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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폐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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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발전이 끝난 자리엔 핵폐기물이 남는다. 방사성폐기물은 원전 선진국들도 처치 불가의 골칫거리로 여긴다.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방사성폐기물을 영구적으로 처리하거나 저장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폐로를 한다고 원전과 ‘깔끔한 이별’을 할 순 없다. 갈 곳을 찾지 못한 핵폐기물은 결국 원전 인근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이 진행하는 원자력 해체 워크숍 소개 페이지에 나온 한 원자로 해체 사진 / 유럽연합

유럽연합이 진행하는 원자력 해체 워크숍 소개 페이지에 나온 한 원자로 해체 사진 / 유럽연합

국내에 현재 총 24기의 원전이 있다. 경수로가 21기, 중수로가 3기이다. 경수로형 원전에서 매년 약 420t(약 20t/기), 중수로형 원전에서는 약 270t(약 90t/기)의 사용후핵연료가 나온다. 2019년 말 기준 사용후핵연료 누적 저장량은 총 48만2592다발(경수로형 1만9268다발, 중수로형 46만3324다발)이다. 중수로형 원전은 농축되지 않은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발생한다.

해마다 증가하는 원전 해체비용

사용전핵연료엔 가까이 있어도 문제가 없지만 사용후핵연료는 위험 물질이다. 핵분열 과정을 거치면서 높은 열과 방사능을 가지는 물질로 바뀌기 때문에 특별 관리해야 한다. 고리1호기처럼 물을 냉각제로 사용하는 경수로형 원전의 경우 사용후핵연료를 노심 안에 임시 보관할 수도 있지만 중수로의 경우 맥스터와 같은 별도의 임시 저장시설로 옮겨야 한다. 중저준위 방사선폐기물을 경주 방폐장으로 보낼 때마다 부담금을 내듯, 사용후핵연료도 반출할 때마다 관리비용을 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이렇게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t당 12억8000만원(2014년 기준)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사용후핵연료를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대략 연간 8830억원이 된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비용은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기금을 설치해 적립한다. 이 기금을 이용해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의 건설과 운영비용을 대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도 낸다. 처분비용 적립금액은 2007년 4조2234억원에서 2015년 7조원 정도로 늘었다. 경주에 중저준위 폐기물 영구저장 시설이 마련된 것과 달리 사용후핵연료는 중간저장시설이나 영구처분시설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임시저장 시설에 쌓이고만 있다.

[표지 이야기]원전 폐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 없이는 불가능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원전 내에 임시저장 중인데 중수로인 월성원전이 올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원전 해체도 수조 내의 사용후핵연료를 옮겨 저장하는 데서 시작한다. 원전을 안전하게 운전하고 폐로가 결정된 원전을 해체하기 위해서도 영구저장시설 설치를 포함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정수희 에너지정의행동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비롯한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계획과 방법이 있느냐를 폐로의 핵심 요소로 본다”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로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을 건설 중인 핀란드는 부지 선정부터 건설단계까지 최소 40년이 걸렸다. 부지 선정도 못 한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멀다.

사용후핵연료 정책 방향 아직도 표류

박근혜 정부가 2016년 7월 시민사회 의견수렴 없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기본계획을 확정한 데 비판이 커지자 문재인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작업을 공약했다. 그 결과 2019년 재검토 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위원회를 원전 진흥 부처인 산업부 자문기구로 둔 것이 파행을 낳았다. 이전 정부의 관리정책을 그대로 밀고 가면서 형식적인 의견수렴만 한다는 생각에 전문가들이 잇따라 사퇴했기 때문이다. 재검토 위원회 활동 기한은 결국 올해 5월까지 예정보다 1년 연장됐다.

사용후핵연료 정책이 표류하면서 고리1호기 해체가 제대로 진행될지 의문인 상황이다. 한병섭 원자력안전연구소 소장은 “사용후핵연료를 끄집어내야 폐로가 가능한데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폐로만 선언했다”면서 “사람은 죽어가는데 관을 아직 안 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산업부 관료가 문재인 정부에 그대로 남아 중간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공론화에 60억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시간 낭비였을 뿐”이라고 비판한 원전 전문가도 있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원전 해체비용도 상승하고 있다. 원전 1호기당 해체 추정비용은 2015년 6437억원에서 2017년 7515억원, 2019년 8129억원으로 올랐다. 원전 해체비용은 방사성폐기물관리법에 따라 산업부 주관으로 2년마다 산정해 고시한다. 산정 때마다 해체비용이 상승하는 이유에 대해 한수원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비 단가상승과 영구정지 후 사용후핵연료 반출 전까지 안전관리 기간 동안 유지·보수를 위한 비용을 반영했기 때문이다”면서 “그 외 물가상승과 인건비 단가상승 등도 반영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핵심은 영구 처분시설을 위한 부지 선정이다. 태안 안면도, 인천 굴업도, 부안 등 과거 중저준위방폐물 처분부지 선정을 둘러싼 갈등 사례를 보더라도 주민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선 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위한 부지 확보는 불가능하다. 결국 주민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경제적 지원책이 논의된다. 현재 국회에는 지역자원시설세라는 이름으로 사용후핵연료 보유량에 따라 세금을 물려 이를 지역에 귀속시키는 지방세법 일부 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국세에서 지방세로 전환해주는 교부세의 비율을 19.25%에서 19.42%로 올려 그 차이만큼을 ‘원자력안전교부세’ 명목으로 지역에 나누자는 과세법안도 발의됐다. 김용국 영광 핵발전소 안전성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폐로 지원법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원전이 바로 해체되는 것도 아닌데 돈만 끊기면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발전소에 기대 사는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발전소 돈이 아니어도 지역이 충분히 살 수 있다는 신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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