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 K영상콘텐츠 열풍” 덩달아 뜬 창작기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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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콘텐츠 산업 세계시장으로 보폭 넓혀

영상콘텐츠 영역이 지난 10여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인력들이 해외무대로 발을 넓히는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수시각효과 작업 중인 화면(왼쪽)과 작업을 완료한 영상 화면을 비교한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 덱스터스튜디오

특수시각효과 작업 중인 화면(왼쪽)과 작업을 완료한 영상 화면을 비교한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의 한 장면 / 덱스터스튜디오

시각특수효과(VFX)가 들어가는 영화나 드라마 영상 장면 1초 분량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1초짜리 영상에만 렌더링된 이미지가 보통 24장 이상 필요하다. 렌더링 이미지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2차원 또는 3차원 장면으로 구현해낸 그림이다. 이런 이미지를 한장 만드는 데만 짧게는 한두시간이 걸리고, 복잡하고 정교한 이미지일수록 소요되는 시간은 비례해 늘어난다. 그러니 단순한 산술로도 영상 1초에 24시간 이상이 투입되는 셈이다. 그것도 수십에서 수백명 단위의 인력을 갈아 넣어서 말이다.

화려하고 세밀하게 구현해낸 VFX 영상 이면에는 막대한 노동력이 달라붙어 그야말로 ‘눈이 빠지도록’ 모니터를 들여다봐야 하는 현실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해둔 기술적 ‘자산’과 첨단장비가 있다면 여기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은 크게 줄어든다. 렌더링 작업을 처리할 컴퓨터를 수백대 모아서 만든 ‘렌더팜(Render Farm)’은 해당 업무에 투입되는 시간을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우주를 떠다니는 우주선의 모습, 배경이 되는 광대한 우주 속 은하계, 등장인물의 포즈 등이 하나하나 렌더링되고 이어서 개략적으로 표현해낸 영상 속 요소들에 구체적인 색깔과 질감, 움직임까지 입혀지면 비로소 영화 속 그 장면에 가까운 형태로 영상이 제 모습을 찾아간다.

최고 사양의 컴퓨터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 처리장치)를 집적시킨 렌더팜 외에도 높은 품질의 VFX 장면을 실감나게 만드는 데에는 그동안 축적한 기술적 자산도 중요하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승리호>로 한국산 VFX 기술 역량을 주목받게 한 덱스터스튜디오가 최근 크랭크인에 들어간 신작 SF영화 <더 문>의 VFX 작업에 활용하는 것도 전작 SF영화들을 만들며 쌓아둔 이 자산들이다. 2019년 중국에서 개봉한 <유랑지구>에 우주선과 우주정거장 등 난도 높은 장면의 작업을 진행하며 쌓은 기술적 노하우가 <승리호>에도 적용됐고, 차기작인 <더 문>에서도 한층 더 진일보한 형태로 녹아들어가는 것이다.

영상콘텐츠 산업 세계시장으로 보폭 넓혀

한국의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며 해외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는 VFX를 비롯한 이른바 ‘후반작업’ 분야는 여러 업체가 역량과 노하우를 쌓아가면서 더욱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한곳만 해도 최근 마무리 작업까지 마친 <모가디슈>를 포함해 <해적: 도깨비 깃발>, <외계인>, <원더랜드> 등의 후반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시장에서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글로벌 OTT 업체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고 있다.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영화 <부산행> 등의 VFX를 맡은 투썬디지털아이디어나, 영화 <관상>, <악질경찰> VFX 작업을 진행했던 매그논 스튜디오 등도 자체적인 역량과 설비를 갖추고 세계시장으로 발을 넓히는 중이다.

한국이 VFX 기술에 바탕을 둔 SF나 다양한 장르의 영상 콘텐츠 제작에서 경쟁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막대한 자본과 세계 수준에 어깨를 걸 만한 기술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예 시도조차 꿈꾸기 어려운 분야인 탓에 적잖은 난관이 여러겹으로 창작을 가로막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재난영화나 사극, 현대물을 가리지 않고 VFX를 활용하는 장르가 늘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콘텐츠의 스토리만 탄탄하다면 효과를 배가시킬 후반작업의 실력도 충분해진 터라 콘텐츠 창작 여건도 더욱 개선되는 시너지 효과를 보이고 있다. 덱스터스튜디오 관계자는 “이미 VFX 영상의 품질을 더욱 높일 수 있는 언리얼 엔진 기반 버추얼스튜디오 구축에 들어가 있고 VFX 외 색보정이나 음향 디자인 등 후반작업 전 분야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 상태”라고 말했다.

창작기술자들 눈썰미나 감각도 세계화

업계를 선도하는 업체들뿐만 아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후반작업 창작기술자들이 개인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특히 VFX 분야에선 상대적으로 불모지였던 영상콘텐츠 영역이 지난 10여년간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은 인력들이 해외무대로 발을 넓히는 모습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글로벌 OTT 업체로 진출한 국내의 한 VFX 전문 기술자는 “영화 또는 드라마 같은 장르의 차이는 물론, 세계 각 지역에서 선호하는 영상 속 시각효과의 미묘한 차이를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춰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인력의 눈썰미나 감각도 세계화됐다”며 “이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만 잠깐 이름을 찾을 수 있는 ‘뒷방 노가다’ 처지를 벗어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전문가가 말하는 미묘한 차이는 일반 관객의 시선으로는 뚜렷하게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세밀한 부분을 달리해도 작품 전반의 분위기가 좌우되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화 <기생충>에 나온 저택 전경이 관객에게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을 만큼 사실적인 그래픽을 보인 예가 대표적이다. 그는 “나라마다 자연광인 햇빛이 비치고 반사되는 각도가 다르고 건물 등 배경에 주는 색감도 다르다는 점만 보더라도 좀더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전문적인 안목과 구현 능력이 중요하게 대접받는다”고 말했다.

관객에게 첫인상을 심어주는 포스터 디자인 등 후반작업 분야 전반의 세계 수요를 국내 업체들이 흡수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국내 디자인 업체 프로파간다가 넷플릭스의 요구에 맞춰 <무브 투 헤븐> 포스터 제작에 참여하게 된 성과가 대표적이다. 이를테면 로맨스 드라마를 좋아하는 시청자에게는 배우 이제훈과 최수영이 분한 남녀 주인공의 연애 모습을 담은 포스터를 제시하고, 각각의 캐릭터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를 원하는 시청자에게는 역동적으로 복싱 동작을 선보이는 배우의 이미지를 제시하며 관심을 높이고 있다.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이미 까다로운 기준으로 평가하는 글로벌 OTT 업체들의 입맛을 맞춰왔다”며 “그 결과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도 먹히는 콘텐츠를 만든다고 인정받을 정도로 국내 콘텐츠 산업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전까지 중국과 동남아 일부 국가에 집중돼 있던 해외 진출 시장도 전방위로 넓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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