 함께 떠날 때는 텐트와 바비큐 장비까지 챙겨가 본격적인 캠핑을 즐기지만 때때로 업무차 출장을 갈 땐 그냥 타고 간 차 안에서 차박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며 차박의 장점을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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