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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 “미생물은 한마리 한마리가 다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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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와 플라스틱에 기댄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구환경을 보호하려면 새로운 화학산업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을 석유가 아닌 미생물에서 얻을 수 있다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미생물로 새로운 유용 물질을 얻을 수 있다면 난국을 헤쳐나갈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카이스트 제공

카이스트 제공

바이오화학산업은 원유에서 추출하는 화학제품의 기초 원료를 미생물이나 폐목재, 잡초 같은 바이오매스에서 뽑아낸다. 석유화학산업을 대신할 바이오화학산업에 거는 기대감은 최근 수년 사이 구체적인 성과물이 쏟아지면서 더 커지고 있다. 이 분야 연구를 선두에서 이끄는 이는 이상엽 카이스트(KAIST) 생명화학공학과 특훈교수다. 그는 지난해 10월 개미산과 이산화탄소만으로 증식하는 대장균을 개발했다. 이산화탄소 저감은 물론 빠르게 증식하는 대장균의 대사과정을 변형해 유용한 화합물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이상엽 교수는 세계 최초로 시스템 대사공학을 만들어 석유화학산업을 바이오화학산업으로 전환하는 물꼬를 텄다. 이런 공로 덕에 2019년 국내 공학 분야의 가장 큰 명예인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2018년 환경·에너지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니 상(Eni Awards)을 받는 등 여러 굵직한 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미국 국립발명학술원의 펠로로 선정되기도 했다. 석유화학공장을 대신하는 ‘미생물 공장’과 미생물 공장을 자동화한 ‘바이오파운드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4월 14일 이상엽 교수를 만났다. 지난 3월 카이스트의 연구부총장으로 임명돼 더 바빠진 그였다.

-대사공학(Metabolic Engineering)은 무엇인가.
“대사공학은 뚜렷한 목적을 갖고 생명체의 대사회로를 인위적으로 조작해 그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총체적으로 말한다. 인류에 도움이 되고, 지구환경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제품을 경제성 있게 증산을 하든가 혹은 원래 미생물이 만들 수 없지만 필요에 의해 대사회로를 만들어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만들고, 그 반응을 일으켜 원하는 물질을 생산하는 것일 수 있다. 거꾸로 생산하는 게 아니고 대사회로를 조작해 미생물로 하여금 환경에 문제가 되는 물질을 분해할 수도 있다. 미생물의 대사회로를 조작함으로써 굉장히 다양한 좋은 목적을 이루는 전체 학문과 기술 분야를 총칭해 대사공학이라고 한다.”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시커먼 원유가 들어가면 그걸 다 분리해 우리가 원하는 용매를 만드는데 그런 과정 전체를 다루는 게 화학공학이다. 그 스케일과 복잡도에 매료를 느꼈다. 원래 석유화학 공장을 디자인하고 운영·최적화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지도교수의 추천대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 갔다. 그런데 막상 해당 교수님을 찾아뵈었더니, 그사이 연구 분야가 바뀌었다. 굉장히 황당했는데 마침 라이스대학에서 교수 한 분이 옮겨왔는데 그분 전공이 생물화학공학이라는 말을 들었다. 새로운 학문이라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도 날 받아줘 생물 쪽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그런데 중학교 때 생물을 마지막으로 배운 터라 공부를 다시 해야 했다. 독학하다 가끔 생물과에서 과목 한두개 듣는 식이었다. 그렇게 대사공학의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유전공학을 이용해 미생물의 형질을 바꾸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와서 그걸 확장시켜 대사공학을 했다.”

