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최악의 식량난 아니지만 문 열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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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이후 전면봉쇄 택한 북한, 교역 재개 움직임

한미정상회담엔 긍정적 평가 가능성 높아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시작된 지 약 500일이 지났다. 북한은 그간 모든 국경을 봉쇄하는 초강경 대응을 유지해왔다. 북중 교역도 멈추다시피 했다. 지난해의 경우 2~9월까지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가 10월 이후부터는 아예 중단됐다. ‘밀무역’ 역시 크게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시적 차원의 방역을 선택한 북한의 경제 사정은 지금 어떨까. 2019년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얼어붙은 남북·북미 관계의 돌파구는 언제쯤 열릴까.

북한 신의주에서 출발한 트럭들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으로 건너오는 모습. 2017년 9월 찍힌 사진이다. / AP연합뉴스

북한 신의주에서 출발한 트럭들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으로 건너오는 모습. 2017년 9월 찍힌 사진이다. / AP연합뉴스

식량난 심화 북한은 그동안에도 식량 부족을 겪어왔지만, 중국과의 교역을 끊으면서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싱크탱크인 ‘GSnJ 인스티튜트’의 북한농업 전문가 권태진 시니어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이 “자체 해결 범위 밖”이라고 평가한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북한은 봄 가뭄, 농자재 부족, 여름철 자연재해 등 삼중고를 겪어 작황이 나빴다”면서 “연간 식량 수요와 비교하면 135만t이 부족하고, 지난해 수준의 교역·지원량을 대입하면 100만t가량이 부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에 필요한 연간 곡물량은 575만t(유엔식량농업기구·세계식량계획 분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난해 북한의 곡물생산량은 440만t(농촌진흥청 추정)이니 부족분이 100만t을 훌쩍 넘는다. 다만 농촌진흥청은 개인의 소토지 경작 등은 감안하지 않고 계산하기 때문에 실제 곡물생산량과는 차이가 클 가능성이 있다. 그렇더라도 중국으로부터의 공식·비공식 수입분이 급감하면 유통되는 곡물은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권 연구원은 “식량 부문에서는 김정은 정권 들어서서 올해가 아마 가장 나쁜 해일 것”이라면서 “특히 저소득층, 취약계층부터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북한에선 해상에서의 식량 조달도 어려워졌다. 비영리기관인 글로벌피싱와치(GFW)의 조사결과를 보면 북한 오징어잡이의 조업 일수는 95%나 줄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6월 9일 ‘비상방역진지를 더욱 철통 같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코로나19 방역 현장 사진을 보도했다. 산림기자재공장에서 직원들이 방역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6월 9일 ‘비상방역진지를 더욱 철통 같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코로나19 방역 현장 사진을 보도했다. 산림기자재공장에서 직원들이 방역 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 노동신문=뉴스1

다만 전문가들은 전면봉쇄 이후의 북한의 식량난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아사자가 발생할 정도의 위기가 있다면 식량가격이 심각하게 출렁인다든지 몇가지 징후가 보이는데 그런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는 것이다.

북한 내부경제 역시 붕괴를 논할 수준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의 봉쇄는 ‘셀프봉쇄’로, 스스로 방역을 위해 경제적인 대가를 치르기로 한 것이었다”면서 “북한 경제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 상대적으로 회복이 된 상태였고, 교역이 없다 하더라도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중 교역 재개 움직임 그러나 ‘견딜 만한 수준’이라고 해서, 언제까지고 북중 교역을 중단할 수는 없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식량 부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선 북중 국경을 활짝 열고 비공식적인 식량 교역이라도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북중 교역 재개설은 최근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 공식화되지는 않았다. 양문수 교수는 “북중 교역이 육상을 통해서는 아직 재개되지 않았지만, 올 3~4월에 해상을 통한 교역은 일부 있었다”면서 “생필품과 비료가 들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수준은 어떨까. ‘확진자 0명’이라는 북한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조성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지난해 1월 28일부터 중앙인민보건지도위를 가동해 매우 빠르게 원시적인 수준의 차단에 나섰다”면서 “이런 대응이 통했을 수 있다. 최소한 북한 내 감염은 거의 없거나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백신 공동구매·배분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측에 백신 공급을 요청했지만 ‘모니터링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5월 31일 보도한 코로나19 방역 현장. 봉화산여관의 직원이 방역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 5월 31일 보도한 코로나19 방역 현장. 봉화산여관의 직원이 방역작업을 하는 모습이다. / 노동신문=뉴스1

대화 돌파구는 열릴까 코로나19 사태는 2019년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북미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터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코로나19 공동 대처”를 제안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냉랭했다. 북미관계가 멈춰선 상태에서의 남북 교류·협력 시도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만한 결과가 나왔다. 미국은 2018년의 판문점 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 기존의 합의에 기초한 대북 정책을 약속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남북 대화·협력을 지지”하겠다고 표명했다. 성김 인도네시아 대사를 대북특별대표로 임명하기도 했다. ‘대화 의지’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북한에 “지금 이 시점을 놓치지 말라”(이인영 통일부 장관, 뉴시스 인터뷰)는 메시지를 보내면서 8월에 예정된 한미군사훈련의 축소·연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도하되,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조언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회담 결과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대선 국면이 시작되면 대화가 진전되기 힘들기 때문에, 하루 빨리 연락채널을 복원해 소통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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