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물관 뮤즈에서 먼로의 드레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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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디지털의 미로에서 마주친 예술의 낯섦과 그로 인해 뒷걸음질 치는 관객들에게 친절함으로 다가오는 디지털 예술에 관해 들여다보았다. 문득 궁금해지지 않는가? 도구로서의 기능 때문에 예술로 인정받기 힘들었던 디지털이 예술로 인정받게 된 시기는 언제였을까?

올라퍼 엘리아슨의 <웨더 프로젝트> / 테이트모던 미술관

올라퍼 엘리아슨의 <웨더 프로젝트> / 테이트모던 미술관

최초의 박물관이라는 개념은 흐르는 핏물 위에서 세워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시민이 왕족과 교회의 미술품과 골동품을 빼앗아 루브르궁전에 전시한 것이 박물관의 시작이었다. 흐르는 핏물 위에 세워진 박물관은 그 이후 오랫동안 제국주의의 힘을 과시하는 얼굴 역할을 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문예 신 가운데 하나인 뮤즈의 신전, 뮤제이온(Museion)에 근원을 두고 있는 뮤지엄(museum)은 과거의 지혜와 유산을 보관하는 성소를 일컫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박물관의 모습이다. 신전은 박물관으로 외관을 바꿨고 뮤즈를 대행하던 이들은 아트(ART)라는 통칭으로 개명한 채 예술로 바뀐 죽은 신들을 이용해 국가와 종교 안에서 자신의 위세를 높여갔다. 가끔 예술이 국가와 종교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듯 보였지만 예술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자유의 몸이었던 적이 없었다.

과학·미술 접점이 미디어아트로 구체화

하지만 1917년 소변기에 작가의 사인을 넣은 마르셀 뒤샹의 ‘샘(Fontaine)’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일개 공산품일지라도 작가의 의도나 개념이 들어간다면 예술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뒤샹 덕분에 예술은 예술가에 의해 창조된 산물이 아닌 예술가의 생각으로 진화했고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작품을 볼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보는 미술이 아닌 생각하는 예술, 행위하는 예술의 시대가 열리며, 작가의 의도와 개념에 대중의 해석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마르셀 뒤샹의 <샘> / christies.com

마르셀 뒤샹의 <샘> / christies.com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제국주의 국가 주도 하의 박물관은 재정악화에 빠졌고, 이로 인해 예술은 일반대중의 도움이 필요하게 됐다. 이후 시대의 강박증처럼 예술이 대중과 같이 성장하고 또한 자신을 소비하게 스스로를 낮추게 되면서 예술은 대중화의 물결을 타게 된다. 어떤 것이든 작가가 계획한 것이라면 예술이 될 수 있는 시대는 자본주의와 결합해 글로벌하게 확장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파울 클레의 신념 이후 모더니즘 예술은 이젤을 벗어나 자유롭게 물감을 흩뿌렸던 액션 페인팅의 잭슨 폴록, 메릴린 먼로, 캠벨 수프 캔이 색색의 레이어로 찍혀져 나오는 앤디 워홀의 팩토리 등으로 거침없이 내달렸다. 현대미술 작가들의 알 수 없는 엉겅퀴 가시 같은 의도와 난해함 속에서 대중은 토끼굴 속의 앨리스처럼 헤매기 시작했지만 적어도 예술과 한 공간에서 같이 호흡하고 있긴 했다.

홍수 같은 예술의 대중화 시대가 지났다. 1960년대가 되자 소비되고 서열화되는 예술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모든 인위적인 것에 대해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관객의 참여를 강조하는 플럭서스 아티스트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관객과의 상호작용과 작품 자체보다 과정을 중요시하는 정신으로 무장한 전방위적인 예술행위를 펼쳤다. 이들의 이념은 디지털 아트 세대로 전수된다. 마침내 과학이 텅 빈 무의 공간에서조차 예술을 만들어내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미디어가 시대를 통찰하는 시대에 이르자 과학과 예술의 접점이 미디어아트라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아트는 전 세계의 예술을 단 몇분 만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도구를 우리의 손에 쥐여주었다. 예술이 관객과 함께 걷고 함께 숨 쉬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다. 디지털 아트를 구현하기 위해 과학자와 예술가들은 공동의 작업을 위해 협업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그들은 프랑켄슈타인의 크리처가 바란 것처럼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공허한 시각적 현란함에 그치지 않고 관객과 함께 소통할 정신적 의미가 내재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인 리얼 라이프> / PKM갤러리 홈페이지

올라퍼 엘리아슨의 <인 리얼 라이프> / PKM갤러리 홈페이지

암호 같은 의미의 예술적 직관 선호

당대의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 중 하나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은 수학과 과학, 건축과 공학의 힘을 빌려 자신의 신념을 표현한다. 태양, 안개, 무지개, 오로라 같은 다양한 자연현상을 그만의 상상력과 과학기술을 끌어들여 미술관 속에 펼쳐놓았다. 거꾸로 흐르는 폭포나 분무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무지개, 미술관 벽면 가득 이식된 이끼, 그리고 미술관 상공에서 거대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에 이르기까지 그의 창조물은 관람객 앞에 너무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잘 아는 자연의 모습이기에 그와 함께 자연을 다시 꿈꾸게 만드는 것이다. 예술이 보여지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세상을 변화시키는 예술의 힘을 강조하는 그는 “작품을 감상하는 ‘당신’이 곧 예술”이라고 말한다.

발전된 과학의 기술적 사고에 예술적 직관과 표현이 동원되면서 디지털 아트는 범 대중의 예술인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기술은 예술을 압도하고 보여주는 것에 치중한 현상의 공허함 또한 범람하게 만들기도 했다. 기술이 예술이 되려면 의미가 있어야 하고 작가의 정체성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거대한 비주얼과 사운드로 치장된 작품을 다시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인가? 지금의 관객은 압도를 강요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익숙하고 편리한 과학기술이라는 재료로 구현된 예술에서 자신들에게 속삭이는 암호 같은 의미의 예술적 직관을 만나고 싶어한다.

기원후 3세기경 플로티노스라는 철학가는 미를 소유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단순한 색채의 지각 속에서 어떻게 표명될 수 있는지에 관해 공론화했다. 1700여년이 지나서야 디지털 아트라는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관객들은 진열돼 경배를 강요하는 예술이 아닌 자신들의 시대와 시각, 철학으로 같이 참여하는 예술가가 되기를 스스로 원하면서 예술의 물길까지 바꾸고 있다. 기원전 거대한 신전에서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추앙받고 경배받던 뮤즈들이 21세기에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휘날리는 드레스를 부여잡고 나를 향해 유쾌하게 웃는 중이다.

<아테니빌 아트디렉터 허지영 스토리텔러 장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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