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끼리 맞부딪친 ‘부동산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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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부산시장 선거 중간평가… 네거티브 쟁점도 ‘부동산’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부동산에서 시작해 부동산으로 끝나는’ 선거가 됐다. 공약도, 네거티브의 소재도 모두 부동산이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 3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기호 1번을 표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3월 30일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에서 가진 집중유세에서 기호 1번을 표시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닮은꼴은 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다.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내세운 대표 공약은 부동산 공급 확대와 규제 완화였다. 기존 도심지 용적률을 상향 조정해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할 것을 강조했다. 1주택자의 종부세 완화, 종부세 과세기준을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며 부동산 민심을 공략했다. 대선 직후 강남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는 3주 사이 3배 가까이 올랐다.

반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참여정부 정책 기조 유지를 택했다. ‘수요억제’라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근간으로 재건축 규제 역시 풀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두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뚜렷한 차별성을 보였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1순위 공약은 스피드 주택공급이다. 용적률 규제 완화 등 1년 내 부동산 규제를 풀고 재개발·재건축 활성화로 부동산 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부동산 세제 조정도 공약으로 내놨다. 서울지역 공시지가를 동결해 재산세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부동산 정책만 놓고 보면 2007년 대선 한나라당 공약과 판박이다. 오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한강 주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아파트 가격이 들썩이는 현상도 2007년 대선 전후에 나타난 현상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부동산 정책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 부동산 규제를 유지해온 문재인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다른 노선을 택했다. 2007년 대선에서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기조를 따랐던 민주당의 선거전략과는 차이가 있다.

부동산에서 밀리면 만회할 수 없어

박 후보 역시 부동산 개발과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민간과 공공 등 사업 주체와 속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부동산 공약의 방향성은 국민의힘과 다르지 않다. 오 후보는 공시지가 ‘동결’을 내세우고 박 후보는 ‘공시지가 인상 10% 이하 조정’을 약속하는 식이다.

두 후보의 부동산 정책은 왜 닮았을까. 2007년 대선은 일자리 창출과 중소기업 육성, 무상 교육 등 다양한 이슈가 선거판에서 다뤄졌다. 특정 공약에서 점수를 잃어도 다른 이슈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구도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다르다. 여러 쟁점이 부딪혔던 기존 선거와 달리 ‘부동산’이라는 단일 쟁점을 두고 겨루는 판이다. 부동산에서 밀리고 나면 만회할 수 있는 다른 분야가 없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 난 정책”이라며 “박영선 후보 입장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지배하는 선거에서 이미 실패한 정부 노선을 따르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월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3월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기자단

선거 후반을 주도한 네거티브의 쟁점도 부동산이었다. ‘악재’를 ‘악재’로 덮는 방식이었다. 박 후보는 3월 30일 KBS 서울시장 재보선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조연설부터 “내곡동 땅 문제, 이것은 오 후보의 공직자로서의 부적절한 태도가 문제다. 자고 나면 거짓말”이라며 부동산 이슈를 공격했다. 박 후보의 발언을 두고 ‘거짓말 프레임’이라며 반박한 오 후보는 “정부 방침에 의해 강제 수용된 땅을 두고 돈을 벌려고 특혜받은 것처럼 하는 것은 지독한 모함”이라고 맞섰다. 내곡동 땅은 TV 토론을 비롯해 선거운동 기간 내내 다른 이슈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민주당이 전방위적으로 내곡동을 공격하면 국민의힘이 반박하는 구도가 이어졌다.

네거티브 선거전, 표심 못 바꿔

과열된 네거티브는 비판의 대상이지만 선거 후반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유권자 표심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네거티브 카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네거티브의 위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 민주당은 내곡동 땅을 내세워 집중포화를 퍼부었지만 오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3월 31일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서 “서울시장 지지후보를 안 바꾸겠다”는 응답이 86.5%를 차지했다. 리얼미터가 YTN·TBS 의뢰를 받아 3월 29~30일 서울시민 1039명 대상으로 박·오 후보 중 지지 후보를 물은 결과 오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55.8%, 박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이 32.0%로 두 후보 간 격차는 23.8%포인트였다. 네거티브 선거전이 표심을 바꾸는 데 영향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의 내곡동 공세는 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을까. 시작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김 전 실장은 지난 3월 29일 ‘임대차 3법’ 통과 직전 전세보증금을 상한(5%)보다 인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격 경질됐고, 이후 ‘임대차 3법 내로남불’ 논란은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 여권 전체로 번졌다. 이낙연 민주당 공동 상임선대위원장은 “정부여당이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동산 ‘내로남불’ 논란이 커지면서 당·정이 마련한 부동산 투기 근절 대책도 힘을 잃었다. ‘선거를 앞두고 만든 정치적 대책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홍 소장은 “네거티브는 당사자가 도덕적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 상대 약점을 공격하는 것이 기본 상식”이라며 “박 후보의 내곡동 네거티브는 배우자 명의의 도쿄 아파트 보유와 같은 본인의 부동산 흠결을 더 부각시키는 악수였다. 도덕적 우위가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네거티브의 최대치는 동반 침몰”이라고 말했다. 욕망과 욕망이 맞부딪친 선거에서 네거티브 선거전이 설자리는 없었다는 얘기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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