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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 ‘정책’이 잘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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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7일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진표가 확정됐다. 전통의 양강 구도다. 후보가 추려지기 전까지 선거판은 네거티브가 주도했다. 의제와 정책이 사라지면서 코로나19 위기와 불평등 위기, 기후 위기 등 시민사회가 꼽은 3대 의제는 선거판에 오르지 못했다. 후보들이 정책대결을 펼친 분야는 수십만호 주택 공급과 부동산 개발 정책뿐이다. 형식적으로나마 미래 의제를 놓고 경쟁했던 지난 선거와 비교해도 정책 실종 현상이 두드러진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선거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역 공약을 토대로 한 정책 선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때마침 25개 자치구의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는 ‘자치구 대전환’ 행보를 마무리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도 “양 후보가 캠프 공약 기간 나온 좋은 공약을 공유하고 정책공유팀을 만들 것”이라며 정책 선거전을 치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후보의 공언처럼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책선거’로 치를 수 있을까.

‘무상급식’이 이뤄낸 교육복지 2010년 서울시장 선거, 당시 한명숙 민주당 후보는 서울아동 기본복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기에는 친환경 무상급식이 포함됐다.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제1핵심 공약은 공교육 강화로 사교육·학교폭력·준비물 없는 이른바 ‘3無 정책’으로 맞섰다. 세부 공약은 다르지만 두 후보가 공방을 벌인 정책 의제는 ‘교육’이었다.

오 후보의 당선 이후 서울시는 ‘오세훈표 3무 교육 정책’을 추진했다. 3무 교육 정책은 찬반 여론과 별개로 교육복지 논의를 확장한 결과를 가져왔다. 한 후보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무상급식 공약은 살아남았다. 2010년 12월 1일 서울시 의회는 무상급식 조례안을 통과시켰고, 2011년 695억원의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무상급식은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 학교로 확대됐다. 이후 무상교육, 입학준비금 지원 등 학교에는 교육복지 정책이 자리 잡았다. 무상급식이 한국의 보편적 교육복지 정책을 한단계 도약시킨 셈이다.

서울시장 선거는 새 어젠다를 발굴하는 ‘장’ 역할을 해왔다. 승패와 별개로 선거판에 오른 의제들은 미래 정책의 밑거름이 된다. 그렇다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어떨까. 이번 선거는 여느 서울시장 선거보다 ‘미니 대선’ 성격이 짙다. 선거가 두 진영 간 대결로 좁혀지면서 정책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권심판과 정권사수 구호가 의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지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아예 이번 선거를 ‘정권교체를 위한 선거’로 규정했다.

하지만 서울시민은 정책을 원한다. 서울시장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시민들은 ‘정책 전문성’이라고 답한다. 여론을 의식한 듯 후보들은 저마다 정책선거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시민에게 보여준 비전과 정책은 무엇일까.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디지털 서울’ 박 후보의 비전은 ‘디지털 서울’이다. 디지털화폐(KS-코인) 발행과 프로토콜(protocol) 경제로의 전환이 핵심 공약이다.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한 경제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프로토콜 경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의 독점을 막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를 가능하게 한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디지털 서울로의 전환을 강조하기 위해 박 후보는 이번 선거를 ‘과거(토건)와 미래(디지털)’의 대결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박 후보의 디지털 공약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KS-코인은 현행 제로페이와 차별성 없고 ‘암호화폐를 통해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 공정한 대가를 받는다’는 프로토콜 경제는 도입의 당위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더 나은 노동환경과 공정한 보상을 왜 암호화폐를 통해서만 가능한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블록체인 암호화폐 기반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 보면 효용성이 떨어지고 지자체가 주도하기에도 위험 부담이 크다”며 “정치인이 산업계 일부의 목소리만 듣고 혁신으로 쉽게 규정하고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말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 국회사진기자단

오세훈 ‘회복하는 서울’ 박 후보의 디지털 서울에 맞선 오 후보의 비전은 ‘회복하는 서울’이다. 지난 10년 동안 하락한 서울의 도시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핵심 정책은 다핵경제도시 구축과 신속한 주택공급이다. 1년 내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계획규제를 풀어 주택을 빠르게 많이 공급하고 혁신파크, 쇼핑·문화센터, 경전철 조기 착공을 주축으로 서남·서북·동북·동남권을 개발한다. 요약하면 토건을 통해 서울을 재건한다는 구상이다. 오 후보의 빠르고 신속한 규제 완화 공약에 벌써부터 한강 주변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들썩이고 있다.

