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상실의 치유를 바라보는 건조한 우화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영화 <애플>로 장편 데뷔한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은 독특한 정서의 선배영화들은 물론이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묵시적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문학 작품까지 폭넓게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다.

제목 애플(Apples)

제작연도 2020

제작국 그리스, 폴란드, 슬로베니아

상영시간 91분

장르 드라마

감독 크리스토스 니코우

출연 알리스 세르베탈리스, 소피아 지오르고바실리, 안나 칼라이치도

개봉 2021년 5월 26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모쿠슈라픽쳐스

㈜모쿠슈라픽쳐스

가상의 시대, 알 수 없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에게 기억상실증을 일으키는 사건이 빈번해지고, 어느덧 이런 일은 평범한 일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으로 상심하던 남자 알리스(알리스 세르베탈리스 분)는 버스 안에서 기억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와 ‘14842번 환자’로 명명된다. 병원에 실려온 사람들은 치료를 받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가족이나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영원히 병원 안에 격리된다. 이를 원치 않는다면 정부의 ‘신경 장애’ 부서가 관리하는 ‘새로운 자아’ 프로그램이라는 서비스에 동의해야 한다. 동의자는 사회로 나갈 수 있지만, 프로그램 관리자들의 엄격한 통제하에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속성으로 ‘새로운 인생’을 학습하게 된다. 남아 있는 기억이라고는 오직 과거에 느꼈던 사과의 맛이 전부인 알리스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도래한다.

포스터에는 제작에 참여한 유명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이름과 함께 “제2의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외국 언론의 평가를 눈에 띄게 부각시키고 있다. 기본적으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란 이름을 아는 관객들에게만 유용할 테니 범용적 홍보문구라 할 수는 없지만, 그를 아는 이들에게는-인상적인 그림과 맞물려-어떤 수식보다 강렬한 기대와 호기심을 유발할 만하다.

다양한 참조와 존경으로 빚어낸 냉소적 희극

실제로 영화 일부분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는데 현실적인 무대임에도 그 안에서 뻔뻔하게 펼쳐지는 낯선 사건들이라던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정적인 연출과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냉소적 분위기 등은 란티모스 감독의 초기작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애플>로 장편 데뷔한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은 독특한 정서의 선배영화들은 물론이고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등 묵시적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문학 작품까지 폭넓게 들여다보며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힌다.

과거 아날로그 TV를 연상케 하는 4:3의 화면비율을 선택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의 소품 등을 등장시켜 철저히 디지털을 배제한 세계 만들기에 노력함으로써 오직 인물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도 신경 쓴 부분이다.

란티모스 감독과의 또 다른 접점 하나는 주연을 맡은 배우 알리스 세르베탈리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는 과거 TV시리즈와 단편영화 등을 통해 연기에 입문한 뒤 란티모스 감독의 초기작인 <키네타>, <알프스> 등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서의 본격적인 경력을 쌓았다. 이번 작품 <애플>을 통해 제61회 데살로니카국제영화제에서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작품 전체를 홀로 이끄는 비중 있는 배역인 만큼 국내 관객들에게도 좀더 어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듯싶다.

가능성으로 주목받은 신예 감독

냉정히 평가해 크리스토스 니코우를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비교하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해 보인다. 노골적 주제와 수동적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사건의 나열은 사색적이라기보다 관습적으로 느껴지고, 작품 안팎의 다양한 장치와 상징들도 치기어린 기교로 읽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런 아쉬움은 주제를 다루는 진심의 진위보다는 기교적 과욕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

그러나 첫 작품임을 고려한다면 이런 상대적 비교는 애초부터 불공정한 평가일지도 모른다.

세계적 영화사이트 중 하나로 젊은 관객들에게 신작 기대의 척도로 대접받고 있는 로튼토마토(Rotten Tomatoes)에서 신선도 지수 100%(현재는 98%)를 찍으며 출발해 주목을 받기도 한 <애플>은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영화상 부문 그리스 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됐고, 77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오리종티 최우수 작품상 후보, 56회 시카고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등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 소개되며 호의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크리스토스 니코우 감독은 곧바로 할리우드로 직행할 예정이다. 차기작으로 알려진 <핑거네일>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됐던 캐리 멀리건이 캐스팅됐다고 전했다. 행보를 눈여겨볼 만한 가능성 있는 신예 감독의 등장이라 할 만하다.

현대 그리스 영화를 대표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austinhargrave.com

austinhargrave.com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그리스 국적의 감독들이라면 <제트>(1969), <계엄령>(1972)처럼 정치색이 강한 작품으로 유명한 코스타 가브라스나 <안개 속의 풍경>(1988), <율리시스의 시선> (1995) 등의 대표작을 통해 서정적 롱테이크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테오 앙겔로풀로스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영광으로 기억될 인물들이고. 현대 그리스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단연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손꼽힌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가상의 시공간 안에 정체성의 혼란을 숨기지 않는 기괴한 인물들과 서슬 퍼런 풍자를 꾹꾹 눌러 담는 그의 영화들은 현대사회를 냉소하는 차가운 우화로 평가받는데, 형식적으로는 인공적인 미장센과 연극적 요소가 특징이다. 대부분 작품들이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 여운을 동반해 ‘뒤틀린 거장’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연극 연출, TV 광고,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2001년 배우인 라키스 라조폴로스그와 공동 감독한 <내 가장 친한 친구>로 데뷔했는데, 정통 상업코미디인 이 작품은 그의 작품연보에 있어 가장 이질적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2005년 발표한 <키네타>를 그의 공식 데뷔작으로 인정하는 시각들도 있다.

그의 존재감을 세계적 무대로 끌어올린 세 번째 작품 <송곳니>(2009)는 한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통해 통제와 왜곡으로 점철된 독재정권의 폐해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네 번째 작품인 <알프스>(2011)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진출해 만든 영어작품 <더 랍스터> (2015), <킬링 디어>(2017),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8) 등이 연이어 호평을 받으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낯익은 이름이 됐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시네프리뷰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