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베트남의 카카오톡 잘로를 만든 V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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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하듯 베트남에서는 잘로(Zalo)가 없으면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다. 베트남 시장의 80% 이상을 잘로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인구를 대략 1억명으로 보면 8000만명 이상이 잘로로 연결돼 있다. 베트남 국민 메신저 잘로를 만든 회사가 어디일까, 바로 VNG이다.

베트남 국민메신저 잘로 / 본인제공

베트남 국민메신저 잘로 / 본인제공

VNG의 시작은 게임이었다. 닌텐도와 PC게임에 열광했던 소년 리홍민은 커서 호주에서 금융을 공부했고, 2001년 베트남에 돌아와 비나 캐피털에서 근무했다. 여전히 게임에 대한 열정이 남아 있었던 리홍민은 낮엔 투자은행에 다니면서 밤에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했다. 베트남에서는 알아주는 게이머였던 그는 한국의 월드 사이버 게임 대회 출전 기회를 얻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게임사업이 발전한 것을 목격한 그는 베트남에 돌아와 PC방을 열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PC방에 몰려드는 것을 보고 사업기회가 있다고 판단한 그는 2004년 비나게임이라는 게임 퍼블리시 업체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한국 게임업체에 라이선스를 받으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중국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었지만,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결국 그는 킹소프트 레이준을 사로잡았고 라이선스를 얻었다. 이때 출시한 ‘무림전기’가 베트남에서 전대미문의 히트를 쳤다.

본격적인 인터넷 벤처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2009년 VNG로 사명을 변경하고 음악, 뉴스, 채팅 등 게임 이외의 사업들로 확장해 나간다. 징 미(Zing Me)는 베트남 온라인 소셜네트워킹 플랫폼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PC 기반의 성장은 한계가 보였고, 세상은 모바일로 그 무대를 옮겨가고 있었다. VNG는 모바일을 정조준하고 2012년 모바일 메신저 잘로를 내놓았다. 잘로가 베트남 국민 메신저로 등극하면서 VNG는 이제 베트남의 대표 테크기업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베트남 게임업계의 신화를 쓰다

잘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12년 8월이다. 그 전까지는 대체로 외국기업의 메신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대표선수 카카오톡과 라인, 그리고 왓츠앱이 메신저로 도전장을 냈고, 카톡과 라인이 시장점유율 1~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점효과는 오래가지 않았다. 후발주자인 잘로는 어떻게 1등 메신저로 올라서게 됐을까?

직원들을 위한 시설인 VNG 캠퍼스 전경

직원들을 위한 시설인 VNG 캠퍼스 전경

먼저 잘로는 가볍고 단순한 메신저로 출발했다. 카카오톡은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무거운 프로그램이어서 스마트폰의 기본 사양이 좋아야 하며 데이터를 많이 소모한다. 2010년대 초반 베트남 통신인프라는 지금보다는 훨씬 열악했고, 속도가 느리면서 데이터요금도 저렴하지 않았다. 베트남 3G 서비스 가입자 중에서 4G 호환이 가능한 단말기 사용자 수 비율이 5%에 불과했다. 따라서 카카오톡처럼 많은 기능보다는 무료메시지와 무료통화라는 메시지앱의 핵심서비스만 잘 구동하면 고객들은 만족해했다.

두 번째는 음성메시지 기능의 강점이다. 한국인들은 문자메시지를 선호하고, 아니면 직접 통화를 하지 음성녹음을 잘 쓰지 않는다. 그러나 베트남의 경우 6개의 성조를 가진 문자를 타이핑하는 게 쉽지 않다 보니 ‘보이스 메시지’ 기능을 선호한다. 이는 중국인들이 위챗을 사용할 때 타이핑보다 음성녹음을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세 번째는 베트남 사람들의 국내 기업 제품에 대한 선호도, 그리고 게임업계에서 다져진 VNG의 유연하면서도 영리한 대응이다. 메신저는 그 특성상 나 혼자 쓰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같이 사용해야만 하므로 대다수가 한번 쓰기 시작하면 앱을 바꾸기가 어렵다. 론칭 초반 주목받지 못했던 잘로가 이러한 한계를 쉽게 넘을 수 있었던 데는 단순하고 편리한 기능에 더해 자국 토종 앱으로 이동하는 유저들이 심리적 저항선을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잘로는 베트남인들에 의해 개발된 순수 베트남 앱이라는 점을 강조했고, 계속 친숙한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베트남의 유명인사들을 동원해 TV 광고를 찍고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럴을 일으키며 팬미팅을 여는 등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도록 만들었다. 2013년 마케팅 활동에만 200만달러를 쏟아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3월 잘로는 드디어 1000만명의 이용자를 모으면서 성장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2015년 3000만명, 2015년 5000만명, 2017년 마침내 8000만명의 이용자를 거느린 베트남 1등 앱으로 확고한 자리를 구축했다. 이는 페이스북보다 많은 이용자 수를 기록한 사건이다.

VNG의 모태가 된 인터넷게임 ‘무림전기’ / 본인제공

VNG의 모태가 된 인터넷게임 ‘무림전기’ / 본인제공

Zalo 1등 메신저가 되기까지

베트남에서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자 메신저로 성공한 잘로의 다음 행보는 다양한 기능을 담은 자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2017년 잘로페이가 출시됐으며, 이커머스 잘로숍, 각종 티켓예약과 공과금 납부, 음악, 뉴스 등 모두 39개의 기능이 잘로의 플랫폼에 추가됐다. 카카오톡의 선물하기와 같은 온라인 기프트 서비스가 2020년 론칭했는데 이때 파트너십을 맺은 갓 잇(Got It)을 인수해버렸다.

잘로는 VNG의 대표주자이고 성장 드라이버이기는 하지만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의 일부분이다. VNG의 모태는 게임사업이고 2020년 매출 2억6150만달러 가운데 약 80%를 게임 부문에서 창출하고 있다. VNG가 퍼블리싱한 ‘무림전기’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다. 비디오 게임 ‘징 플레이(Zing Play)’는 해외에서 매월 8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고, 베트남과 태국, 필리핀 등 아세안 지역뿐만 아니라 멕시코와 브라질에서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MMORPG’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에서도 국내외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클라우드 사업 역시 VNG의 미래 먹거리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금융거래에 필요한 본인확인인증(eKYC) 솔루션을 개발해 베트남 은행과 금융기관에 제공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VNG는 슈퍼앱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면서도 전자상거래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티키 지분 22%와 물류 스타트업 에코트럭 지분 20%도 인수했다. 한발 더 나아가 세계적인 스피커 기업 하몬 카돈과 함께 AI 애플리케이션 키키 가상 어시스턴스를 출시했고, AI에 본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베트남은 스마트폰 이용자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시장이다. 높은 경제성장률과 함께 소비자들의 소비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고 시장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기업들이 성장 가도를 달릴 수밖에 없다. VNG는 기회를 포착했고 흐름에 제대로 올라탔다. 이제 게임을 제외한 다른 부문의 성장곡선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VNG의 미래가 달려 있다.

<고영경 선웨이대 비즈니스스쿨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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