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해고 갈림길에서 희생양이 된 ‘밥하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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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 현대자동차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밥주걱 투쟁’은 여성 노동자 비정규직화의 시작을 알리는 투쟁이었다. IMF 시대에 접어든 1998년 4월, 현대자동차에 ‘1만명 감원설’이 떠돈다. 곧이어 전체 직원 4만여명 중 8189명을 정리해고하려는 계획이 5월에 발표된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시킨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를 법제화한 불리한 시점에, 현대자동차 노조는 정리해고를 저지하는 총파업 투쟁을 시작한다. 격렬했던 36일간의 파업은 끝내 1261명의 무급휴직과 277명의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며 노사 간 합의로 마무리된다. 정리해고된 277명의 노동자 중 144명이 현대자동차 공장 식당의 여성 노동자였다.

현대자동차 식당 노동자들의 1998년 사내 시위.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의 3년간의 싸움은 ‘밥주걱 투쟁’이라 불린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대자동차 식당 노동자들의 1998년 사내 시위. 정리해고에 맞선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의 3년간의 싸움은 ‘밥주걱 투쟁’이라 불린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여성 노동자들은 노사 간 거래에서 ‘더 큰’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명분으로 희생양이 됐다. 이런 희생을 암묵적으로 강요한 명분은 여성 노동자는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실질적인 생계 부양자였고, 어떤 일이 있어도 정리해고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밥주걱 부대’가 돼 뜨겁게 싸웠다.

만나려 하지 않는, 평행선

파업한 지 한달이 지나자, 정부의 중재단이 공장에 내려온다. 사측의 구조조정 입장을 대부분 반영한 중재안을 받지 않으면, 당장 공권력이 투입된다는 정부와 회사의 압박이 있었다. 노조위원장은 식당 조합원들에게 정리해고를 수용하면 회사로부터 식당 운영권을 받아와 ‘노조 식당’을 운영해 고용 승계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한다. 노사가 정부 중재안에 합의하고, 144명의 식당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이 운영하는 식당의 하청노동자가 된다.

왜 하필 여성 노동자여야 하는가? ‘차 만드는 남자’와 ‘밥하는 여자’는 동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1998년 파업투쟁 동안 노동자들은 서로를 동지로 여겼지만, 해고의 갈림길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그저 ‘밥하는 아줌마’였고, 동등한 노동자로 여겨지지 못했다. 여성 노동은 중심/주변, 숙련/비숙련, 본청/하청 노동자의 분리와 차별 구조 속에서 주변적, 비숙련, 하청, 비정규직에 자리한다. 자본은 차별하고 분리해내기 쉬운 노동력부터 유연화하고자 했다. 이때 자본과 ‘민주 노조 세력’은 남성 중심, 가부장적 경향에 있어 다르지 않았다. 필요할 때는 투쟁의 ‘꽃’이었다가 한순간에 배제된 여성 노동자들은 두 번째 싸움을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평행선>은 해고 이후 1년이 지난 시점, 복직을 위한 이들의 싸움을 기록한 것이다.

한 차례 식사시간이 지나면 뼈마디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손이 퉁퉁 붓게 된다는 노조 식당의 노동 강도는 점점 심해져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노동조합이 직접 운영한다 해도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는 불안정한 고용상태와 열악한 수익 구조는 다른 하청 식당과 다를 바 없었다.

1999년 회사는 4800억의 순이익을 낼 정도가 됐고, 노조는 무급휴직자 복귀와 정리해고자 복직에 대한 단협요구안을 마련한다. 식당 조합원들은 여성 노동자를 포함한 정리해고자 277명 전체에 대한 원직복직 내용을 요구안에 명시해달라고 하지만, 지도부는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정리해고자 중에서도 그나마 이후에 처리될 문제”라며 복직 요구안에서 식당 조합원들을 배제한다. “집행부가 정리해고자가 133명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정영숙 노조 식당 사무장, 영화 <평행선>)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지만 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의 장면들 / ‘여성 노동자 영상보고서’ <밥 꽃·양> 블로그 스틸컷 갈무리

남성 노동자들과 함께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지만 사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희생양’이 된 현대차 식당 노동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밥·꽃·양>의 장면들 / ‘여성 노동자 영상보고서’ <밥 꽃·양> 블로그 스틸컷 갈무리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자들과 1999년 8월부터 원직복직을 요구하는 출퇴근 투쟁을 시작한다. 이들은 회사를 상대로 싸우면서 동시에 노동조합을 상대로 이 투쟁을 인정받기 위한 싸움도 해나간다. 정리해고를 두고 노조와 회사가 평행선을 달렸듯이, 노동조합과 여성 노동자들도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나아갔다. 노조 식당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해고자로서의 신분 보장을 요구하지만 좌절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고자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노조 앞에 천막을 치고 단식농성을 시작한다. 이들은 성차별적 부당해고가 또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복직을 통해 1998년의 부당해고를 꼭 되돌려 놓아야 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이 식당 노동자를 우습게 보고 하청화하면, 다음은 현장의 차례가 될 것이라 믿었다.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1만명이 고용조정된 자리에 1만5000명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너무 잘 알기에

영화 <평행선>의 한 장면이다.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열댓명의 남성 집행부가 빙 둘러앉은 테이블 맨 끝자리에 최종희 노조 식당 위원장이 유일한 여성 노동자로서 앉아 있다. “이만해서 살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면 왜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구하겠습니까. 죽을 판이어서 … 원직복직 요구하는 겁니다.” 노조위원장과 집행부의 대답은 이러하다. “제가 뭐 회장도 아니고 사장도 아닙니다. (웃음) 요구하신 거 내가 다 사장이고 회장이면 (복직)하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우리도 회사 측하고 싸워야 하는데”, “133명 외의 (여성 노동자들) 복직은 언감생심”,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무 의미 없는 얘깁니다.”

노조 집행부는 식당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해 잘 모르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다그쳤지만, 오히려 식당 여성 노동자들은 ‘잘 알기에’ 절망했다. 우리가 아는 것을, 저들은 모른다. 저들이 모른다는 것까지 우리는 너무 잘 안다. <평행선>의 영상기록은 급작스럽게 중단된다. 식당의 조합원들은 노조를 상대로 한 단식을 끝내고, 해고자 지위 보장에 대한 노조의 중재안을 받아들인다. 영화는 촬영 중단 이후 상황을 3컷의 사진과 자막으로 설명하며 갈무리한다.

“노조 식당 여성 조합원들은 2000년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삭발, 단식, 알몸 시위를 했다. 오직 원직복직 쟁취를 위해 2년이 넘게 투쟁해왔으나 결국 원직복직이 아닌 회사가 제시한 협상안을 받아들인다. 1998년 현대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노조 식당 조합원들은 이제 영원히 정리해고자로 남게 되었다.”

참고문헌 다큐멘터리 <평행선>(이혜란·서은주, 2000), <현대자동차 98년 정리해고반대투쟁의 교훈>(전주희), <여성 노동자의 집단적 정리해고와 ‘민주’노조 운동>(신병현, 진보평론 1999)

<하은 「회사가 사라졌다」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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