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십년마일검’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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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네이처 인덱스 2021 아시아태평양’ 보고서가 발표됐다. 기초과학 분야 논문을 토대로 발표되는 이 지표는 기초과학의 국가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권위 있는 잣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의 추락, 중국의 압도적 승리다. 200위까지의 종합순위에서 중국 연구기관은 119개, 일본 26개, 호주 16개, 한국과 인도는 15개였다. 상위 50위에 이름을 올린 한국 연구기관은 22위의 서울대와 26위의 카이스트가 유일하다. 대학의 무능과 부패가 잘 알려진 한국에서, 이 뉴스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의 대학경쟁력은 이미 추락할 만큼 추락했기 때문이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무성한 상황에서, 이런 결과는 전혀 새롭지 않다. 오히려 이상한 건 중국이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과학계로부터 무시당하던 중국의 과학이 미국을 뛰어넘으려는 역사적 현장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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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사벽, 중국의 과학굴기
‘넘사벽’이라는 말이 있다.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과거엔 미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이 넘사벽이었다. 하지만 이젠 중국이다. 중국의 과학은 압도적이다. 네이처 인덱스에서 아태 연구기관 1위는 중국학술원인데 3위를 차지한 동경대보다 지표가 4배 이상 높다. 중국학술원은 세계 순위에서도 하버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10위권의 연구기관 중 동경대와 싱가포르국립대를 제외하면 모두 중국 소속이다. 일본과 한국의 연구기관이 모두 순위에서 하락한 이유는 그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중국의 기초과학 경쟁력이 너무 빠르게 앞서나가기 때문이다. 중국의 과학은 이제 넘사벽이다. 그리고 그 벽은 결코 낮아질 것 같지 않다.

2020년 국제경영개발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한국의 대학교육경쟁력은 63개국 중 55위다. 같은 자료에서 국가경쟁력이 28위, 교육경쟁력은 30위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유독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의 대학경쟁력은 나아질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인구절벽으로 대학들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고, 대학원은 텅텅 비어가는 중이다. 대학이 국가의 미래라고 울부짖는 교수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엔 미래가 없다. 반대로 중국의 미래는 밝아보인다. 하지만 그건 중국 정부가 대학이 아니라 과학기술에 오랫동안 투자해왔기 때문이다. 올해 ‘네이처’가 예측한 아시아의 떠오르는 200대 유망 연구기관 중 170개가 중국에 있다. 향후 우리는 기술경쟁력과 기초과학 경쟁력 모두에서 미국을 앞지르는 중국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과학계는 중국을 무시한다. 그럴 수 있다. 과학계 원로들이 대학의 난립과 풍족한 연구비 속에서 안심하고 있을 때, 중국은 1990년대 시작된 ‘백인계획’, 2008년의 ‘천인계획’, 2012년의 ‘만인계획’을 통해 공격적으로 해외 고급인재를 유치해왔다. 이제 중국은 전 세계에서 첨단과학기술 인재를 쓸어담는 용광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미국은 ‘페이퍼클립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독일 과학기술자를 이주시켰고, 그 덕분에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근대과학이 탄생한 유럽에 지적 열등감을 지녔던 미국은 종이용 클립 작전과 연구중심대학에 대한 투자를 통해 20세기 중반 첨단과학기술의 최강국으로 거듭났다. 맨해튼 프로젝트와 인간유전체계획으로 상징되는 거대과학이야말로, 미국이 유럽을 앞서갈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다.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중국이 그 길을 따라 걷기 때문이다.

굴기, 중국이 여러 정책을 내놓을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용어다. 이 단어에는 19세기 이후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당한 치욕과 고난의 역사를 딛고 대국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가 담겼다. 드론 굴기, 로봇 굴기, 반도체 굴기 등 중국은 과학기술 분야에 굴기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산업이 발전한다는 논리가 있다. 이 논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공학자 배너바 부시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제출한 <과학, 끝없는 프론티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흔히 선형모델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이 선형모델이 근대과학이 탄생한 유럽이나 그 후광을 받은 미국 등의 선진국 외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굴기, 그리고 십년마일검의 철학

그 반례가 한국이다. 우리나라도 박정희 정부의 기술개발 정책의 성공적인 안착 이후,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이 늘고 이에 따라 기초과학 경쟁력이 생겼다. 하지만 한국의 과학엘리트, 대학교수들은 여전히 이 선형모델에 집착한다. 연구비라는 밥그릇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처럼 현대의 기초과학은 기술발전으로부터 수혜를 받아 파생되는 분야에 가깝다. 이렇게 부산물로 발전한 과학적 발견 중 일부가 기술적 도약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이 한 국가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경쟁력의 전부일 수는 없다. 과학기술정책은 다양성과 더불어 국제정치와 전략적인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한국 과학엘리트들은 낡은 선형모델로 정치권력과 함께 과학기술정책을 농단해왔다. 그 결과 이명박 정부의 과학비즈니스벨트는 누더기가 돼 IBS 설립으로 이어졌고, 그 중추였던 중이온가속기는 여전히 작동조차 하지 않는다. 관료와 정치인에 빌붙은 과학자 대부분은 대학교수였고, 언젠가부터 정부의 연구개발비 중 상당수는 대학으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 전체 대학연구소의 61.6%는 유령연구소가 됐고, 기초과학 경쟁력은 끊임없이 추락 중이다.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연소 시험을 참관했다. 집권 4년 동안 대통령은 겨우 다섯 번 과학기술현장에 방문했다. 문재인 정부는 과학기술에 관심이 없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사이언스 퍼스트’를 어젠다로 삼았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올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맞아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이라는 말로 과학기술정책의 철학을 전했다. 십년마일검은 당나라 시인 가도의 시 ‘검객’의 첫 구절로, 더디더라도 확실하고 단단하게 걸음을 옮기는 자세를 뜻한다.

리커창 총리는 “십년마일검의 각오로, 과학기술인들이 한가지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부담을 확실하게 덜어주겠다”고 말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우주 개발에 과감히 투자해 우리 발사체로 달 착륙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이 두 발언의 차이가 양국의 과학기술계가 처한 상황을 확연히 드러낸다. 과학기술의 철학으로 무장한 지도자를 보고 싶다.

김우재는 한때 초파리로, 지금은 꿀벌로 세계정복을 꿈꾸는 과학자다. 동물의 행동을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며, 사회성 행동을 유전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한다. 연구 외에도 과학의 사회적 사용에 관심이 많으며 <플라이룸> 등의 책을 저술했다. 현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우재 낯선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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