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송에 부동산 ‘블랙코미디’를 담아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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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둘러싼 불법과 탈법이 끝모를 파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신도시 예정지 투기 의혹에는 2000명 넘는 수사관을 투입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전 ‘꼼수’ 전·월세 인상을 한 청와대 인사는 경질됐다. 치솟는 집값을 전하는 뉴스조차 잠시 뒤로 밀렸다.

사진/이준헌 기자

사진/이준헌 기자

황푸하(33)는 ‘부동산 피로감’을 잠시나마 위로해줄 포크 뮤지션이다. 그는 ‘집’과 공간을 노래한다. 2020년 11월 EP(Extended Play) 앨범 <우리집>을 냈다. 이 앨범에 담긴 ‘공간초월(空間超越)’에선 잃어버린 ‘우리집’으로 절망과 희망 사이를 탐색한다. 조심스레 깔리는 기타 선율과 함께 “내 작은 목소리로 소중한 나의 집 지켜낼 수는 있을까”, “우리집은 이제 땅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들의 만남 안에서 땅을 넘어서게 된 거야”라고 말한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2020년 6월 목사가 됐다. 이제 뮤지션이자 사회활동가이면서 목사다. 농성장에서는 황푸하를 빠르게 발음한 ‘빵빠’ 목사로도 불린다. 현재는 새민족교회의 담임 목사다.

“제가 알던 세속적인 교회를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정의롭게 분배하고, 나눌 수 있는 세상을 고민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생각해요.”

황푸하를 지난 3월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새민족교회에서 만났다.

음악을 블랙코미디처럼

황푸하는 2012년 EP 앨범 <그렇게 하지 말아요>로 데뷔했다. 첫 앨범을 내기 전, 이미 홍대 클럽에서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포크 뮤지션이었다. 이때는 종종 50~60명씩 클럽이 꽉 들어찰 때도 있었다.

작곡이나 편곡을 따로 배우지 않았다. 대신 음악을 두루 접했다. 초등학교 시절,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에서 5년간 살았다. 이때 첼로를 배웠다. 군악대에서도 음악을 익혔다. 낮에는 트럼펫, 밤에는 재즈를 했다. 트럼펫은 공식행사에서, 재즈는 군 간부들의 술자리에 불려가 안주삼아 연주했다.

2016년 1집 <칼라가 없는 새벽>, 2018년 2집 <자화상>을 거치며 자신만의 색깔을 확고히 했다. 마음 차분해지는 포크 선율에 스윙, 재즈를 버무리고 가난, 연대, 사랑, 주거, 삶과 죽음을 입힌다.

“음악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기잖아요? 사회현장은 굉장히 좋은 이야기가 되죠. 단순히 음악의 소재로 소비하는 것은 아니고, 저에게는 음악 안 이야기를 완성해주는 토대가 사회 연대와 하나의 철학이자 사상인 신학이에요.”

그는 자신의 포크송을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서도 부른다. 최근에는 노량진 수산시장,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정기적으로 찾는다. 그는 2016년 재개발로 사라지는 옥바라지 골목을 지키며 만든 옥바라지선교센터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사실 제가 하고 있는 포크라는 장르가 일반 민가(민중가요)처럼 힘 있는 음악은 아니잖아요? 제 포크는 힘이 없고 곱거든요, 되게(웃음). 2009년 용산참사 현장에서 포크를 하는 시와씨 음악을 들었는데 훨씬 강한 느낌을 받았어요. 용산참사 현장에는 거친 용역 깡패들도 많았는데, 오히려 그 음악에서 더 힘이 느껴지더라고요, 포크가. 그리고 제가 가장 잘 하는 게 포크이기도 하고요.”

황푸하 EP 앨범 <우리집>과 2집 앨범 <자회상> 커버 / 황푸하 제공

황푸하 EP 앨범 <우리집>과 2집 앨범 <자회상> 커버 / 황푸하 제공

목사지만 그의 노래에선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가난, 사상, 혁명 같은 선명한 단어가 간혹 등장한다. “그토록 우리 기다리던 빛 모두에게 비춘다 가난한 집에도 울려 퍼진다 따스한 위로가 울려 퍼진다”(‘해돋이’)며 직접적으로 가난을 위로한다. 집 꾸미는 과정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인테리어’에는 “한쪽 벽엔 나의 사상을 나타낸 포스터가 당당하게”라는 표현이 담겼다.

