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민주의 ‘작가와의 대화’

(1)존 배-철을 소재로 용접작업을 통한 조각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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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전시행사인 프리즈 뉴욕은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다른 전 세계 아트페어들과 마찬가지로 취소됐다. 올해도 여전히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프리즈 뉴욕은 교통이 편리한 맨해튼의 허드슨 야드 옆 쉐드(The shed)로 장소를 옮겨 진행됐다. 지금까지는 맨해튼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거나 멀리 돌아 다리로 들어가야 했던 랜들스 아일랜드에서 열렸다.

존 배 작가가 미국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본인제공

존 배 작가가 미국 코네티컷의 자택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본인제공

방문자들은 물론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모두 백신 접종을 완료한 증명서를 지참하고도 방문하기 전 매일 아침 체크해야 입장할 수 있었다.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방문자들은 입장 72시간 이내에 코로나19 테스트를 하고 음성임을 증명해야 입장이 가능했다. 아트페어 막을 올린 첫날인 지난 5월 5일(현지시간)에는 비바람까지 휘몰아쳤다. 하지만 현장에는 긴 줄로 입구가 북적였고, 오픈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뉴 전체 공간에는 방문객들로 가득 찼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열리는 주간을 ‘프리즈 위크’라고 부른다. 프리즈 위크에는 맨해튼에 있는 모든 미술관과 갤러리가 중요한 전시를 함께 시작해 도시 전체가 다양한 전시를 보러오는 애호가들로 북적인다.

프리즈 뉴욕2021에 작품 전시

이번 프리즈 뉴욕2021에 한국갤러리로는 뉴욕에 있는 티나킴 갤러리와 서울에 있는 갤러리 현대가 참여했다. 이인학(Patrick Lee) 갤러리 현대 디렉터가 유일하게 한국에서 아트페어를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갤러리 현대부스는 한국 작가 2명(존 배·김민정)의 전시로 꾸렸다. 존 배(John Pai) 작가는 철을 소재로 용접작업을 통해 다양한 조각작품들을 창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선과 선을 반복해 이어나가며 기하학적으로 잘 계산된 듯한 자연스러운 곡선을 보여주면서도 다부져 보인다.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지만 계산된 구조들과 기계적인 설치작품을 하는 40대 영국 작가 콘래드 쇼크로스(Conrad Shawcross)가 떠오른다. 한국에서 건축설계 또는 기계공학을 전공한 젊은 작가가 아닐까라는 조심스러운 예상과는 달리, 존 배 작가는 1937년생으로 열두 살 때 미국에 이민 와 40여년 동안 교육자, 행정가, 작가로 살아왔다.

맨해튼에서 한시간 반 정도 떨어진 코네티컷의 그의 집을 찾았다. 잘 가꿔진 정원과 마당을 사이로 집과 스튜디오가 있었다. 집은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반듯하게 그리고 그 공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존 배 작가의 조각 작품이 눈에 띄었다.

존 배의 공식 포트폴리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존 배 작가의 자택에서 설치된 작품 ‘기억속의 거짓말(In-Memory’s-Lair)’ / 본인제공

존 배 작가의 자택에서 설치된 작품 ‘기억속의 거짓말(In-Memory’s-Lair)’ / 본인제공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은 혼자만이 거행하는 종교적인 의식과 같다. 침묵의 감각으로 영적 교섭을 하며 그 침묵의 안과 밖에서 나의 길을 찾는다. 나는 작업을 시작할 때 사전에 형성된 개념을 갖지 않는다. 그저 작업을 시작하고 내가 작업한 것에 반응할 뿐이다. 그리고는 침묵에 편안해진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존 배 작가는 철을 주재료로 작업을 해왔다. 철을 주재료로 삼은 이유는 철이 액체에서 고체로 변통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철을 용접해 작업하는데, 이것은 때로 구리로 코팅이 된 철선의 형태를 띤다. 그의 작업의 전개는 작가의 잠재의식, 기억 그리고 음악, 과학, 동양 철학 및 문학을 횡단하는 학제 간 관심사에 대한 탐구의 영향을 포괄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전체가 생성되는 축적의 점진적인 의식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재료와 방법론은 작업 과정을 가장 단순한 단위로 환원해 ‘공간에서의 드로잉’을 가능하게 하는 점진적 바람을 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나의 기본적인 단위나 요소에서 시작하는 존 배의 작업은 굴곡이 있는, 복잡한 형태로 발전해 신체적 움직임의 감각과 무의식의 여정을 환기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내포하는 서정성과 달리 고된 용접의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로, 거친 노동의 숨결과 작가의 예술혼이 융합돼 있다.

존 배 작가의 작품들. ‘Aspetuck’, ‘Body-in-Question’, ‘Lost-in-a-Finite-Space’ (왼쪽부터 차례로) / 본인제공

존 배 작가의 작품들. ‘Aspetuck’, ‘Body-in-Question’, ‘Lost-in-a-Finite-Space’ (왼쪽부터 차례로) / 본인제공

1937년 열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

존 배 작가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년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부모님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구호활동을 위해 귀국했고, 어머니도 학교 설립을 돕기 위해 귀국한다. 홀로 미국에 남겨진 그는 서구화된 환경에서 사춘기를 겪으며,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 있는 오글베이 연구소에서 열다섯 살 때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의 디자인학부에 입학했다. 이 시기 구성주의와 바우하우스를 접하고 조각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당시 프랫에는 순수미술 전공이 없었다. 학교 측은 그에게 맞는 순수미술 프로그램을 신설했고, 그는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할 수 있었다. 1950~1960년대에는 수많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뉴욕에서 활동했다. 당시 학생이자 젊은 예술가였던 존 배도 이 시기 현대미술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미술 조류를 흡수하고, 그에 몰입해 자신만의 예술 방법론을 찾고 있었다. 그는 20대 중반이던 1960년대에 프랫인스티튜트에 최연소 교수로 임명됐다. 40년 가까이 교수와 행정 역할을 맡아 학교의 미술 및 조각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뉴욕, 서울, 파리 등에서 작업을 선보이며 교육자, 행정가, 작가로의 삶에서 균형을 찾고자 애써 온 작가는 2000년 퇴직 후 코네티컷에서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권민주는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 of Art)에서 미술사를 수료했다.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아트페어(런던·마스터스·뉴욕·LA)에서 한국 VIP를 담당하고 있다.

<권민주 미국 뉴욕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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