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갈등? 20대들이여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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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궐선거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속마음을 들었다

지난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각각 다른 후보에게 투표한 20대 여성 세명이 모였다.

한민금씨(28)는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비서다. 국회에서 일하며 두 번의 총선, 대선, 지방선거를 겪었다. 정치외교학과 학생인 김은설씨(21)는 국민의힘 중앙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바른정당을 지지했다가 통합이 되면서 국민의힘으로 왔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후보 캠프에 참여했다. 양예빈씨(25)는 재생에너지 관련 스타트업에서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로 일한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기호 15번 신지예 후보를 찍었다. 소수정당에 투표한 15.1% 중 한명이다.

왼쪽부터 김은설, 양예빈, 한민금씨

왼쪽부터 김은설, 양예빈, 한민금씨

그들이 보는 이번 선거는 어떨까. 정말 젠더 정책 때문에 민주당은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했을까. 소수정당 지지 15.1%는 어떻게 봐야 할까. 주간경향은 정치 플랫폼 섀도우캐비닛과 함께 20대 여성과 20대 남성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1차로 진행된 20대 여성 집담회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특히 이들은 젠더갈등이 핵심이 아니라며 언론과 정치권을 향해 “젠더갈등? 속이지 마. 20대들이여, 속지 말자”고 강조했다 집담회는 지난 4월 20일 오전 서울 서교동에서 진행됐다. 섀도우캐비닛의 김경미 대표가 좌담회 진행을 맡았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왜 그 후보에게 투표했나.

민금 박영선 후보는 정치력·행정력이 있다는 점에서 유능한 후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라는 점도 투표한 이유 중 하나다. 성폭력 문제로 재보궐선거가 열렸기 때문에, 남성 후보였다면 (민주당을) 찍기 어렵지 않았을까.

은설 빠르게 시장직을 수행하려면 경력이 있는 사람이 맞지 않나? 라는 점에서 오세훈 후보가 적합했다고 봤다.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염증이 있다. 공정, 깨끗한 척하지만 이전 정권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심판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지도 있었다.

예빈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선거가 새로운 정치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표 걱정 때문에 내가 뽑고 싶은 후보, 공감 가는 후보를 뽑는 걸 미루고 당선 가능성이 있는 다른 후보를 뽑는다면, 기존 정치세력이 계속 정치를 하게 된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

한민금씨 “젠더갈등은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민금씨 “젠더갈등은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20대 여성은 제3지대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그룹이다. 이유가 뭘까.

예빈 재보궐선거 원인이었던 젠더 이슈를 명확하게 짚고 넘어간 후보가 여야 모두 없었다. 민주당을 심판하고 싶었던 사람은 국민의힘을 뽑은 것이고, 둘 다 정말 아니다 싶은 사람은 소수정당에 투표한 게 아닐까.

민금 젠더문제에 관해서는 여야가 똑같다. 그런데 20대 여성에게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대안 후보들이 있었다. 짜장면 위에 오이, 완두콩만 있는 게 아니라 볶음밥도 있었던 것. 남성들이 국민의힘을 뽑았다는 것은 대안이 없었던 거라고 본다. 완두콩과 오이 중에 골라야 했다.

-재보궐선거의 원인이 민주당의 성폭력이다. 그럼에도 20대 여성은 40대 남성 다음으로 박영선 후보를 지지했다.

민금 국민의힘이 이준석처럼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을 앞세웠다. 여성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절대로 뽑을 수 없는 거다. 박영선 후보는 여성이어서 거부감이 덜했다. 다른 남성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나왔다면 저는 15.1%(소수정당)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은설 저는 조금 다르게 본다. ‘그자찍’이라고 들어봤나. 그런다고 자한당 찍겠나(웃음). 그 정도로 보수정당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20대 여성의 40.9%가 국민의힘을 찍었다. 지금까지 20대 여성이 문재인 정부에 굉장한 지지를 보냈던 걸 생각하면 40.9%는 굉장히 높은 수치다.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가 4위를 했다. 출마 경험이 전무한데, 이 약진을 어떻게 보나.

예빈 김진아 후보는 모든 공약에서 여성을 언급했다. 여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면 약자, 소수자 모두가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 이슈를 지지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여성의당은 정체성이 명확하니까, 투표로 이어진 것 같다.

-20대 남성 투표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보나. 20대 남성은 보수화됐을까.

예빈 언론에서 20대 남성 보수화를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세훈 후보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 실망이 반영됐다고 본다. 무엇보다 20대 남성의 보수화를 이야기하며 20대 때문에 (민주당이) 졌다는 태도 자체가 ‘남탓’이다.

