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유광고는 소비자를 속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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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경제소식을 전합니다. 경제부와 사회부를 오가며 취재해온 기자가 소송과 판결 비친 경제현장으로 쏙 안내합니다.

“속까지 진짜 친환경이라면 축산물이 먹는 사료까지 신경써야겠죠?”

전국에서 모인 농민과 아이쿱생협 회원들이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문재인대통령의 ‘GMO표시제 강화’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전국에서 모인 농민과 아이쿱생협 회원들이 2018년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로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 문재인대통령의 ‘GMO표시제 강화’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전남 구례에 있는 우유 생산업체 밀크쿱은 2017년 12월 신제품 ‘i우유’와 ‘i요구르트’를 내놓았다. 유전자변형을 가하지 않은(Non-GMO) 사료만 먹여 키운 젖소에서 짠 원유로 만든 제품들이다. 밀크쿱은 아이쿱생협의 협력사이다. 아이쿱생협이 운영하는 자연드림 매장에서는 계란, 닭, 돼지고기에 이어 ‘Non-GMO’라고 표기된 우유가 나란히 놓였다. 밀크쿱은 2020년 2월 전라남도로부터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으니 4개월 안에 표시문구를 바꾸라는 명령을 받았다. 우유갑에 표시된 ‘무항생제+Non-GMO 콩으로 키운 i우유’ 문구가 소비자에게 혼동과 오인의 여지를 줬다는 것이다. 밀크쿱이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내면서 사건은 법정으로 갔다.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전남도가 i우유의 표시문구를 문제 삼은 이유는 크게 세 단계로 이해할 수 있다. 문구는 ‘Non-GMO 우유’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Non-GMO 우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Non-GMO 사료를 먹인 소에서 짠 우유라고 제대로 이해해도 우유의 성분에 대해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콩이냐, 우유냐

식품의약안전처가 고시한 기준에 따르면 식품용으로 승인된 GMO 농축수산물과 이를 원재료로 해서 제조·가공·변형 후에도 변형된 DNA 또는 단백질이 남아 있는 식품이 GMO 표시대상이다. 콩(대두)과 옥수수, 바나나 등이 대표적이다. 표시대상 원재료 함량이 50% 이상인 가공식품은 GMO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Non-GMO, GMO-free 등의 문구를 표시할 수 있다. 콩과 달리 우유는 GMO 표시대상이 아니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은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효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고를 금지한다. 이 두 법령에 근거하면 ‘Non-GMO 우유’라고 표시하면 ‘GMO 우유’가 있으며, Non-GMO 우유는 GMO 우유보다 안전하고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오해를 줄 여지가 있다는 것이 당국의 판단이다. ‘Non-GMO 우유’가 허용되면 정상적으로 생산된 다른 우유제품들이 가만히 있다가 피해를 보는 셈이 된다. 밀크쿱은 “i우유는 생협매장에서 조합원을 대상으로 판매되며 소비자들은 GMO 콩을 먹이지 않은 젖소에서 생산한 우유로 생각하지 GMO 우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론을 내놓았다.

1심을 맡은 광주지방법원은 “아이쿱생협 조합원도 Non-GMO 곡물을 먹인 소에서 착유한 원유가 품질이 더 좋은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며 전남도의 손을 들었다. 표기문구를 제대로 이해했더라도 GMO식품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오해를 부를 것이라는 의미다. 아이쿱생협은 ‘GMO 완전표시제’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GMO 사료를 먹인 가축에서 나온 유제품이나 고기에도 해당 사실을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GMO식품은 안전하지 않고 생태에 위협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이쿱생협이 GMO 반대운동을 벌여왔다는 사실은 판결에 불리하게 적용한 셈이다.

가치소비 주목한 2심

판결은 2심에서 뒤집혔다. 지난 2월 5일 광주고법 행정1부(재판장 최인규)는 원심을 깨고 전남도가 행정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놨다. 재판부는 “‘Non-GMO 콩으로 키운 우유’ 또는 ‘Non-GMO 콩으로 키운 요구르트’는 모두 ‘Non-GMO’가 ‘콩’을 수식하고, ‘콩으로 키운’이 ‘우유 또는 요구르트’를 수식하는 형태의 문장”이라며 “일반적인 소비자라면 위와 같은 문장을 우유 또는 요구르트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Non-GMO 콩이 소의 사료로 사용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뿐 우유나 요구르트가 Non-GMO식품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콩은 여지없이 GMO 표기대상 식품이란 판단도 덧붙였다.

밀크쿱의 ‘i우유’와 ‘i요구르트’

밀크쿱의 ‘i우유’와 ‘i요구르트’

재판부가 무엇보다 주목한 것은 ‘가치소비’로 불리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였다. “오늘날의 소비자는 식품 등을 단지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서만 소비하지 않으며 식품 등의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이나 가치관, 신념 등을 드러내고자 한다. 할랄푸드(Halal food)나 채식주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며, GMO식품을 소비하지 않는 것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비자는 식품 등이 GMO식품인지 또는 식품 등에 GMO 성분이 포함돼 있는지에 대해서 뿐 아니라 식품 등이 생산되는 모든 과정에 GMO식품이 사용됐는지와 같은 사정도 고려해 그가 소비할 상품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며, 식품 등을 선택함에 있어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도 가진다.”

GMO식품의 안전성이나 생태계에 대한 위협 여부는 전 세계적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안전성 문제가 아니라 GMO 기술특허를 가진 다국적기업이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의 원주민을 토지에서 내쫓고 종자를 사들이는 것을 막기 위해 GMO 반대 운동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재판부는 “GMO식품이 인체에 유해한지 여부에 대해 아직 과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그 유해성에 대한 우려는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국과 EU, 일본, 중국 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는 GMO식품의 생산 및 소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지는 않되, GMO식품인지를 표기하도록 하여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밀크쿱 측의 법률대리인 김종보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는 “이번 사건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보장하려는 식품표시광고법의 목적에 부합한다”며 “법령을 경직되게 해석해온 행정당국의 처사에 경종을 울렸다”고 말했다. 1심이 알권리보다 오해할 위험을 앞세웠다면 2심은 가치관에 따른 소비가 늘어나는 시대 알권리는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전남도가 상고하면서 사건은 i우유의 표시문제는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다. GMO뿐만 아니라 채식, 할랄인증, 공정무역, 재생용기 사용 여부 등 다양한 방면에서 내가 사는 물건에 관해 소비자들의 알고 싶다는 요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법정의 판단이 주목된다.

판결정보 사건번호 2020누11892, 재판부 광주고등법원 행정1부, 원고 농업법인 주식회사 밀크쿱, 피고 전라남도지사

<박은하 사회부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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