-시스템 대사공학은 무엇인가.
“공장 규모의 생산을 염두에 둔다면 전체 시스템을 최적화하면서 처음부터 균을 조작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발효·분리·정제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없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 처음부터 맨 끝단까지 모두 고려한 상태에서 미생물을 계량하는 전략을 많이 개발했다. ‘시스템 메타볼릭’을 창시한 것이다. 요새 학문 분야로 나누면 소위 시스템 생물학, 합성 생물학, 진화공학을 통합한 것이다. 진화공학은 자연진화 과정을 실험실에서 빠르게 재현하는 것을 말한다. 우린 이 세가지를 그간 해오던 대사공학에 통합시켜 시스템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엔지니어링하는 걸 개발한 것이고, 그걸 시스템 대사공학이라고 명명했다.”

-미생물로 플라스틱을 만들어냈다.
“플라스틱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만든 건 마스크에 쓰는 폴리프로필렌, 페트병 제조에 필요한 고분자 재료였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건 석유화학에서 만든 것과 똑같지만 원료가 원유가 아닌 재생가능한 바이오매스에서 온 것이다. 미생물에서 직접 플라스틱을 만들 수도 있는데 특징상 생분해성 고분자이다. 굉장히 효율이 높다.”

-과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6학년 선배와 짝을 이뤄 남산 어린이회관에서 열린 과학경시대회에 나갔다. 그때 1등을 해서 ‘과학왕’을 받았다. 기억나는 건 어린이회관 마당에서 열린 현미경 관찰 시험이었다. 도화지에 현미경에서 본 걸 그리는 건데 앉아서 보니 벌이었다. 그렇게 보면서 다리 두어개 그리는데 끝났다면서 걷어갔다. 이렇게밖에 못 그렸는데 어떻게 상을 받았는지 그때 과학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때 ‘관찰하는 자세를 본 것이지 벌을 얼마나 예쁘게 그렸나를 본 게 아니다. 만약 벌을 대충 그려 완성했다면 오히려 점수가 좋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그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대학에 와선 특히 공학에선 큰 걸 봐야 한다는 것에 오히려 매료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나무도 숲도 제대로 봐야 한다. 숲을 본다는 핑계로 나무를 제대로 안 보면 실력이 없는 거다.”

카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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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파운드리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생물은 한마리 한마리가 다 공장이다. 그 ‘공장’을 20만ℓ정도의 큰 발효기에 넣고 키우면 한마리가 두마리가 되고 두마리가 네마리, 여덟마리로 번식해 그 안에서 ‘공장’이 많아진다. 공장 안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고 이를 정제하면 플라스틱, 휘발유, 의약품 같은 제품이 나온다. 박테리아 공장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개발한 게 시스템 대사공학인데 대사회로를 다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어떤 대사회로 안에서 필요 없는 건 자르고. 더 필요한 건 증폭해주고, 전혀 없는 것은 밖에서 가져다 넣어주면서 디자인한다. 세계 최초로 만든 것도 굉장히 많고, 세계 최고 효율도 많다. 단일학교 실험실로는 우리가 세계 톱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와 경쟁하는 그룹 중에는 우리의 50배의 리소스를 갖고 하는 곳도 있다. 좋은 아이디어로 최소 20배의 격차를 이기고, 열심히 해서 3~4배의 차이를 따라잡아 톱그룹에 간 것이다. 그런데 우리 후배들은 어떨까. 나처럼 만날 밤샌다고 경쟁력이 있을까. 박테리아를 만드는 작업을 손으로 하려면 만날 밤을 새워야 한다. 아이디어를 내면 누구보다 빠르게 최적화된 공장을 지어야 한다. 그걸 로봇이 해야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팹리스가 설계하고 파운드리에서 생산을 전담하듯 우리가 디자인하면 로봇 시스템으로 데이터 분석과 결과 분석까지 자동으로 연결돼야 한다. 디자인, 균주개발, 공정개발 및 시험과 이들의 반복작업 전체를 바이오 파운드리라고 부른다. 정부도 관심을 갖고 있는데 시설 투자가 필요하고 계속 유지를 해야 하니까 이야기할 게 많다.”