은설 50대 이상에서는 산업화, 40대 이상에서는 민주화가 큰 어젠다다. 그러니 20대가 경험이 없어서 보수화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너무 단편적인 평가다. 당장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살 집과 먹을 밥이다. 그걸 지켜주는 정당을 지지하는 게 우선인데, 선거 때마다 보수화·진보화 이야기를 한다.

민금 남성들에게 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20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을 수치화해 증명해야 하는 세대다. 나는 죽어라 공부했는데 내 노력이 누구한테 빼앗기면 참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는 각박해진 것 같다. 그런데 그건 보수보다는 생존에 대한 위기의식이다. 공정에 대한 욕구도 생존과 연결돼 있다. 이걸 보수라고 간편하게 규정하는 건 20대에 대한 ‘가스라이팅’이다. 속지 말자.

김은설씨 “가부장제라는 단단한 벽을 뚫어야 하는 싸움인데, 이 과정에서 20대가 희생양이 된 게 아닐까.”

김은설씨 “가부장제라는 단단한 벽을 뚫어야 하는 싸움인데, 이 과정에서 20대가 희생양이 된 게 아닐까.”

-젠더 정책 때문에 20대 남성이 이탈했다는 평가가 많다.

은설 사실상 민주당의 젠더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다만 민주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페미니스트 이미지를 많이 활용했다. 문재인 대통령,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이나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뭘 했는지 모르겠다.

예빈 남성들이 민주당을 ‘페미당’으로 인식한다는 건 언론을 통해 봤지, 실제 주변에서는 본 적이 없다. 여성들이 민주당을 페미당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젠더 정책 때문에 이탈했다면 재보궐선거에서 젠더 이슈가 나왔어야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민금 이야기를 듣다 보니 민주당은 20대 여성과 남성 둘 다 놓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느끼는 젠더갈등은 어떤가.

민금 온라인이나 언론에서 부추기는 것 때문에 ‘더’ 대립을 하는 것 같다. 제 동생도 20대 남성인데 언론, 정치권에서 묘사하는 그런 대상이 아니다. 지금 20대는 어디든 앉아야 하는데 앉을 의자가 없다. 그런데 우리더러 ‘의자가 없어? 그럼 허공에 앉아’라고 한다. 그러니까 화가 난다. 정치인들이 이런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여성을 특정해 여기에 분노의 에너지를 쏟으라고 한다.

예빈 동의한다. 온라인에 극단적인 글을 쓰는 남성들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친구들과 젠더 이슈를 이야기하면서 싸운 적은 없다. 오히려 2030대 남성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젠더 감수성이 있다. 성폭력이 일어났으면 해결을 해야지 왜 갈등으로 여론을 몰아가나.

은설 일상에서는 갈등이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은연중에 남성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 느껴지긴 한다. 가부장제의 혜택을 누린 건 20대 남성이 아니고 기성세대다. (기성세대 남성이 특권을 누린) 가부장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왜 그 피해를 20대 남성만 보냐는 것.

민금 맞다. 남자 선배들은 가부장제 아래에서 누릴 것 다 누려놓고 1020대 남성에게 하지 말라고 하니까 ‘이게 뭔가’ 싶을 수 있다.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전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가부장제의 잔재들을 부활시키자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들어보니 20대 남성의 상실감은 구체적인데 정치권에서 이를 들어주는 과정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나타나는 갈등을 젠더 하나로만 볼 게 아니라 세대·계급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은설 가부장제라는 단단한 벽을 뚫어야 하는 싸움인데, 이 과정에서 20대가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닐까. 20대 남성은 쟤랑 나랑 같은 조건인데 왜 쟤는 여자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는 거지? 생각하고 20대 여성은 내가 가해자가 아닌데 왜 나한테 뭐라고 하나? 이런 현실 속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 같다. 기회를 골고루 주기 위한 과도기적 상황이다.

예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젠더보다는 권력의 차이가 핵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세대갈등이라는 표현보다는 위아래 갈등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양예빈씨 “민주당을 심판하고 싶었던 사람은 국민의힘을 뽑은 거고, 둘 다 정말 아니다 싶은 사람은 소수정당에 투표한 게 아닐까.”

양예빈씨 “민주당을 심판하고 싶었던 사람은 국민의힘을 뽑은 거고, 둘 다 정말 아니다 싶은 사람은 소수정당에 투표한 게 아닐까.”

민금 박 전 시장 사건에 대한 4050대 여성 선배들의 반응에 혼란스러웠다. 가해자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박 전 시장의 업적을 안타까워하더라. 나라면 어땠을까. 10년 20년 함께 활동한 동기, 선배가 그런 가해행위을 했다면 나는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나는 용서할 수는 없지만 차마 밖에서 강하게 비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선배들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나는 세대갈등으로 규정짓기는 싫다.

