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법정 문을 여는 열쇠, 법리와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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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삼권분립 이론을 배운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 및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법부로 나누고, 견제하게 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막는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엇갈리는 사건에서 판결이 선고되면, 어떤 사람은 “법대로 판단하라”고 말한다. 수학공식처럼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되는데, 판사가 요령을 피워 복잡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판단하지 마라”고 말한다. 법규정이 너무 모호해 판사 마음대로 해석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판결을 보도하는 기자는 법률가의 주장과 논리가 생소해 와닿지 않고, 판결문에 적힌 법리와 판례가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대체로 시민은 법률이 완전하고 흠결이 없어 판사가 그대로 적용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육법전서만 암기하면 된다거나, 판사를 못 믿으니 ‘AI(인공지능) 판사’로 바꾸자는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맞는 말일까?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고의로 죽인 살인죄를 처벌한다. 그런데 사람은 법적으로 정확히 언제 태어나 죽는 것인지, 고의로 죽이는 것은 과실로 죽게 한다는 것과 어떻게 구별할지, 행위와 죽음의 인과관계는 어떻게 판단할지, 안락사와 존엄사도 처벌해야 하는지 등 어느 기준을 취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게 많다.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자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피해자 측 변호사는 불법행위 법리를 제시한 많은 판례를 찾아보고 검토해야만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다.

법률을 문언대로 적용한 결론이 사회윤리적으로 부당한 경우 판사에게 수정권한을 주는 ‘신의성실원칙’과 ‘권리남용금지원칙’(민법 제2조. 가치판단적 일반조항)도 판례를 들춰봐야 결론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헌법 제19조는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종교적 믿음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을 처벌할지도 판사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해석할 의무

서양사에서 동로마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천년 동안 내려온 법을 전부 없애고, 자기가 만든 ‘로마법대전’이 완전하고 흠결이 없어 모든 법률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용이 명확하다며 해설을 금지했지만, 그가 죽기도 전에 해설서가 나왔다. 프랑스대혁명 정신을 계승했다고 주장한 나폴레옹은 ‘나폴레옹법전’으로 법을 정리하고, 법률가를 쓸모없는 사람으로 만들려 했다. 절대왕정기 구체제에서 판사가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법을 교묘하게 새로 만드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단순 명확한 법을 만들어 복잡하고 모호한 말을 늘어놓는 법률가를 없애고 판사를 ‘법의 문구를 말하는 입’으로 만들려는 권력자와 시민의 ‘선량한 의도’의 결합은 성공한 적이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어떤가. 법전만 읽고 자신의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보통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판사의 시각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명백한 조문은 하나도 없다. 문구만으로는 분명한 조항도 구체적 사건에 적용하면 모호하거나 추상적인 방향만 제시한 게 많다. 판사는 굳어버린 법률을 세상의 변화에 맞춰 해석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판사는 법을 수학공식처럼 적용하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은 유감이다.

그렇다면 법리란 무엇일까. 법리는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실정법과 판례 또는 학설을 소재로 만들어진 구체적 법명제의 체계적 집합이다. 법학도는 육법전서를 외우는 게 아니라 법조문이나 법개념에 대한 법리를 정리한 법서를 이해하고 시험을 치른다. 실제 소송에서 변호사와 검사는 적용될 법리가 무엇인지 다투고, 판사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법리를 밝히고 결론을 낸다. 법리는 같은 성격의 사건이라면 결론이 같아야 하는 ‘법적 안정성’을 지켜내고, 시민에게 ‘법적 행위의 지침’을 제공한다. 하지만 모든 측면에서 같은 사건은 드물고, 원칙과 예외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법리 중에서 어떤 것을 적용할지 의견이 대립한다. 나아가 법이 작동하는 사회현실과 가치를 어떻게 반영할지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 사건마다 법리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장래 재판에서 지침이 되는 판례

판사가 입만 열면 말하는 판례란 무엇인가? 판례는 법원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재판을 통해 선언한 법에 대한 공정한 해석으로 장래 재판에서 지침이 된다. 시민이 ‘살아 있는 법’을 알려면 법전이 아니라 판례를 살펴봐야 한다. 법에 대한 해석이므로 판례는 법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쟁점에 대해 하급심 판사가 판례에 반하는 법리를 취하면 대법원에서 파기될 수 있으므로 대법원 판례는 사실상 법으로 기능한다. 변론을 준비하는 변호사도 종전 판례를 참조해서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물론 판사도 사건마다 판례를 들춰본다. 종전 판례가 권위 있는 견해이거나 이론적으로 탁월하기 때문이다. 또는 다르게 생각하기 귀찮거나 파기당하기 싫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대립하고 수시로 판례가 변경되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이, 법리는 완벽할 수 없고 사회현실이 바뀌어 더 이상 타당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판사는 ‘법률가적 사고방식(legal mind)’과 ‘판사로서의 양심’에 따라 올바른 법리를 찾아내려고 궁리한 후, 판례가 제시한 법리와 비교하고 검토해야 한다.

시민은 법리와 판례라는 열쇠가 있어야 법정 문을 열 수 있다. 혼인할 때 출산경력을 알려야 하는지 설명한 ‘판사는 법적 안정성을 중시한다. 하지만’이 있다. 문제는 판사가 법 원칙과 논리에 따라 제시한 법리가 ‘사람으로서 최소한 도덕률’에 따른 시민의 법감정과 괴리가 발생할 때다. 몇년 전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은 사건에서 판사가 “법리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어서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모든 법률가가 동의하는 법리는 없다. 시민의 법감정과 명백히 다른 결론을 낼 때 이유를 알기 쉽게 설명한 ‘수필 같은 판결문’을 보면, 사람냄새가 난다고 느낄 것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이나 전문가도 ‘내로남불’식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고 판결이 제시한 법리와 추론과정을 분석한 후 평가하고 비판해야 한다. 법리와 판례를 판사의 고유영역이라며 도외시하는 태도는 사법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포기한 것이다.

<박형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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