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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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93% 올랐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장된 발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제가 짚어본 몇지역의 아파트들도 그렇게 올랐더군요. 성난 민심은 여야 지지율을 뒤바꿨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폭락시켰습니다. 깜짝 놀란 정부여당은 대책이란 것을 또 내놓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관입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를 완화하고 집값의 90%까지 대출을 해주겠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게 맡기겠다는 시그널로 보입니다.

[편집실에서]시장을 믿지 마라

그런데 시장에 맡기면 정말 부동산가격이 안정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시장은 그렇게 선하지 않습니다.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우게 했던 민간임대사업자 등록제도가 대표적인 친시장 정책이었습니다. 이 제도는 전·월세 시장을 공공이 아닌 민간에게 맡기자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입니다. 민간사업자에게 취득세, 재산세, 종부세, 양도세 심지어 건강보험료까지 깎아주겠으니 전·월세를 안정적으로 공급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파격적인 세금감면과 규제완화는 집을 더 살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주택매매시장에서 매물 실종은 패닉바잉이 시작되는 불씨가 됐습니다.

시장 옹호론자들이 흔히 빠지는 착각이 있습니다. 시장은 합리적이어서 맡겨두면 알아서 잘 돌아간다는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무한히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하며 상품의 생산과 판매 조건이 같고, 진입장벽이 없으며 갖고 있는 정보의 차이도 없는 ‘완전 경쟁시장’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이뤄지기 힘든 실험실 같은 조건들입니다.

현실적으로 ‘시장에 맡기라’는 대기업, 돈 있는 사람, 기득권자에게 맡기라는 뜻과 같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라는 것과 다름이 아닙니다. 민간임대사업자 등록제도가 딱 그랬습니다. 임대로 내놓은 집은 종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100여채를 사들인 집주인 사례도 있는 것으로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부동산정책뿐 아닙니다. 산업정책, 금융정책에서도 시장에 맡기라는 요구가 많습니다. 하지만 규제 없는 경쟁은 필연적으로 독점을 낳습니다. 독점은 규모의 경제를 이뤄 효율성을 높일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옵니다.

시장만능주의는 요즘 유행한다는 ‘능력주의’와도 맥이 통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실력대로 시험을 쳐서 평가하면 가장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은 ‘동굴의 우상’에 가깝습니다. 단언컨대 좋은 부모를 만나 환경 좋은 곳에서 공부한 금수저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방식입니다. 시장주의의 심장이라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은 유효합니다. 시장은 그 자체로는 결코 ‘마스터키’가 아닙니다.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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