-이번에 여당이 패배한 요인은 뭘까.

민금 20대 여성의 관점에서는 불공정 이슈가 컸다. 친구들은 “있는 집 애들은 결국 의대까지 가는구나. 차라리 (정)유라가 낫다. 걔는 취소라도 됐지만 조민은 뭐냐”고 말한다. 30대는 부동산 관련 불만이 굉장히 많다. 그 와중에 김상조·박주민이 터졌다. 그런 게 쌓여 패배한 것 같다.

은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했다. 기대를 가졌지만 4년 동안 이뤄지지 않았고 민주당의 위선적인 부분이 드러났다.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 때문에 기권을 한 사람도 많다. 개인적으로 박주민 의원에게 실망을 크게 했다. 거지갑, 워낙 깨끗한 이미지였는데…(진짜 배신감 들죠. 무슨 거지야).

예빈 시대에 뒤처졌다. 이번 선거를 보니 여야 할 것 없이 부동산, 토건 정책 등을 내놨다. 언제까지 이런 정책이랑 공약을 보면서 투표해야 하나. <응답하라 1988>에 나올 법한 공약들이다. 실망감이 들었다.

-민주당 주류가 주장하는 적폐청산, 검찰개혁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은설·예빈 별 관심이 없다. 인생이랑 직결된 문제가 아니다. 추·윤이 싸우나 보다. 심지어 누가 우리 편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대다수(맞아 맞아). 구호는 계속 들리는데 실질적으로 적폐가 청산되고 있다는 느낌은 안 든다.

민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검찰조사를 받는 모습을 떠올려 볼 때, 검찰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 조직인가? 그런 생각은 한다. 그런데 추·윤 갈등으로 흘러가면서 본질이 희석됐고,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사람들의 피로감이 쌓였다고 본다.

-배신감, 내로남불이 가장 큰 패배요인이라면 전용기 민주당 의원과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언급한 군 가산점 재도입 등은 어떻게 보나.

은설 되게 단편적이다. 20대 남성 표가 안 나왔어? 그러면 20대 남성 너희가 원하는 게 뭐야? 딱 이 수준.

민금 정치권의 게으름, 무능함을 숨기려고 만들어낸 다른 차별이 젠더다. 군가산점제가 1999년에 폐지됐다. 당시 결정문을 보면 ‘다른 보상법을 찾으라’고 주문한다. 20년 동안 정치인들은 다른 보상법을 못 찾았고, 다시 소수자를 차별하는 방식을 꺼냈다.

-박용진 의원의 남녀평등복무제와 모병제 전환은 어떻게 보나.

민금 대안을 제시하는 미래적인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소외시키지도 않는다. 저라면 지원한다. 여성의 기초군사훈련이 무섭지 않다. 대학에서도 직업 군인이 되려는 여자 친구들이 많았다. 오히려 20대 여성은 안전에 민감하다. 전쟁이 나도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다.

은설 여성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군대에 가면 차별이 없어질까? 무조건적인 징집이 옳은가? 아직 잘 모르겠다. 의무대상이 아닌 사람들에게 군세를 걷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우리가 뭔가를 부담했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게.

예빈 남녀평등복무제와 모병제가 젠더갈등으로 묶여 논의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시점에서는 계속 그쪽으로 묶인다.

-젠더갈등은 해결될 수 있는 갈등이라고 보나.

민금 해결해야 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이슈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리더가 있었으면 좋겠다. 나이의 문제는 아니다.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을 봐라. 미래세대가 이준석, 김남국, 전용기 의원을 대안으로 볼까? 누군가를 갈라치고 소외시키는 정치는 무능하고 게으를 뿐 아니라 나쁘다.

은설 해소될 수 있는 갈등이다. 특정 누군가가 나서서 뭔가를 한다는 것보다는 2030대 이야기가 정치권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창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아무리 젠더갈등이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라고 말해도 전달할 기구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국민의힘은 아직까지는 청년 조직이 미약하다. 좀 더 활성화돼야 한다.

예빈 비슷한 맥락에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지금은 5060대에 너무 치우쳐 있다. 공론장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라면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가 얼마나 바뀔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또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금 속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앉을 자리도 없어서 허공에 앉아야 하고 AI 면접까지 봐서 사회에 들어왔는데. 정말 중요한 게 뭐냐? 젠더갈등이 20대 남녀의 약점이라고? 속이지 마라. 20대들이여, 속지 말자!(일동 웃음)

<글 이하늬·반기웅 기자 hanee@kyunghyang.com 사진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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