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투병일기가 나에게 알려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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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 새벽을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꽤 잘나가던 뷰티 유튜버였다. 해사한 미소, 쾌활한 말투에 이끌려 별 관심도 없던 화장법 영상을 서너개쯤 봤던 것 같다. 이후 1~2년쯤 지났을까. ‘오다가다 가끔 얼굴 보는 친구’ 같았던 그가 림프종 혈액암 4기 판정을 받았다고 듣고는 적잖이 놀랐다. 2019년 2월, 그를 ‘팔로’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새벽 유튜브 갈무리

새벽 유튜브 갈무리

암 판정을 받고도 그는 밝아보였다. 오래 준비한 팬미팅을 앞두고 몸이 심하게 부어 병원에 갔는데, 응급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무너질 법도 한데 “암 그까이꺼 씹어먹고 오겠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모습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병에 걸리기 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는 이후로도 꾸준히 유튜브 활동을 이어갔다. 응원의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른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일까. 지난 5월 30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동안 믿기 힘들었다. 부고 소식을 듣고 그동안 못 본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병세는 악화됐다. 외출이 힘들 정도로 체력이 떨어지는 날이 잦아졌고, 영상이 올라오는 주기도 조금씩 길어졌다. 항암 치료로 머리가 빠지고도 “가발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할 수 있으니 오히려 잘됐다”고 말하던 그는 다른 영상에서 “머리를 한 번 질끈 묶어보고 싶다”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밝은 미소 뒤에 가려진 아픔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암은 분명 새벽의 일상을 바꾸었다. 새벽도 이에 지지 않고 일상을 지켜냈다. 암에 걸린 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고, 키우고 싶었던 고양이를 입양했다. 힘든 투병생활 중에도 가족·친구·연인과 맛있는 밥을 나눠먹고,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토록 좋아하는 영상을 찍었다. 어쩌면 병은 삶에서 만나는 수많은 고난 중 하나일 뿐이고, 우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이를 견디면 될 일이라고. 새벽의 일상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건강한 몸’을 기본값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병든 몸들’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다. 건강을 잃고,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들과 불화하고…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환자에 대한 이미지 때문인지 엄마는 “병 걸려 자식들에게 폐 끼치기 전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병에 걸렸다’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장 사이엔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이 생략돼 있나. 최근 치매 증세가 있는 외할머니 집으로 곶감을 보냈는데 할머니는 “이렇게 맛있는 과일은 생전 처음 먹어본다”며 웃었다고 한다. 팔십 평생 수십 번은 먹었을 곶감이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즐거움이 되다니.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엔 그저 슬픔만 있지 않다는 걸 그동안의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새벽이 떠나고,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에게 젊은 환자들의 투병 브이로그를 부쩍 자주 권해준다. 병세가 호전되든 악화되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내는 이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 수 있다고, 그러니 지금 나에게 주어진 일상을 소중히 여기자고 생각한다. 이를 깨닫게 해준 모든 이들에 건강과 행복, 평안이 함께하기를.

‘꼬다리’는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를 말하는 꼬투리의 방언이다. 10년차 이하 경향신문 기자들이 겪은 일상의 단상을 전한다. ‘꼬’인 내 마음 ‘다’ 내보이‘리’라는 의미도 담았다.

<심윤지 뉴콘텐츠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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