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백업포수 LG 이성우 ‘마지막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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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선수로 입단해 1군 첫 타석에 설 때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지독히 운이 없어 “내 인생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습니다”라고 이를 악문 끝이었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야구 인생이 마흔한 살 시즌까지 이어졌다. 이성우(40·LG)는 “지난해가 진짜 끝인 줄 알았는데 1년의 기회가 더 주어졌다”며 웃었다.

LG트윈스 이성우 / LG트윈스 제공

LG트윈스 이성우 / LG트윈스 제공

이성우의 야구는 웬만한 드라마보다 더 지독했다. 고교 시절에는 ‘아빠 찬스’를 쓴 후배에게 포수 포지션을 뺏겼다. 식당일을 하다 말고 달려온 어머니가 따졌지만 결국 감독 눈 밖에 나 전학을 가야 했다. ‘사고 치고 전학 왔다’는 딱지만 붙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LG 신고선수로 입단한 게 2000년이었다. 연봉 1300만원밖에 안 됐지만 야구선수가 됐다는 생각에 부풀었다. 1년 만에 방출됐을 때 김성근 2군 감독 앞에서 무릎 꿇고 빌었다. “제발 야구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열정과 정성으로 신고선수가 2년 연장됐지만 또다시 방출됐다. 제대 뒤 다시 테스트를 받아 SK에 입단했다. 2006년 주전포수 박경완의 휴식을 위해 1군에 딱 3일 등록됐는데 거짓말처럼 3일 중 이틀 동안 비가 내렸다. 아들 경기 모습 보려고 3일 내내 야구장을 찾았던 어머니는 눈물만 훔쳤다고 했다.

8년 걸린 1군 데뷔

1군 데뷔까지 8년이 걸렸다. 2008년 KIA로 트레이드된 뒤였다. 그해 37타석에 들어섰고, 안타를 딱 3개 때렸다. 만년 백업이었다. 한 번도 100경기 이상 나선 시즌이 없고, 100타수 이상 들어선 것도 커리어 내내 4시즌뿐이다. 매년 백업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서른여덟이었던 2018시즌을 끝내고 SK에서 방출되며 야구가 끝난 줄 알았는데, LG에서 손을 내밀었다. 이성우는 “그렇게 힘들었던 야구가 행운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우가 가장 빛났던 건 2019년 6월이었다. 21일 잠실 LG-KIA전. 9회초 대수비로 투입됐고 9회말 무사 1·2루에 타석에 들어섰다. 통산 타율 0.221, 시즌 타율 0.156 타자에게 번트가 당연해 보였지만, 수비 움직임을 보고 과감하게 강공을 택했다. 만년 2군, 만년 백업포수지만 2000년 신고선수로 입단한 20년차 베테랑의 ‘감’이었다. 타구는 내야를 뚫고 나가는 끝내기 안타가 됐다. 그 안타는 KBO 역사에 특별한 기록으로 남았다. 37세 9개월 20일에 기록한 최고령 데뷔 첫 끝내기 안타 기록이다. 종전 최경환이 2009년 37세 4개월 8일에 기록한 끝내기 기록을 넘었다. LG 팬들은 물론 KBO리그 전체의 많은 팬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성우는 LG 이천 챔피언스파크의 스프링캠프에 참가 중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지난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1년이 더 주어졌다”며 “내 역할은 (주전포수) 유강남 뒤를 받칠 새 젊은 선수들을 옆에서 잘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생활 1년이 연장됐지만, 1군에서 뛸 기대는 접었다. 김재성·박재욱 등 LG의 젊은 포수들을 든든한 백업포수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성우는 “내가 백업포수의 기분과 역할은 누구보다 잘 알지 않나”고 웃으며 “다행히 재성이나 재욱이가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면서 잘 따라주고 있다”고 말했다.

만년 백업으로 지내는 동안 ‘백업의 철학’도 생겼다. 이성우는 “백업포수는 오버 액션하면 안 된다. 기회 왔다고, 잘 보이겠다고 오버하다가 팀 전체 분위기가 흔들린다”며 “화려하기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캠프

‘포수의 철학’은 당연히 정립됐다. 이성우는 “예전에는 상대 타자 약점만 공부하고 파고들었다. 투수로 하여금 그 약점에 던지라고 요구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SK에서 뛰던 2018년 트레이 힐만 감독과 스프링캠프에 갔을 때다. 힐만 감독은 이성우 등 포수들에게 “실점은 포수들의 잘못이 아니다. 투수들의 제구 실수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성우는 “그때 깨달았다. 포수는 타자 약점을 파기보다 우리 투수의 장점을 잘 알아야 하는 자리다. 그 투수가 잘 던지는 공을 더 잘 던지게 해주는 게 포수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류중일 감독과 세리자와 배터리 코치도 은인이다. 이성우는 “두 분 아니면 1군 풀타임도 없었다”며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이미 이번이 마지막 스프링캠프라고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다. 원래 빠르지도 않았지만, 달리기는 더 느려졌다. 지난해까지 이성우의 목표는 ‘3루타’였다. 1군에서 뛴 게 13시즌이나 되고, 홈런은 7개를 쳤지만 3루타는 1개도 없었다. 이성우는 “혹시 빗맞은 타구 외야수가 슬라이딩하다 빠뜨리면 나올까 싶었는데, 이제 진짜 포기했다”며 웃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 캠프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제대 앞둔 말년 병장처럼 남아 있는 훈련 날짜를 센다. 이제 단체 훈련 몇번 남았구나 하고 계산하면 가슴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한다”고 했다.

마지막 시즌이지만, 지난해 마지막 경기를 잊지 않는다. 두산과 준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8점 뒤진 경기를 다 따라붙었다가 이성우의 실수로 졌다. 홈으로 오는 송구를 떨어뜨렸고, 그 사이 3루를 돌아 홈으로 뛰어든 상대 주자를 확인하지 못했다. 이성우는 “후배들에게 일부러 자꾸 그 얘기를 해준다. 나이 마흔 먹어도 저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한다. 누구나 실수하지만, 반복하면 절대 안 된다고. 나처럼 되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LG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젊은 유망주가 1군 기회를 얻는 게 맞다. 이성우는 “그래서 1군은 포기했다. 재성이나 재욱이가 그 자리에 있는 게 맞다. 만약 나에게 1경기가 주어진다면, 그 1경기를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뭘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1경기를 두고 작은 소원이 있다.

이성우는 “아이들이 ‘우리 아빠 야구 선수야’라고 말할 때 너무 뿌듯하다. 그래서 아빠가 야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만약 1군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면,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들 야구장에 부를 거다. 유치원? 무조건 빼야지. 아빠 야구하는 거 봐야지”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그러고 나면 진짜 은퇴다. “내가 막 미쳐서 20홈런을 쳐도 은퇴할 거다”라며 큰소리를 탕탕 친 이성우는 “와이프가 올시즌 끝나면 집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해준다고 약속했다. 아파트 앞에 플래카드 하나 걸어줄지도 모른다”며 웃었다. 이성우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용균 스포츠부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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