-바이오화학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 화두가 되고 있는 탄소중립에서 정말 중요하다.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 파도, 원자력 등 여럿이지만 플라스틱은 여전히 원유에 의존하고 있다. 원유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결국은 바이오 화학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를 사람들이 많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대부분의 화학회사가 이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결국 앞으로 대사공학 기술의 상용화 속도가 빨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상용화가 되지 않았던 것은 경제성 때문이었는데 이젠 단순히 경제성만 비교하는 건 난센스가 됐다. 기후위기가 왔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연결된다. 돈으로만 환산할 수 없고, 결국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여러 물질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성과를 소개한다면.
“연구할 때 보면 제일 중요한 게 문제 설정이다. 문제가 좋아야 답이 좋다. 인류에 도움이 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문제를 찾는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박테리아로 붉은색 천연색소인 카르민산을 만든 것이다. 카르민산은 중남미 쪽에서 선인장에 붙어 자라는 연지벌레를 빻아 추출해 만든다. 딸기우유 등 다양한 식품에 첨가제로 쓰이고, 립스틱 같은 화장품에도 쓰인다. 하지만 이 카르민산이 연지벌레에서 왔다는 걸 아는 순간 거부감을 느낀다. 빻는 과정에서 단백질이 남을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겪기도 한다. 미생물로 카르민산을 만들려고 했는데 반응을 촉매하는 효소를 찾기가 어려웠다. 노력 끝에 찾았는데 효율이 낮아 컴퓨터 가상실험으로 효소의 활성도를 높이는 연구를 했고, 그 결과가 좋았다. 애들 감기약에 쓰이는 포도향도 석유에서 나오는 메틸안트라닐산이라는 화학물질이다. 이것도 미생물 대사공학으로 처음 만들었다. 저희는 계속 프론티어로 치고 나가야 해서 이런 제품들을 상용화할 노력과 시간이 없다. 하지만 최근 상용화에 관심 있는 기업들이 있어서 조언을 주고 있다. 요즘엔 제자들도 창업에 나서는 경우가 있는데 제자 셋이 GS칼텍스에서 지금까지 원유에서 생산되던 2,3-부탄다이올을 바이오매스로 발효·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해 친환경 화장품 첨가제로 산업화했다. 굉장히 뿌듯하다.”

-어떤 공로를 인정받아서 애니 상을 받았나.
“애니 상은 카테고리가 몇개 있는데 나의 경우 바이오화학 쪽의 원천 기술과 전략을 많이 제시하고 개발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실제 다양한 화학물질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미생물 공장을 개발한 공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미생물을 이용한 탄소 포집이 가능한가.
“일부 미생물은 이산화탄소를 탄소원으로 사용한다. 대표적인 게 시아노박테리아다. 광합성 세균이라고 부르는데 문제는 애들의 성장 속도가 느리다. 그 부분에서 문제를 정의했다. 시험삼아 대장균을 이산화탄소만 갖고 자라게 해보자는 황당한 생각을 했는데 당연히 안 됐다.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는 용해도가 낮은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개미산이었다. 이산화탄소는 가스라 부피가 큰데 개미산으로 바꾸면 부피가 확 줄어든다. 이산화탄소를 보관하는 형태로 생각할 수 있다. 개미산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환원력이 생기는 것도 장점이다. 그렇게 포도당 등의 다른 탄소원 없이 개미산과 이산화탄소만을 사용해 성장할 수 있도록 대사경로를 변형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연구부총장이 되면서 연구할 시간이 부족하겠다.
“그래서 미치겠다. 총장님이 워낙 훌륭한 비전을 갖고 있고, 나와도 여러 일을 같이해 거절할 수 없었다. 그나마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으로 한 게 연구부총장이다. 오늘 아침에도 연구실에 갔다가 여기 와서 회의하고, 다시 연구실을 갔다. 시간을 어떻게 최적화할지 아직도 시험하는 단계이다. 주말에도 논문을 쓰는 건 평생 한 것이라 계속할 것이다. 지금도 부총장이 되고서도 논문을 4개 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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