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심야노동 대책 나올 때까지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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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에서 일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부모 장광·박미숙씨 인터뷰

저녁 7시에 ‘출근’하는 아들은 동틀녘에야 귀가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몸이 ‘먼지투성이’라며 늘 욕실로 직행했다.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용직으로 일해온 1년 4개월 내내 그랬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2일 ‘그날’만은 욕실에서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문을 열어보니, 아들은 욕조 속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장광씨(59)와 박미숙(54)씨는 “친구 같고 스승 같았던” 속 깊은 첫째 아들 고 장덕준씨를 그렇게 잃고 말았다.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고강도 장시간 심야노동을 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오른쪽)와 아버지 장광씨 / 송윤경 기자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고강도 장시간 심야노동을 하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오른쪽)와 아버지 장광씨 / 송윤경 기자

경기 이천시의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지 약 일주일이 됐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물품창고 멀티탭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이 포착됐다고 한다. 이 멀티탭은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를 쓰기 위해 설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프링클러는 제때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 사실을 알렸음에도 관리자에게 묵살당했다”는 내용의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축구장 15개 면적과 맞먹는 거대한 물류센터는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가연성 물질이 가득해 불길 진화에만 엿새가 걸렸다. 동료들을 먼저 내보냈던 고 김동식 광주소방서 119구조대장은 끝내 숨지고 말았다. 시민들은 쿠팡이 이토록 열악한 노동환경을 방치해온 사실에 분노했다. SNS에선 ‘쿠팡탈퇴 인증’이 이어졌다.

쿠팡 물류센터 화재는 장광씨와 박미숙씨에게 ‘남일’이 아니었다. 부부는 아들을 잃은 후 물류센터 심야노동 대책을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냉난방 시설조차 없는 곳에서 장시간·고강도 심야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고 장덕준씨의 어머니 박미숙씨와 아버지 장광씨를 지난 6월 23일 경북 경산시에서 만났다.

-아들의 죽음 직후 쿠팡은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는데요.

박미숙 “사실 처음에는 부검할 생각도 못 했어요. 장례식에 쿠팡 동료들이 정말 많이 와서 슬피 울었어요. 그중 한사람이, 우리 아들이 일하던 중에도 주저앉아 고통스러워했다는 얘길 들려줬어요. 이상함을 느껴 그제야 알아봤죠. 전문가들로부터 과로사가 의심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쿠팡은 우리 아들이 빈 박스 같은 가벼운 포장 부자재만 날랐다고 했어요.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몸무게 15㎏이 빠졌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더군요.”

-쿠팡에서 계속 부인했지만, 결국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임을 인정받았습니다.

박미숙 “쿠팡이 언론과 국회엔 산재 관련 자료 요청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않았어요. 업무분담표를 달라고 했지만 받지 못했어요. 급여내역도 못 받았고요. 한달분의 근로계약서, 12주분의 출퇴근 기록만 받을 수 있었어요. 그 자료들하고 부검 결과, 그리고 몸무게가 줄어 제가 새로 사준 청바지 등을 자료로 내야 했어요.”

-근육이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박미숙 “아이가 처음에는 ‘피커(주문서대로 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일)’로 일했어요. 그러다가 ‘스파이더(피커의 업무와 포장을 지원하는 일)’가 됐는데요, 쿠팡이 아이의 업무라며 내세운 것들은 극히 일부예요. ‘피커’들이 빨리 일할 수 있도록 물건을 적재하고, 작업이 끝난 바구니를 몇 겹으로 포개 포장 담당자에게 가져다주고, 포장이 끝난 물건을 상하차 작업장으로 옮기는 일도 했어요. 친구 같은 아들이라, 평소에 하루 일과 얘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그때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쿠팡 물류센터를 공부해 알아낸 것들이에요.”

사건 초기 쿠팡은 고인이 주 44시간을 일했고, 노동강도가 낮은 일을 주로 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위원회)의 판정 결과는 판이했다. 위원회는 고인이 평균 주 58시간을 일했고, 사망 직전에는 주 62시간을 일한 것으로 판단했다. 야간노동은 30% 가산을 하기 때문이다. 고인이 맡았던 업무 또한 ‘포장 부자재’만 날랐다는 쿠팡 주장과 달랐다. 위원회는 고인이 5.5㎏짜리 상자를 하루 약 100번까지 옮겼고, 30㎏짜리는 40번까지 실어야 했다고 밝혔다.

“쿠팡의 심야노동 대책 나올 때까지 싸운다”

-고인이 생전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들었습니다.

박미숙 “‘스파이더’는 원래 두 사람이 하는 일이었대요. 그런데 홀로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전임자들이 대개 무릎이나 허리를 다쳐서 나갔대요. 그만큼 강도가 높은 노동이었던 거예요. 저는 ‘(지금의 업무구조가)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한번 바꿔봐’라고 얘기했어요. 얘기를 해야 바뀐다, 한번 두번 얘기해선 바뀌지 않는다. 바뀔 때까지 얘기해봐라. 제가 그렇게 얘기했어요. 세상이 그렇게 변해왔으니까. 제가 그렇게 쉽게 생각했어요.”

-문제를 제기해 봤지만 바뀌지 않았던 거군요.

