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독, 우습게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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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에는 복어의 일종인 황복의 맛을 ‘죽음과 맞바꾸는 맛’이라고 표현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가 복어를 두고 쓴 글을 인용했다. 작중 한 요리사는 복어 알에 함유된 독성 때문에 신경에 저릿한 마비가 일어나는 현상을 바로 이 ‘죽음과도 맞바꿀 만한 맛’이라며 손님들에게 권하는 위험한 행동을 일삼다 비판받는다. 복어가 예로부터 인류의 식량자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특히 미식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식재료로 쓰였지만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한 낚시꾼이 낚아 올린 낚싯대에 복어가 걸려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낚시꾼이 낚아 올린 낚싯대에 복어가 걸려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지난 4월 19일 전남 완도 주민들이 복어 내장이 들어간 음식을 나눠먹은 뒤 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천연 생물이 만들어내는 독성물질이 들어간 식재료를 먹고 피해를 입는 사고는 해마다 발생한다. 그중에서 복어는 뉴스에 단골로 나오는 대표적 식재료다. 복어의 독 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은 0.2㎎만 섭취해도 치사량인데, 신경을 마비시켜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지 못하게 만든다. 심각할 정도로 중독되면 목소리도 내지 못하다 결국 호흡조차 스스로 할 수 없게 돼 사망에 이른다. 해독제가 없어 빠르면 2~3시간 안에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애초에 복어조리 자격증이 있는 요리사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손도 대서는 안 될 식재료다.

지난달 완도 주민 복어 먹고 2명 사망

복어 독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이미 대부분이 인지하고 있으나 불과 50~60년 전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 목숨을 잃은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복요리를 하면서 떼어내 버린 복어 내장을 주워다 먹은 가족이나 일행이 떼죽음을 당한 비극적인 사고는 1960년대 연간 20~30건씩 꾸준히 발생해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 사망사고에 이어 가난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망사고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였다. 현재는 복어의 독이 몸 안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섭취한 먹이와 반응해 생성된다는 점이 밝혀져 양식으로 키운 복어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양식 복어 역시 독을 품고 있을 수 있다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테트로도톡신은 그 치명적인 독성과 함께 복어의 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복어에게만 있는 독은 아니다. 최근 들어 남해안을 중심으로 점차 발견 횟수가 늘고 있는 파란고리문어 역시 테트로도톡신을 몸에 품은 해양생물이다. 이름 그대로 온몸에 파란색 둥근 고리 무늬를 띠고 있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무심코 접근하기 쉽지만, 자칫 이빨에 물리면 목숨까지 위협한다. 2015년 제주에서 한 관광객이 이 맹독 문어에 물린 뒤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은 일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름철 해수욕장에서 수영 중 만나기 쉬운 노무라입깃해파리 등의 해파리처럼 예기치 못하게 접촉할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무라입깃해파리의 독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의 연구결과 독소의 종류만 해도 52종에 달할 만큼 복잡한 성분이어서 쏘였을 때 대처하기도 쉽지 않다.

복어를 비롯해 독성을 함유한 식재료를 인류가 언제부터 입에 넣게 됐는지는 궁금증을 유발한다. <복어는 복어독을 만들지 않는다>를 쓴 전중균 강릉원주대 해양생물공학과 교수는 “인류가 복어를 먹은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이 일반론”이라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복어를 먹는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태국,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국가들에 국한돼 있지만, 고대 이집트 왕릉벽화에도 복어가 그려져 있다”며 인류가 먼 옛날부터 복어를 식재료로 써왔던 흔적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국내로만 한정해도 경남 김해 수가리 조개무덤에서 대구나 농어 등 다른 어류의 뼈와 함께 복어 뼈가 출토된 바 있어 조상들이 적어도 신석기 시대부터 복어를 조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최근의 독성학 연구를 살펴보면 인류가 독성물질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한 역사는 기원전 2만년 무렵 중석기시대부터 최고 기원전 4만4000년까지도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초기부터 인지한 대표적인 독이 독사나 독충, 전갈 등에서 유래한 동물성 독이었고, 납 같은 광물성 독 역시 현재까지 전해지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1500년경 쓰여진 이집트 파피루스에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에는 주로 동물·광물에서 채취한 독을 사냥에 이용했다. 그러나 이후 식물성 독에 대한 이해도 늘어나면서 고대 이집트에서 전해진 서양독미나리(hemlock)에 관한 지식이 히포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이르러 사형 집행에 쓰일 정도로 발전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독약을 마시고 발끝부터 점차 감각이 사라지는 증상을 겪었는데, 바로 이 서양독미나리 즙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이었다.

미국자리공·은방울꽃·동의나물 조심

자연의 독, 특히 식물성 독 역시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은 오히려 식재료로 친숙하게 여겨지는 야생 풀을 채취할 때 더욱 유념해야 한다. 봄나물이나 약초로 오인해 채취한 독초를 먹었다가 식중독에 걸리는 사고 역시 매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가 집계한 자료를 보면 자연에서 온 식재료를 먹고 발생한 식중독 사고 중 절대다수를 차지한 원인은 복어 독과 함께 독초 섭취가 주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최근 10년(2010∼2019)간 모두 135명의 환자가 나왔다. 특히 산나물 채취가 잦은 봄철에는 41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복어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야생 풀 가운데 독초는 전문가들도 쉽게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흔히 먹는 산나물과 혼동하기 쉬워 방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표적인 독성 식물 가운데 미국자리공은 도라지나 더덕, 마 뿌리로 잘못 알고 먹는 경우가 많고, 은방울꽃과 동의나물은 각각 산마늘, 곰취와 비슷하게 생겼다. 섭취하면 30분에서 5시간 사이에 구토나 설사, 어지럼증 등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런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 관계당국에서도 같은 사고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발생하고 있어 독초와 식용 산나물을 구분해 알려주는 안내자료를 배포하고는 있으나 애초에 야생 식재료를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을 권장한다. 김종한 행안부 예방안전정책관은 “소금물을 먹고 억지로 토하는 등 민간요법은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니 피하고 봄나물은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성분을 약으로도 쓰지만 독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잘 아는 한의학계에서는 유독 산나물을 식용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는 국내의 식문화를 두고 조심스럽게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산속 그늘진 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투구꽃(바곳)은 부위에 따라 초오나 부자 등 별도의 이름이 붙은 한약재로 쓰이며, 부자는 조선시대 사약의 재료로 쓰였을 만큼 독성이 강하다. 게장과 감을 같이 먹은 뒤 심한 배탈이 나 앓아누운 경종 임금이 부자 성분을 넣은 약재를 소량 달여먹은 뒤 승하했다는 기록도 있다. 따라서 한약에 쓸 때는 주된 독성분인 아코니틴의 효력을 약하게 하는 전문적인 처리과정을 거친다. 김인철 한의사는 “투구꽃은 새순이 돋은 모습이 미나리와도 비슷한데다 다른 나물을 캐다 딸려 들어가기도 하므로 주의해야 한다”며 “산나물을 먹은 뒤 구토와 마비 증상 등을 심각하게 겪으면서 정작 본인이 어떤 풀을 먹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은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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