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해저터널, 수순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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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서는 수순(手順)이 중요합니다. 수순은 돌을 놓는 차례를 말합니다. 어느 수를 먼저 두느냐에 따라 두집 나고 살 수도 있고, 대마가 잡힐 수도 있습니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보다 바둑을 잘 둔다는 것은 바른 수순을 더 잘 안다는 뜻이 됩니다.

[편집실에서]한일 해저터널, 수순이 맞습니까 

경부고속도로를 운전하다가 ‘아시안하이웨이’라 적힌 표지판을 본 적이 있는지요? 표지판에는 ‘AH1’과 함께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라고 쓰여 있습니다. 아시안하이웨이(AH)란 아시아 32개국을 잇는 도로망입니다. AH1은 ‘아시안하이웨이 1번 도로’를 뜻합니다. 가지도 못하는 곳인데 뭔 생뚱맞은 표지판이냐,라고 하다가도 언젠가 길이 뚫리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이야 꿈같이 느껴지지만 100년 전만 해도 우리는 그렇게 다녔습니다.

사실 아시안하이웨이는 낭만 이상의 프로젝트입니다. 차를 몰고, 기차를 타고 아시아대륙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은 ‘물류혁명’을 뜻합니다. 수출 중심국가인 대한민국은 새로운 성장엔진을 달게 됩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음 달 부산시장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한일 해저터널 건설을 제안했습니다. 한일 해저터널이 뚫리면 일본과의 교류가 증가해 가덕신공항(가칭)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합니다. 그 제안, 반갑습니다. 한일 해저터널은 아시안하이웨이를 완결짓는 중요한 ‘한수’이기 때문입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국가를 개조할 수 있는 큰 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합니다.

문제는 수순이 맞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것은 대륙과 잇는 것입니다. 부산·서울에서 출발해 아시아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길은 이동과 물류의 중추 노선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 종착지인 부산항은 엄청난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상하이항·싱가포르항에 밀리던 위상이 일약 뒤바뀔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서 소외된 일본이 그냥 있을까요? ‘부산과 잇자’는 요청을 해올 게 뻔합니다. 그제야 마지못해 협상하듯 대화를 시작해도 늦지 않습니다. 일본에 건설비 대부분을 대되 지분은 반반씩 하자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거절한다면? 안 하면 됩니다. 우리로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꽃놀이패’가 됩니다.

시급한 수는 북한입니다. 지금처럼 북한이 가로막고 있어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협력이 대륙으로 가는 선수가 돼야 한다는 얘깁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한일 해저터널을 제안하기에 앞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내놔야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일 해저터널을 먼저 건설하는 것은 악수입니다. 국내 정치판의 기싸움용으로 쓸 수는 아닙니다. 그 수는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게 어떨까요. 대신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대북관계 개선에 초당적으로 머리를 맞대는 게 먼저 같습니다만.

<박병률 편집장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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