박미숙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눈엣가시로 여겼던 것 같아요.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면서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쿠팡을 못 이긴다, 쿠팡의 노예다’라고. 정말 많이 얘기했어요.”(고인은 동료들과의 단체 대화방에서 자신이 일하는 곳을 ‘세기말 7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장광 “쿠팡에 대해 알아보니까, 시간당 생산량(UPH·units per hour)이 사람 죽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의 한시간마다 ‘마감’이 있대요. 시간당 150개(주문서 소화량)가 가장 높은 수치인 줄 알았는데, 만약 200을 하는 사람이 들어왔다? 그러면 200이 목표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오늘 UPH 200을 했는데 다음날 150을 했다? 그러면 경위서를 쓰거나, 다음날부터는 일감을 주지 않는대요. 우리 애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예요. 아마 극한까지 내몰려 일했던 것 같아요.”(쿠팡이 최근 노동 속도를 압박하는 UPH 시스템을 폐지했다고 밝혔지만 부부는 “거의 한시간 단위의 마감은 여전히 있기 때문에 바뀌었다고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 견뎠던 것은 무기계약직 희망 때문이었을까요.

박미숙 “아이의 죽음이 알려진 후 ‘일을 안 했으면 됐잖나, 자기 욕심 때문에 일해 죽었는데 왜 문제를 삼느냐’는 댓글을 많이 봤어요. 아이가 근무기간 2년을 채워 무기계약직이 되고 싶었을 수도 있겠죠. 아이가 업무구조에 대해 문제 제기를 많이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아는 우리 덕준이는, 무기계약직 자체가 목표가 아니었을 겁니다. 2년간 정말 열심히 하고 난 후의 결과를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부조리한 현실을 확인해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쿠팡 심야노동 문제를 알리기 위해 지난 한달간 전국을 돌았다고 들었습니다.

장광 “2월 9일에 산재 인정을 받았는데 쿠팡에서 연락이 왔어요. 지금이라도 해결하고 싶다고, 2월 15일에 보자고. 그래서 계획돼 있던 기자회견을 취소했어요. 그런데 13일에 미국 증시 상장을 했더군요. 우리가 심야노동 대책을 요구해 왔는데, 15일 만나보니 쿠팡이 내놓은 것은 ‘깡통’이나 다름없었어요. 상장 때까지 ‘가만있으라’는 얘기였구나. 뒤늦게 깨달았죠. 그후 또 묵묵부답이더군요. 그래서 다시 나섰습니다.”(장씨는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냉동탑차 외벽에 두르고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기자회견을 했다.)

박미숙 “사실 쿠팡은 지난달까지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았어요. 산재 인정을 받자, 사과 입장문을 냈을 뿐, 저희에게 직접 사과한 사실이 없습니다. 지난달에 쿠팡에서 전화왔길래 그 얘길 했더니 그제야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보상금만 얘기해요. 물류센터 심야노동 대책에 답을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는 대화할 수 없어요.”

-무엇이 꼭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박미숙 “냉난방 시설과 휴식시간이요. 푹푹 찌는데 냉방시설이 없고, 창문도 닫아놓아 통풍도 안 돼요. 일하다 쓰러져 실려가는 사람도 많다고 해요. 심야에 8시간 동안 일하는데 식사시간 외엔 휴식시간도 없어요. 아들이 죽고 나서 심야노동 자료를 뒤져봤거든요. 연구가 많이 없더라고요. 앞으로 심야노동자가 어떤 문제를 겪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쿠팡은 ‘로켓배송’ 덕분에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빠른 배송의 편리함을 주목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박미숙 “아들이 쌀이나 물을 살 일이 있으면 직접 사서 어깨에 이고 오더라고요. 그때는 몰랐어요, 왜 그랬는지를. ‘내가 편하면 누군가는 불편하다, 고통스럽다.’ 아들이 자주 했던 말이에요. 한번쯤 생각해 봐주세요.”

장광 “로켓배송을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에요. 노동자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거죠. 요즘은 통닭 배달료도 3000원인데, 쿠팡은 로켓배송 회원가입비가 2500원이에요. 값싼 편리함을 누리는 동안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부부는 아들을 “남을 잘 돕는 성실한 청년”으로 키운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박미숙씨는 생전의 아들에게 늘 들려주던 가물치 이야기를 해주었다. 덕준씨가 막 돌이 지났을 무렵의 일이다. 아들은 성인이 돼서는 건장했지만, 그때는 잔병치레가 잦았다고 한다. 몸보신을 해주려 가물치를 사서 버스를 탔다. 아이를 업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만 가물치가 비닐봉지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고 한다. 버스 바닥을 휘젓고 다니는 가물치를 보며 박씨는 당황했다. 그때 어느 여고생이 벌떡 일어나 가물치를 잡아 비닐봉지에 다시 담고, 꽁꽁 묶어주었다. 부부는 가물치 얘기를 해주며, 덕준씨를 “보이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청년으로 키웠다고 했다.

‘쿠팡탈퇴’ 운동 이후 나흘간 쿠팡 앱 사용자는 47만명 줄었다고 한다(빅데이터 플랫폼 ‘아이지에이웍스’ 집계). ‘로켓배송’ 이면의 고통에 대해 한국사회가 이제야 응답하고 있는 셈이다. ‘보이지 않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라.’ 덕준씨 부모의 가르침을 이제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차례 아닐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 박씨는 “쿠팡 노동자들의 아픔이 또다시 묻힐까 두렵다”고 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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