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전화안내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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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사무직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88년 미국의 VDT 이용규제법이 제정되면서다. 컴퓨터 단말기 화면(Visual Display Terminal, VDT)을 오랫동안 지켜봐야 하는 노동자들이 눈의 피로와 통증, 경견완 장애(어깨·목·팔에 발생하는 근골격계 질환), 두통을 겪을 뿐 아니라 유산 가능성도 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규제법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이 법에는 20대 이상의 단말기를 갖는 기업주가 매주 26시간 이상 단말기를 쓰는 노동자에게 3시간마다 15분의 휴식시간을 주어야 하며, 노동자의 안경과 눈 검사비의 80%를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가 있다. VDT 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는 VDT 증후군에 대한 연구나 실태조사가 전무했다. 1986년 설립된 이래 산업재해 상담실을 운영해온 구로의원이 1989년 일본 노동과학연구소의 지침서 ‘안전한 VDT 작업을 위한 10가지 점검사항’을 번역해 노동조합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1980~1990년대 한국통신 여성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경견완 장애’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었다. 2001년 경견완 장애를 소개하는 경향신문 기사에 함께 게재된 사진. / 경향신문 자료사진

1980~1990년대 한국통신 여성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VDT(Visual Display Terminal)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경견완 장애’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 있었다. 2001년 경견완 장애를 소개하는 경향신문 기사에 함께 게재된 사진. / 경향신문 자료사진

2명중 1명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치료받아

1994년 한국통신공사 노동조합은 팔에 자주 쥐가 나고, 어깨가 뻐근하다고 호소하는 114 안내 작업자들에 대한 개별검진과 설문조사를 구로의원에 의뢰했다. 서울전화안내국 4명이 개별검진을 받은 결과 경견완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노동조합은 전화 가입자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도(1990년 가입자 393만여명, 1995년 520만여명) 114 안내작업자는 1990년 879명에서 1995년 744명으로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한국통신과 싸웠고, 작업자들의 업무 과부하가 심해 비슷한 질환을 호소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과 구로의원이 함께 1995년 1월 18일부터 약 1개월 동안 전국 각 전화국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114 전화 안내, 국제전화 안내, 전신 전보, 고장접수 등 반복된 자료입력을 하고 있는 작업자를 대상으로 VDT 증후군 설문조사를 했다. 3220명 중 32.2%가 경견완 장애 의심자로 나타났다. 게다가 한국통신 입사 후에 허리, 목, 어깨, 팔과 팔꿈치, 손목, 손과 손가락 등 6개 신체 부위에 대해 병원, 한의원, 약국 등에서 경견완 장애로 볼 수 있는 진단과 치료를 받은 사람은 1471명(45.7%)이었다. 거의 2명 중 1명이 입사 후 1회 이상 경견완 장애로 치료를 받은 것이다.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이었던 한국통신 전화 교환 작업자들은 전국 10개 종합병원에서 단체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 검진자의 24%인 918명이 경견완 장애 유소견자 혹은 요주의자로 판명됐다. 다행히 그중 345명은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단일 사업장에서 대규모로 산재환자가 발생한 것은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며 언론은 한국통신 노동자들의 산재 집단 발병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노동조합은 경견완 장애 대책과 관련해 ▲작업환경의 근본적인 개선(노동시간 단축과 휴식시간 등 보장), ▲산재대책강구(특수건강진단 즉각 실시, 물리치료실과 사후 관리체계 마련 등) ▲변형근로제(업무량에 따른 인력배치) 폐지, ▲부족한 인력을 신규 채용 시 파트타이머, 계약, 일용직 채용 거부 등을 요구했다. 물론 사측은 순순히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주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은 농성과 집회를 열어 사측과 맞섰다. 이후 한국통신공사 노동조합의 제안으로 민주노총, 민주노총 산하 연맹조직, 노동과건강 연구회 등 단체들은 1996년 9월 말 ‘단순반복작업에 의한 경견완 장애 대책회의’를 만들고 두달간 조계사 농성을 하면서, 각종 집회와 홍보 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동자들의 투쟁은 산업안전공단의 ‘VDT 대책 세미나’와 ‘VDT 작업 관리지침’ 보완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한국통신의 여성 노동자들이 전화교환 업무를 하는 모습. 1982년에 찍은 사진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국통신의 여성 노동자들이 전화교환 업무를 하는 모습. 1982년에 찍은 사진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성 질병은 집안일이나 히스테리 때문?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사무직 직업병’으로 불리는 경견완 장애를 호소하고,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려 싸운 노동자 대다수가 여성이다. 사무 기술의 자동화와 노동의 탈숙련화로 인해 사무직 노동에서 단순반복적 업무 비중이 높아지면서 본래 여성 일자리가 아니었던 사무직이 여성의 직무로 재편되고 여성은 경리나 사무보조업무를 주로 맡게 된 것이다. 사무직 여성 노동자의 경견완 장애 투쟁은 사무직 여성 노동자를 사무실의 꽃으로 보거나, “사무직은 볼펜이나 잡고 전화나 하면서 적당히 머리만 쓰면 되는 곳”이라는 편견과 싸운 일이었다.

한국 최초의 ‘경견완 증후’ 산재환자는 1989년 문화방송에서 일하던 타자수였다. 이 여성 노동자는 당시 4049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한국 최초의 VDT 사용으로 인한 경견완 증후군 환자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인 통신개발연구원에서 문서입력을 담당하던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통신개발연구원 노동조합은 여성 노동자들이 질환을 호소하자, VDT 증후군 문제대책팀을 구성해 조사를 시작했다. 연구원은 “직업병으로 인정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가 없다”며 정밀검사비만 부담하고 치료비 보상은 하지 않았다. 비록 연구원 여성 노동자들은 직업병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1991년 이들의 싸움은 훗날 은행을 중심으로 한 사무직 노동조합의 직업병 대책활동과 한국통신 전화안내 노동자들의 대응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1990년대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직업병을 드러내며, 건강장해에 대한 금전적 보상뿐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건강문제에 무관심했던 국가와 기업의 행태를 고발하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통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에 관한 관리지침을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고, ▲독성 화학물질만이 아니라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도 역시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점을 드러냈으며, ▲여성 노동자들의 질병이 집안일, 신경증 혹은 히스테리라는 편견에 맞서 직업과 직업병 사이 관련성을 입증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성의 작업과 관련된 건강문제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성희롱에 대한 산재 인정이 가능해지고, 극심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질환도 차차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정비가 되고 있지만, 아직도 산업재해나 직업병의 문제는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고려되는 경향 속에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경견완 장애 발생 실태와 개선방안’(주영미, 경견완 장애 예방대책 민주노총 간담회, 1996년) ‘시민과학연대를 통한 1990년대 여성 노동안전보건운동’(김향수, 시민건강증진연구소, 2012년)

<림보 <회사가 사라졌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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