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판 아우슈비츠를 멈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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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만7000마리.

[취재 후]“동물판 아우슈비츠를 멈춰야”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 과정에서의 살처분이 ‘동물 대학살’ 수준이라는 기사를 쓴 후 일주일새 이만큼의 가금류가 추가로 살처분됐습니다. 지난해 11월 이후 살처분된 닭·오리 등은 지금까지 약 2550만마리입니다. 죽음의 행렬은 내일, 모레 그리고 설 이후까지도 이어질 것입니다.

기사가 나간 뒤 “닭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백신을 맞히느냐”는 반응을 접했습니다. 살처분 대신 백신 위주의 방역을 하자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경제성 면에서도 백신은 살처분보다 나은 대안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살처분 방역에 소요되는 비용은 지난 가을과 올 겨울(2020년 11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추정액)의 경우 2560억원에 이릅니다. 지난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는 3621억원, 2014년 가을부터 2015년 봄까지는 3364억원이 소요됐습니다. AI가 비교적 조용히 지나간 해를 제외하면 매년 3000억원 안팎의 세금을 쓴 겁니다.

백신은 어떨까요. 윤종웅 가금수의사회장은 “살처분이 한 해 3000억원이 드는 반면 백신은 60억원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50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살처분 이후 매몰지 오염과 침출수 누출 등 2차 피해까지 감안하면 백신이 더욱 경제적입니다.

살처분 위주의 방역을 끝내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살처분에 동원됐던 현장 공무원들은 다양한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죽어가는 생명의 몸부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2010년 소·돼지 생매장에 참여했던 한 공무원은 이듬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살처분 참여 공무원들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가 문제로 지적된 지는 꽤 됐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살처분을 떠맡고 있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살처분 위탁을 맡은 방역업체에서 주로 이주노동자들을 일용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동물학살의 외주화’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래도 현재의 살처분 정책이 AI방역의 ‘최선책’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농가에서 벌어지는 “동물판 아우슈비츠, 동물판 킬링필드”(살처분을 겪은 한 농장 대표)를 더는 외면해선 안 됩니다. 살처분이 되풀이된 지 벌써 18년이 지났습니다.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라는 농가의 이야기에 이제는 귀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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