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호숫가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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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국내에 발이 묶여 캠핑이라는 새로운 취미에 눈을 돌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인기 있는 야영 용품을 빨리 사려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중고가도 결코 헐하지 않다. 인기 캠핑장은 한달치 예약 오픈 시간에 맞춰 노트북이며 휴대전화에 로그인해 두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새로고침을 계속해야 주말에 한자리를 얻을 수 있다. 산과 물을 가까이하고 복잡한 일상에서 거리 두기를 하는 게 야영의 묘미일 텐데 그 과정은 치열하니 참으로 K캠핑답다고 하겠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6월 30일 발행한 한국의 인공호수 4곳 풍경을 담은 우표 / 우정사업본부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6월 30일 발행한 한국의 인공호수 4곳 풍경을 담은 우표 / 우정사업본부

상반기에 슬쩍 그 대열에 합류했다. 금요일 저녁, 업무를 마친 피로한 몸을 이끌고 준비를 할 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주말에 야영을 하며 먹을 걸 장 보고 씻고 소분해 담고 장비를 챙기는 동안 솔직히 행복한 적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가는가. 천성이 삐딱한 탓인지, 좋은 걸 쉽게 ‘좋다’ 인정 못 하는 나는 투덜거리며 계속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아직도 다니며 답을 찾는 중이다. 다들 아파트에만 살아 주말 하루라도 이렇게 밖에다가 거실을 차리는 건가? 벽난로 대신 화롯불을 놓고 TV까지 챙겨와? 집 짓고 한끼 먹고 자고 일어나 한끼 먹고 집을 부숴 차에 실으면 지옥 같은 고속도로에 다시 올라타야 하는데, 이럴 거면 왜 이 멀리까지 온 거지?

이 모든 내면의 어깃장을 물리치고 내 마음에 떠오르는 첫 번째 대답은 “아침의 새소리”다. 새소리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캠핑하러 다니면서 인지했다. 늦게까지 할 게 없어 일찍 텐트에 들어갔다가 새벽 무렵 잠에서 깨면, 소리의 주인이 새란 걸 알 수 있다. 다른 모든 소리는 소거상태다. 가만히 누워 눈을 감으면 온갖 새가 활개를 치는 것 같은데, 누구 것인지 알아들을 재주는 없고 다만 동이 트기 직전 가장 시끄러운 게 까마귀 녀석들이란 건 알겠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스럭부스럭, 차소리, 사람 오가는 소리 같은 게 덮이기 시작하면 새소리는 그만 인식에서 저만치 멀어진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데도.

최근 캠핑에선 “아침의 호숫가”라는 새로운 답도 발견했다. 청평호가 보이는 캠핑장은 카페를 겸하고 있어 낮 동안 몹시 붐볐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살림을 차린 우리 바로 옆에서 예쁘게 차려입은 손님들이 끊임없이 셀카를 찍었다. 호수에는 레저용 보트며 수상스키 따위가 바글바글 쉴 새 없이 다니면서 붕붕 소리를 내 정신이 없었다. 인근 숲으로 피신했다 해질 무렵 돌아오니 비로소 평화가 찾아오는 게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사람은 없고 잔잔한 호수뿐이었다. 잠에 빠진 일행을 놔두고 혼자 슬쩍 텐트를 빠져나간 나는 호숫가에 가만히 앉아 커피도 마시고 책도 몇장 읽었다. 한시간이 채 못 되는 그 시간 때문에 귀한 주말 이틀을 다 썼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달 30일 한국의 인공호수 4곳 풍경을 담은 우표를 발행했다. 대청호, 횡성호, 용담호, 소양호. 4곳 중 3곳이 내게 미답지다. 날이 더워 그런지 단풍이 든 선선한 가을 풍경에 몹시 마음이 끌린다. 장마며 더위가 꺾일 즈음 다시 어느 호수를 찾아야겠다.

<최미랑 뉴콘텐츠팀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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