오 후보의 개발 공약으로 서울은 회복될까. 도시경쟁력은 객관화된 지표가 아니다. 평가 기관에 따라 서울의 경쟁력 순위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퇴보가 분명한 영역이 있다. 공공의료 분야다. 코로나19로 공공의료 부족과 의료 공백이 드러났다.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 구급 출동에서 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평균 36분이다. 2019년 평균 25분에서 11분 증가했다. 감염병은 지금도 시민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오 후보의 회복 프로젝트에는 코로나19가 보이지 않는다. 현재까지 오 후보가 발표한 보건의료 관련 공약은 1인 가구 어르신 돌봄 정책에 포함된 웨어러블 의료기기와 스마트 케어시스템 구축 정도다. 전진한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은 “서울시가 구상하는 의료 시스템은 코로나19 이후 한국의 보건의료체계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서울시장은 감염병 대응의료체계에 대한 비전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오세훈 후보의 공약에는 보건의료 분야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동산 개발을 통해 하드웨어를 마련하지만, 질을 높일 소프트웨어 공약은 부실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박영선 민주당 후보의 보건의료 공약은 어떨까. 박 후보는 경선에 돌입하면서 서울의 새로운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구상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공약은 ‘원스톱 헬스케어 서비스’ 공약이다. 21분 생활권 내에 있는 동네 주치의가 대형병원과 환자의 의료데이터를 공유하는 진료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게 공약 내용이다. 박 후보는 데이터 공유를 통해 진료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박 후보의 공약은 정작 공공의료 확충 운동을 해온 시민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개인의 의료데이터 공유를 토대로 한 박 후보의 정책이 공공의료를 훼손하고 의료 민영화를 촉진할 것이라고 본다.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지난 3월 2월 성명을 통해 “진료정보·생체정보는 최대한 보호돼야 한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개인의료정보를 한 데 축적해 기업들에 넘기기 위한 데이터 센터를 만들 계획을 내놓았다. 반인권적 비윤리적 계획을 내놓고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 개탄스럽다”고 밝혔다. 앞서 김진애 열린민주당 전 의원은 지난 3월 12일 열린 박 후보와의 토론에서 “의료데이터 공유는 보험업계의 숙원이다. 의료 정보 공유해서 보험 수가를 조정해 장사하기 위한 것”이라며 “미사여구를 동원하는데 (박 후보의 공약은) 결국 의료민영화를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선의 양극화 해법 ‘기본자산’ 블록체인·암호화폐 경제생태계 구축이 불평등 해결을 위한 장기적 비전이라면 ‘청년출발자산제’는 현실적인 공약에 속한다. 청년출발자산제는 서울에 거주하는 19세부터 29세에 해당하는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정책이다. 소득과 자산 여부와 관계없이 20대 청년들에게 최대 5000만원을 지원한다. 수혜 입은 당사자는 30세부터 10년간 원금을 갚아야 한다. 다만 대출금액에 대한 이자는 서울시가 부담한다.

박 후보는 지난 3월 4일 시대전환 조정훈 후보와의 단일화 토론에서 조 후보의 ‘서울형 기본소득’ 제안에 대해 “핀란드에서도 기본소득을 하다가 실패했다”며 “기본소득 개념보다는 기본자산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런데 청년출발자산제는 기본자산제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기본자산(기초자본)은 국가가 모든 성년에 이른 공동체 구성원에게 일정 수준의 현금 자본을 한 번에 지급하는 제도다. 이른바 사회적 지분급여를 통해 사회가 개인의 삶에서 새로운 인생설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는 취지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 교수는 “기본자산제는 청년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인간으로서 권리와 삶 속의 기회를 받기 위한 사회적 상속제도”라며 “목돈을 대출해 원금을 갚도록 하는 청년출발자산제를 기본자산제로 칭하는 것은 제도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정책을 만드는 것은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선거를 위해 이전부터 제도를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들의 노력에 올라타 이득을 취하거나 본래 의미마저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수의 기본소득, 오세훈 ‘안심소득’ 오 후보가 제시한 양극화 대안은 서울시민 안심소득제도다. 소득 하위 50% 가구에 중위소득에서 가구소득을 뺀 값의 절반을 기존 복지 재원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 중위소득 100% 이하(4인 가구 기준, 연 6000만원) 200가구를 선정해 시범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오 후보는 안심소득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온 국민 일정 금액 지급하는 기본소득의 ‘보수버전’이라고 설명했다.

안심소득은 보수의 기본소득으로 볼 수 있을까. 김찬휘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은 오 후보의 안심소득이 “사회적 취약층의 혜택이 줄어드는 기본소득은 도입하지 않는다”는 기본소득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 다른 개념의 정책이라고 본다. 김 위원은 “기존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던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을 폐지한 재원으로 운영하는 제도가 안심소득제”라며 “저소득층에게 돌아가는 수혜액이 이전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의 중위소득 100% 이하 가구는 전체 28% 정도”라며 “시행된다 해도 서울시민 28%만을 수혜대상이다. 수혜층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빈곤 완화 효과가 작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등 시민사회의 주요 관심사인 환경 분야도 선거판에서 사라졌다. 박 후보는 기후와 환경 대전환을 3대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세부 공약이 기존 정책과 차별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녹화(綠化) 건물을 세워 도시의 공기를 정화한다는 ‘수직 정원 도시’ 구상은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이라는 비판마저 받고 있다. 오 후보는 아예 5대 공약에 환경 분야를 포함하지 않았다. 김선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집행위원은 “기후 환경 공약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자세히 보면 본질은 토건 공약”이라며 “보기 좋은 구호 말고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한데 두 후보 모두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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