“대부분 은유적인 표현을 가사에 사용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가끔 가난, 혁명처럼 직관적인 단어들을 계산하고 가사에 슬쩍 배치는데, 그럴 때마다 그 단어들이 주는 힘이 있어요.”

최근에는 일상의 블랙코미디를 음악으로 담아내는 시도를 했다. 직접 겪은 경험으로 이야기의 뼈대를 세웠다. 그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산다. 망원동은 저층의 주택가가 몰려 있다. 주택 재개발을 원하는 외지인들이 자주 편지를 보낸다. ‘외부인’에는 “한적한 우리 동네 골목 사이 이상한 이들이” 등장한다. 재개발을 노리고 주택을 이미 샀거나 사려는 외지인이다. 이들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소개를 한다. 선량한 시민이라고” 하고, “안쓰런 표정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 가난을 걱정해준다.”

“이런 편지를 받아봤어요. 자신이 (서울 양천구) 목동에 거주하는 두 아이의 아버지고 정상적인 시민이래요. 아마 목동 아파트에 살면서 망원동에 연립주택을 사놓고 재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겠죠. 투기의 목적이 아니라 재개발해서 다 같이 잘살아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재개발 동의해달라 이런 걸 텐데, 뭔가 자신은 깨끗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재밌었어요.”

사진/이준헌 기자

사진/이준헌 기자

사랑을 한다는 건

황푸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특별상만 두 번 받았다. 모두 공동수상이었다. 2017년에는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을 다룬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받았다. 올해는 일본군 위안부 헌정 음악 프로젝트 ‘이야기주세요’로 특별상을 받았다. 2019년에는 최우수 포크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대중음악상은 국내 인디뮤지션들의 음악적 성취를 가늠해볼 수 있는 유일한 시상식이다.

정작 그는 사람들의 주목과 관심을 즐기지 않는다. 포크의 대부라 불린 고 조동진(1947년생)과 동년배로 묶여 소개된 적도 있었다. 그를 몰랐기에 생긴 일이었다.

“사실 제가 한참 젊은 뮤지션인데요(웃음). 저한테는 좋고 영광이에요. 저를 몰라봐 주는 게. 어느 날엔가 카페에서 내 음악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종업원분이 저한테 노래를 추천하더라고요. ‘최애’라고 하면서요. ‘아, 나를 모르는구나’ 너무 좋았어요. 저와 30분 넘게 이야기하고도 내가 황푸하인 줄 몰랐던 기자분도 있었어요(웃음).”

-방송 출연 제안이 온다면?

“음악방송이 아니면 안 나갈 것 같아요. 제 음악을 알아주고, 찾아 들어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데, 저한테는 관심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OST 제안이 온다면?

“하죠(웃음). 저를 알리는 활동이 아니라 제 음악을 하는 것이니까요. 음악에 대한 반응은 늘 감사하죠. 가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DM(다이렉트 메시지)이 오는데 외국 사람들이 많이 보내요. 노래가 좋다고. 대부분 확인해보면 BTS 팬이더라고요. 저야 감사한 마음을 ‘땡큐’라고밖에 표현을 못 해 아쉽기만 할 뿐이죠(웃음).”

그가 집과 가난과 연대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연인의 사랑 노래도 부른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이 대표적이다. 이 노래에는 이별, 짝사랑, 고백, 청혼이 아닌 ‘태도’가 담겼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대를 내 길에 데려오지 않아도 괜찮은 거야”, “사랑을 한다는 건 너만의 공간을 빼앗지 않겠다는 다짐인 거야”라며 있는 그대로의 ‘너’를 괜찮다고 다독인다.

“기존의 노래에는 ‘너는 내 것이야’라는 태도가 담겨 있어요. 이게 되게 가부장적인 태도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나한테 예속돼라, 이런 건데. 별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대신에 ‘너는 너의 것이야’라는 말로 서로를 지지해주는 관계가 사랑으로 결속된 관계라고 생각돼요.”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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