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판사에겐 두개의 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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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헌법에서 ‘양심’을 규정한 부분은 시민에게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제19조), 국회의원이 직무를 행할 때 요구되는 양심(제46조), 법관이 재판할 때 요구되는 양심(제103조)이 있다. 제46조는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에는 법적으로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독자적인 양식과 판단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시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법전문가들은 풀이한다. 하지만 시민에게 양심의 자유를 어떻게 보장할지, 법관의 양심에 따른 재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생각이 다르다. 몇년 전부터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재판에서 판사들이 증인으로 나오면서, 어느 언론은 <판사와 두 개의 양심>이라는 제목의 연재물로 증언 내용을 상세하게 보도하고 비판한다. 양심에 따라 재판 업무를 수행하는 판사가 또 다른 이유로 양심을 갖춰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해야 할 증인으로서의 양심(형사소송법 제157조)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법대에서 증언대로 내려온 판사는 있는 사실 그대로 증언해 시민으로서 양심을 지켜내야 할 것이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양심 지키려 단두대에 선 영국 대법관

1535년 7월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홀 왕좌법정에서 전 대법관 토머스 모어에 대한 반역죄 재판이 열렸다. 그를 대법관으로 임명했던 헨리 8세는 아들을 못 낳는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반대하는 로마 가톨릭 교황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가 영국 교회의 유일한 수장이고 영국 교회는 더 이상 교황청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수장법’을 만들었다. 또 캐서린과의 결혼은 무효이고 앤 불린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만이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선언하며, 신하들에게 지지하는 맹세를 하라고 요구했다. 왕의 이혼을 반대하지 않지만, 가톨릭교회의 질서와 정신적 권위가 세속 권력의 위에 있다고 굳게 믿은 모어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선서를 거부했다. 모어의 믿음을 법적으로 보면, 이성적이고 보편타당한 자연법에 어긋나는 실정법은 무효이고 권력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리라. 결국 보편적 세계질서를 무너뜨리려는 폭군 앞에서 자신의 양심을 지킬 방법은 단두대로 올라가는 것밖에 없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해 9월 28일 서울 탈환(수복)까지 석달 동안 북한군 치하에서 부역행위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이 시행됐다. 부역자는 종자를 말려야 한다는 험악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정된 법령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게 돼 있었다. 1만여명이 재판에 넘겨졌는데, 위협에 어쩔 수 없이 100원을 내놓은 사람도 처단될 처지였다. 서울지방법원 유병진 판사는 고민했다. 가족이 부역자들로부터 핍박받은 개인적 사정과 격정적 여론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만약 서울에 남아 북한군 치하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란 물음을 자신에게 던졌다. 유병진은 ‘그런 상황에서 총살 위협을 무릅쓰고 요구를 거역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재판관의 양심에서 나 이상의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했다. 마침내 ‘일반시민에게 지사의 민족의식을 요구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부역의 정도가 문제되는데, 그것은 민족의식에 대한 최소한도 희망선과 생에 대한 애착심 강도선의 접촉점에서 기준을 그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억울한 사람을 풀어주었다. 그해 말 정부도 ‘과거부터 좌익분자가 아닌 한 관대한 처분도 할 수 있다’라는 지침을 내렸다.

1953년 한국전쟁은 끝났지만, 물자 부족으로 극심한 생계 곤란을 견디지 못해 약간의 생필품을 훔쳤다거나 배급서류를 변조한 사람들이 형사법정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기껏해야 쌀 한가마니를 살까 말까 한 소액의 판사 월급과 정부가 제공하는 배급만으로는 12명 가족의 양식을 충당하지 못해 서울지방법원 김홍섭 판사는 시골에 남아 있는 친척까지 부양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배급을 약간 더 타냈다. 어느 날 어떤 아낙네가 쌀 배급을 속여 탄 사건을 맡았다. 김홍섭은 동료에게 “나처럼 죄 많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줄 수 있겠소. 나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라 배급을 좀 더 타먹었는데 꼭 같은 죄인끼리 어찌하란 말이요”라고 하소연했다. 결국 김홍섭은 피고인들 집을 방문해서 월급을 가불해 산 쌀 한말씩을 남몰래 전해주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법정에서 아낙네의 낯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무 수행상 양심과 공존 여지 충분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재판과 관련된 법관의 양심이란 무엇인가?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사를 법만으로 규율할 수 없고 도덕적 가치판단이 불가피하므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는 양심에 따라 판결할 권한을 준 것이다. 법관의 양심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양심(헌법 제19조)이 아니라 공정성과 합리성에 근거해 법을 해석해야 하는 직무 수행상 양심이다(객관적 양심설). 어떤 법관이 종교적 교리에 따라 사형과 이혼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신념을 갖고 있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해당 법조문의 적용을 배제하는 것은 옳지 않고, 헌법과 법률에 따른 법조적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 법관의 양심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김우창 교수가 <법과 양심>에서 내린 결론을 인용한다. “순수한 법률적 판단이 가능한 사안에도 개인적 주관에 의존하는 판단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객관적이려고 하면서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 인식능력의 성격에 기인합니다. 그런데 법률체제 안에 있으면서 이루어지는 법률적 판단은 법체제 전체의 일관성에 의하여 제한된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관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법체계가 발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무 수행상 양심이지만, 법관이 다른 판사들의 생각을 추측하고 의식해 똑같은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옳고 그름에 대해 그렇게 판단하지 않고서는 판관으로서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점은 판사도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현존 법질서와 무관하거나 심지어 어긋나는 생각이나 의견, 사상과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것은 직무 수행상 양심과 함께 내면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알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자세는 한편으로 법만 아는 미성숙한 인간임을 자인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개인적 양심을 법관의 양심으로 포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도 낮에는 공자와 맹자의 주자학적 질서를 숭상했지만, 밤에는 초월과 해탈을 꿈꾸며 노자·장자와 불교에 빠져들었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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