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쌍용차, 불투명한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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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 피해도 구조조정은 불가피… 협력업체 어려움 최소화해야

지난 4월 8일,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 멈췄다. 쌍용차는 8일부터 16일까지 일주일 동안 차량용 반도체 부품이 수급 차질을 빚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어서라고 밝혔다. 현장에는 불안 섞인 농담이 오갔다. “휴업 끝나고 노란 봉투 날아오는 것 아니야?” 노란 봉투는 해고통지서가 담긴 봉투를 의미한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에 있는 쌍용차 로고 / 연합뉴스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에 있는 쌍용차 로고 / 연합뉴스

법원은 지난 4월 1일 쌍용차 법정관리 절차에 착수했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채권신고와 조사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법원은 이를 바탕으로 쌍용차를 존속시킬지, 청산할지를 결정한다. 회생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재무구조 개선이나 구조조정 등의 절차를 밟게 된다. 청산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쌍용차는 사라지게 된다.

쌍용차 4800여명에 협력업체 2만여명

쌍용차는 2017년 이후 매년 적자 상황이다. 그럼에도 법원이 쉽게 청산을 결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가 청산될 경우, 쌍용차 임직원 4800여명을 포함해 협력업체 직원 등 2만여명이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서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량 해고 문제를 떠안기에는 부담이다.

다만 청산을 피한다 해도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 언론을 통해 대규모 인력조정이나 20% 임금 삭감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에 따르면 아직까지 회사나 노동조합을 통해 정확히 공지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래서 더 불안하다. 소문만 무성하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사는 이미 2019년 한 차례 임금 삭감에 합의했고, 올해 1월부터는 그마저도 절반만 받고 있다. 나머지 절반은 체불임금으로 쌓인다. 몇 달째 임금 절반만 받다 보니 배달이나 택배 등 아르바이트에 나선 이들도 적지 않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4월 임금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지금 상황에서 분명한 건 쌍용차가 살아남으려면 전기차나 자율주행 등의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원만 정리한다고 정상화가 되느냐? 누가 봐도 아니다”라며 구조조정을 답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도 어려움에 처했다. 현재 쌍용차 1차 협력업체는 250~300곳 정도이고, 2·3·4차 협력업체까지 더하면 700~800곳에 달한다. 문제는 3·4차 협력업체다. 1·2차 협력업체는 쌍용차뿐 아니라 다양한 회사의 부품을 취급하고 현금유동성도 나쁘지 않지만 3·4차 협력업체 중에는 영세한 곳이 많다.

“공장 가동만 계속하게 해준다면 원가를 절감해서라도 쌍용차 회생계획에 동참하겠습니다.” 지난 4월 5일 협력업체들이 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내용이다. 실제 일부 업체는 공장이 멈춘 상태이고 돌아오는 어음을 막지 못해 부도 위기에 처한 곳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경기도 지역의 어음부도율(어음교환액을 부도금액으로 나눈 비율)은 1.5%로 집계됐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며, 전국 평균 0.19%보다 훨씬 높다. 쌍용차의 협력업체와 지역상권이 흔들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정부 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결국은 쌍용차 공장이 돌아가야 부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없는 회사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는 식의 말에 노동자들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막막함을 토로했다. 쌍용차에서 27년을 일한 A씨는 “경쟁력이 부족한 거, 우리도 안다. 그런데 그거 우리 탓이냐”고 되물었다. 쌍용차를 인수한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는 하지 않고 기술만 빼갔다는 것이다.

“시간 걸려도 제대로 된 투자자 찾아야”

노동자 B씨는 “마힌드라는 ‘먹튀’가 아니라고 하는데 마힌드라가 쌍용 티볼리와 렉스턴의 기술을 가지고 인도에서 필요한 차를 만들었다”며 ‘XUV300’, ‘알투라스G4’를 언급했다. 두 차종은 2019년 인도에서 마힌드라의 전체 판매량의 20%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보도됐다.

쌍용차를 인수한 기업들이 기술개발 투자에 인색했던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상하이차는 재투자와 신차 개발 등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고, 마힌드라 역시 2300억원 규모 투자를 약속했지만 결국 철회했다.

그렇다 보니 업계에서 쌍용차 기술연구소 직원들의 근속연수가 길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가 투자를 하지 않으니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연구 성과가 나지 않으니 더 투자를 받기 힘든 식의 악순환이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보통 회사는 수익 일부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데, 적자 상황에서 연구개발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불안한 상황이 빨리 끝나기 위해서는 투자자가 나타나야 한다. 노사가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투자자가 없으면 회생절차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금력 있는 투자자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투자를 밝힌 국내 전기차업체 에디슨모터스의 자체 자금력은 쌍용차 인수에 나설 만큼 충분하지 않다.

앞서 투자 의사를 밝혔던 HAAH오토모티브 역시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HAAH는 투자를 받아 쌍용차를 인수하려고 했으나 결국 투자자 설득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HAAH는 미국의 자동차 유통업체로 자금력이나 기술력 모두 완성차 업체를 운영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현재 상황에 대해 쌍용차 기업노조 관계자는 “노사정이 힘을 합쳐 투자자를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반복적으로 노조를 언급하는 것이 불편하다”며 “정부의 언급이 인수나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쌍용차의 이른바 ‘민주노조’는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급격하게 약화돼 지금은 기업노조가 대표노조다. 언론에는 노사 상생 기업으로 소개되곤 했다. 기업노조 소속인 A씨는 “뭐라도 액션을 하고 그런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다. 너무한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상하이나 마힌드라처럼 쌍용차보다 기술력이 부족한 외국 기업이 들어와 투자금만 뽑아먹고 날라버리면, 그때는 쌍용차는 정말로 끝난다”며 “어려운 상황이 조금 길어지더라도 제대로 된 투자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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