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물류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일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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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물류센터는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입니다. 폐업한 자영업자들도 찾는 곳이지요.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물류센터 일용직은 중요한 일자리입니다. 고용 절벽 시대에 꾸준히 고용이 이뤄지는 얼마 안 되는 귀한 일자리이기도 합니다.

반기웅 기자

반기웅 기자

그래서 그 일자리가 더 궁금했습니다. 물류센터 사람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직접 체험해보고 기사를 썼습니다. 가서 보고 들은 대로, 겪은 만큼만 기사에 담았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몇몇 분으로부터 ‘열악한 노동환경을 조명해줘 고맙다’는 e메일을 받았습니다. 이후로도 종종 물류센터 노동자분들께서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어떤 분은 ‘일터에서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 하소연할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면 다음 날부터 일을 못 하게 된다고 했지요. 물류센터 사람들은 그렇게 잘리는 것을 두고 ‘블랙’ 처리됐다고 합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블랙 처리가 ‘블랙리스트’에 오른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는 채용 대행업체들 사이에서 너무나 쉽게 공유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생계를 책임져주는 고마운 일자리이긴 하지만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근무환경이라면 좋은 일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더군다나 노동자의 개인정보가 담긴 명단을 공유해 근무에서 배제하는 것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기사를 썼습니다. 블랙리스트 기사 댓글창에는 ‘나 역시 억울한 일을 겪었다’며 각종 경험담이 달렸습니다.

비단 마켓컬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쿠팡 등 이커머스 업계라면 크든 작든 논란이 있습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물류센터 일용직 노동자는 필수 인력입니다. 코로나19 국면에서 폭증한 주문량을 차질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덕분입니다. 기업의 매출 증가를 견인한 주축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성장했는데 이들의 노동환경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적용할 취업규칙도 없습니다.

한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미국 상장 소식이 들립니다. 아마도 기업의 혁신적인 물류 시스템이 조명을 받겠지요. 하지만 이번 한 번쯤은 누가 이 ‘혁신’을 떠받치고 있는지도 바라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이커머스들이 정신없이 덩치를 늘려가는 와중에 발생한 일시적인 ‘성장통’이었기를 바랍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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