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올림픽을 ‘정치판’으로 만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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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독도 도발, 도쿄올림픽 불참보다 전략적 대응해야

“올림픽과 관련한 모든 시설이나 장소에서 그 어떤 정치적·종교적·인종차별적 시위나 선전 활동을 금지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제50조 내용이다. 올림픽을 스포츠 이외의 목적에 이용하지 말 것을 규정했다. 한국은 해당 조항과 관련해 몇차례 경험이 있다. 주로 독도와 관련된 문제였다.

지난 6월 2일 경북 포항 남구 호미곶 손 조형물 앞에서 서예가 김동욱씨가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일본 지도에 표기한 독도를 삭제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월 2일 경북 포항 남구 호미곶 손 조형물 앞에서 서예가 김동욱씨가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일본 지도에 표기한 독도를 삭제하라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남자축구대표팀 일원으로 동메달을 획득한 박종우 선수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승리를 자축했다. IOC는 이를 정치적 선전이라는 이유로 문제 삼았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남북 선수들은 개막식에 독도가 표시된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하게 돼 있었다. 일본은 이를 항의했고, IOC의 권고를 받은 한국은 독도를 삭제했다. ‘올림픽과 정치가 관련돼서는 안 된다’는 IOC 원칙을 존중한 결과였다.

하지만 원칙은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 오는 7월 23일 개막 예정인 도쿄올림픽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지도를 띄워두고 성화봉송 경로를 소개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지도에 독도가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독도가 한국의 주권 행사 지역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는 한반도기보다 중대한 문제다. 그럼에도 IOC는 해당 문제에 대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상 개최는 한 번

처음 이 문제를 발견한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IOC에 즉각 항의했다. 서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IOC의 결론은 일본 올림픽 조직위에 물어보라는 것”이었다며, “IOC가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올림픽 스폰서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기업 3곳이 올림픽을 치르는 데 필요한 예산의 4분의 1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정치적 선전은 독도뿐만이 아니다. 국가 대항 경기에서 등장하는 전범기(욱일기) 응원 역시 문제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욱일기를 펼쳐드는 건 정치적 주장이나 차별 행위가 아니다”고 정당화한다. IOC는 이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모호한 입장을 밝혔다. IOC 스스로 정치적 선전과 순수한 응원을 구분할 사전 원칙이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국가적 역량이 총동원되는 올림픽은 순수 스포츠 대회로만 보기 어렵다. 다만 올림픽을 정치·외교적 도구로 이용하는 경우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전 세계가 참여하는 화합의 장을 만든다’는 기본정신이다. 일본은 역대 올림픽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받은 적이 있다.

일본의 수도 도쿄는 1940년, 1964년, 2020년 총 3번 하계올림픽을 유치했다. 이중 정상적인 대회 진행이 가능했던 것은 1964년 한 번이다. 1940년 올림픽은 일본이 주장하는 건국 2600년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었다. 동시에 올림픽 유치를 통해 당시 일본제국의 국력을 과시하려는 뜻이 반영됐다. 문제는 당시 일본의 역량이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만들어낸 결과였다는 점이다.

1931년 만주사변은 1937년 중일전쟁으로 확대됐다. 당시 IOC 위원장 앙리 드 바이예-라투르는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많은 국가의 참가 거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개최권을 반납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일본은 올림픽 개최를 스스로 포기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공개한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일본 지도에 표기한 독도 / 서경덕 교수 제공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공개한 도쿄올림픽 조직위가 일본 지도에 표기한 독도 / 서경덕 교수 제공

2020년 올림픽 역시 코로나19로 1년째 표류 중이다. 개막이 4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본 내 하루 확진자는 여전히 100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올림픽에 대한 일본 내 여론도 좋지 않다. 지난 6월 7일 요미우리 신문이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도쿄올림픽을 ‘개최해야 한다’는 응답이 50%, ‘취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48%로 팽팽한 상황이다. 이마저도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으로 반대 여론이 급감한 결과다.

그럼에도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권은 도쿄올림픽 강행 의지를 밝히고 있다. 이를 두고 정부 방역대책을 돕는 오미 시게루 코로나19 대책분과회 회장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대회를) 하는지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올림픽의 도구로서의 기능만을 쫓는 정치권을 꼬집은 것이다.

올림픽 강행으로 얻는 것

올림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도구적 효과는 ‘정치적 목적 달성’, ‘국가 위상 강화’, ‘경제적 효과’, ‘지역균형발전’ 등이다. 도쿄올림픽은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부양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야모토 가쓰히로 간사이대 명예교수는 “올림픽이 축소된 형태로 치러지면 1조3898억엔의 경제 손실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지역균형발전 역시 수도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극적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올림픽 강행은 ‘정치적 목적 달성’과 ‘국가 위상 강화’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정치적 목적은 일본의 선거 일정과 관련돼 있다. 오는 9월이면 스가 총리의 자민당 총재 임기가 만료된다. 10월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만약 올림픽이 취소되거나 다시 연기되면 스가 내각은 그날로 총사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정치적 미래가 걸려 있는 만큼 목숨 걸고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 위상 강화’는 일본이 가장 강했던 시기의 향수를 되살린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리와 전범기를 들고 열광하는 일본인의 모습이 필요하다. 독도 문제에 관한 일본의 도발도 이와 관련이 있다. 스포츠는 외교활동과 유사한 효과를 만들면서도 국제법이나 국제관행의 구속을 덜 받는다. 일본은 이를 이용해 아슬아슬한 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서는 ‘올림픽 불참’과 같은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냉정한 대응을 조언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독도나 욱일기 문제는 늘 있던 도발로 올림픽이라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며 “일본은 늘 하던 대로 일방적 주장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 분위기도 이와 유사하다. 박정진 일본 쓰다주쿠대 교수는 “현재 일본에서 독도 문제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스가 내각의 지지율과도 크게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결국,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전략적 무대응을 깰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독도에 대한 영토주권을 주장하는 것 이상의 대응은 자칫 우리 스스로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며 “정치논리가 아닌 전략적 고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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