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 시국에” 환영받지 못한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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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일전은 언제나 큰 인기를 모으는 ‘히트상품’이었다.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캐스터의 멘트로 유명한 일명 도쿄대첩처럼 극일의 역사가 쌓이다 보니 한일전이 열린다는 소식만 들어도 설레기 일쑤였다.

그런데 3월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한국과 일본의 평가전은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한축구협회가 10년 만의 진검승부를 예고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는 개최를 반대하는 댓글이 가득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가대표 한일전을 중지시켜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을 정도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3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한일전에 나설 태극전사 명단 발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이 3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한일전에 나설 태극전사 명단 발표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일전을 중지시켜 주세요’

한일전이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코로나19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 축구대표팀은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에서 원정 평가전에 나섰다가 나상호(서울)와 이동준, 조현우(이상 울산), 권창훈(프라이부르크), 황희찬(라이프치히) 황인범(루빈 카잔) 등 주요 선수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는 악몽을 겪었다. 일본은 하루 확진자가 1000명대로 코로나19 방역이 완벽하지 않은 대표적인 나라다. 이 문제로 2020 도쿄올림픽 개최가 불확실하다 보니 선수 보호 측면에서 걱정할 수밖에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공식 부상자(햄스트링) 명단에 이름을 올린 손흥민(토트넘)을 한일전 소집명단에 올린 것은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의 몸 상태를 확인한 뒤 최종 결정하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평가전에 다친 선수를 무리하게 데려온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손흥민의 소속팀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이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대표팀에서도 못 뛴다. 손흥민은 A매치 휴식기에 완벽하게 회복해야 한다”고 사태를 정리하면서 불필요한 논란을 자초한 셈이 됐다.

국내파 차출도 환영받지 못한 것은 똑같다. 한일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출입국에 따른 자가격리가 불가피한 터. 정부의 협조로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코호트 격리 속에 1주일(3월 27일~4월 2일)을 보내는 방식으로 자가격리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선수를 보내는 팀들은 불만이 적잖다. 4월 2일 재개되는 K리그1 일정을 감안할 때 최소한 1경기 이상은 전력 누수를 감수해야 한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돕겠다던 홍명보 울산 감독이 이번 소집에 울산 선수만 6명(김태환·이동준·윤빛가람·원두재·조현우·홍철)이 이름을 올리자 “이렇게 많이 뽑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소통이 필요하다”며 입장을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한일전이 도쿄올림픽 개최에 사활을 건 일본의 노림수로 악용된다는 시선도 반대 여론에 한몫하고 있다. 일본이 한일전에서 선수단 건강과 안전, 관중관리 역량까지 증명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전에 관중을 최대 5000명까지 들여보내기로 확정했는데, 오는 4월 도쿄올림픽 관객 수용 기준을 발표하는 것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한일전이 열리는 3월 25일은 1년간 연기됐던 도쿄올림픽 성화봉송이 시작되는 날이다.

한일전 취소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한일전 취소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그래도 한일전은 필요해

벤투 감독은 한일전을 반대하는 목소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현실론으로 맞서고 있다. 그는 “설득이 될지는 모르겠다”면서도 “모든 사회구성원이 각자가 속한 분야에서 허용하는 범위 아래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방역지침에 영향을 받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우리가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이 한일전이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역시 6월 국내에서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때문이다. 1경기를 덜 치른 가운데 H조 2위인 한국은 투르크메니스탄(6월 3일)과 스리랑카(6월 7일), 북한(6월 11일), 레바논(6월 15일)을 잇달아 상대한다. 코로나19로 3월 A매치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한일전은 선수들이 손발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

벤투 감독은 “2019년 11월 A매치를 치른 뒤 지난해 11월 오스트리아 원정까지 만 1년간 한 번밖에 정상적으로 소집을 하지 못했다. 이 같은 악재를 극복하고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을 치르려면 한일전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벤투 감독은 한일전에 나설 선수들의 안전에도 “의무팀에서 지난해 11월보다 더 철저하고 안전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벤투 감독의 의견대로 한일전이 강행되는 만큼 남은 과제는 승리다.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처럼 한일전 결과는 단순히 1경기로 재단할 수 없다. 조 본프레레(2005년 동아시안컵 0-1 패)와 조광래(2011년 삿포로 원정 평가전 0-3 패) 등 21세기 들어 중도 낙마한 대표팀 감독들을 살펴보면 한일전 패배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면에서 곳곳에 구멍이 뚫린 대표팀 전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벤투호에서 득점을 책임졌던 황의조(보르도)와 황희찬(라이프치히)이 소속팀의 반대로 빠졌고, 그 뒤를 받치던 이재성(홀슈타인 킬)은 소속팀에서 발생한 코로나19 확진자에 따른 자가격리로 제외됐다. 중원의 주춧돌이자 전술 변화의 축인 황인범(루빈 카잔)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경기에 뛸 수 없는 상태다. 수비라인도 김민재(베이징 궈안)와 권경원(상무), 김진수(알 나스르), 김문환(LA FC) 등도 부상과 소속팀의 차출 반대로 빠졌다. 유럽파는 이번 소집에 정우영(프라이부르크)과 이강인(발렌시아) 둘뿐이다. 벤투 감독은 “코로나19로 선수를 소집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한일전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잘 안다”고 승리를 다짐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일본도 유럽파 소집에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하노버96에서 뛰는 미드필더 하라구치 겐키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선수단 전체가 2주 자가격리에 들어가면서 같은 팀 동료인 수비수 무로야 세이까지 이번 소집에서 제외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도 2017년 동아시안컵에서 한국에 1-4로 대패한 바히드 할릴호지치 전 감독이 경질되면서 일본축구협회를 상대로 사과를 요구하는 1엔 소송을 벌인 적이 있다는 점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을 전망이다.

<황민국 스포츠부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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