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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는 나란히 앉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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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계 ‘동반자 간 좌석 거리 두기’로 띄어 앉기 방침 전환 요구

“한칸 띄어 앉기도 아니고 두칸 띄어 앉기도 아닌 공연 특성에 맞는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인 ‘동반자 간 거리 두기’가 절실하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장 객석 거리 두기 방침에 따른 한칸 띄어 앉기 모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 제공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장 객석 거리 두기 방침에 따른 한칸 띄어 앉기 모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 제공

지난 11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제5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는 소감보다 호소가 더 눈에 띈 시상식이었다. 이날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이유리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이 언급한 ‘동반자 간 거리 두기’ 방침으로의 전환이 뮤지컬계를 넘어 공연계 전반의 숙원처럼 되고 있는 현실이 그 배경에 있다. 공연계에서는 거리 두기 2.5단계에서 적용되는 공연장 객석 두칸 띄어 앉기 원칙 때문에 정작 공연을 무대에 올려도 오히려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더 이상 감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자 늘어 조기 폐막, 중단, 연기

한 해를 결산하는 잔치 자리가 현재 적용되고 있는 객석 띄어 앉기 방침을 재고해 달라는 요청 일색이 된 까닭은 2020년 공연계가 거둔 흥행 성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인터파크가 집계한 연간 뮤지컬 관람료 매출은 2019년 2173억원에서 2020년 770억원(추정)으로 줄었다. 매출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마저도 투입된 제작 액수에 못 미치기 때문에 오히려 실질적으로는 적자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선 공연 상연 자체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두칸을 비우고 관객 한명을 앉히면 티켓이 매진되더라도 매출이 만석 대비 3분의 1에 불과하다. 공연을 지속할수록 적자가 쌓이니 조기 폐막과 중단, 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공연 기간이 길고 비교적 큰 공연장을 대관하는 대형 공연의 비중이 높은 뮤지컬은 그만큼 좌석 띄어 앉기 방침으로 입는 타격도 크다. 역시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입었으나 소극장 중심인 연극은 상대적으로 투입되는 제작비 규모가 작고, 공연 기간이 짧은 대중음악 콘서트는 그나마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폭이 넓은 편이다. 이전까지는 업계 차원의 공동대응이 드물었던 뮤지컬계에서 10개 대형 제작사들이 모여 한국뮤지컬제작사협회를 급하게 출범시킨 것도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입은 타격이 전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형 뮤지컬 한편의 제작비는 적게는 30억원부터 많게는 150억원까지 투입된다. 대극장 기준으로 유료 좌석점유율이 60~70%를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다. 이미 한칸 띄어 앉기만 적용해도 좌석점유율이 50%를 넘지 못하니 공연이 계속될수록 쌓일 적자를 각오해야 진행이 가능하다. 한 뮤지컬 제작사 대표는 “적자가 나도 공연 중단을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중단했을 때 배우와 스태프 수입이 끊기니 밥줄 쥔 사람 입장에서 차마 하기 힘든 결정이어서 그렇다”며 “부끄럽지만 제작진에게서 인건비 감축에 동의를 얻어야 그나마 적자를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뮤지컬계를 중심으로 대책으로 요구하고 있는 공연장 착석 방식이 바로 ‘동반자 간 좌석 거리 두기’다. 같이 공연을 보러온 동반 관객들끼리는 굳이 떨어뜨려 앉히는 것은 실효성이 낮으니 함께 앉고 다른 일행들과는 거리를 두고 앉는 방식이다. 거리 두기 1.5단계에서 공연계에 적용되는 지침이기도 하다. 이 방식이 적용되면 기껏 공연장까지 함께 갔는데 1~2칸 떨어져 앉게 되니 관람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며 아예 등을 돌리는 관객들을 붙잡을 수 있을 것으로 뮤지컬계는 기대한다.

현재로선 방역당국의 ‘핀셋방역’에 대한 대안이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 수도권 지역의 거리 두기 2.5단계 지속으로 인해 공연 중단을 연장하거나 조기 폐막을 결정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한달가량 공연을 중단했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와 <고스트> 등은 공연 중단 기간을 2.5단계가 지속되는 1월 17일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오리지널팀이 일부 배우들의 코로나19 감염과 격리를 겪는 와중에도 내한해 눈길을 끌었던 <노트르담 드 파리>는 당초 17일까지 계획한 공연을 2주 앞당겨 폐막했다. 그동안은 두칸 띄어 앉기를 적용하면서도 공연을 유지해 왔으나 추가적인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조기 폐막 결정을 내린 것이다.

홍대 인근 공연장 폐업 도미노

소규모 공연장이라고 사정이 나은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국내 인디음악의 성지로 통하는 서울 홍대 주변 라이브 공연장들은 아예 문을 닫은 곳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입은 타격을 회복할 여유도 없이 닥쳐온 위기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탓이다. 9년간 홍대에서 인디음악인들에게 무대를 내어준 라이브클럽 에반스라운지는 위기 속에서도 2020년을 넘겼지만 새해를 맞은 직후인 지난 4일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 재즈와 록,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열며 혁오, 장미여관 등 지금은 유명해진 밴드들이 무명 시절 무대를 거쳐간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총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 방침 탓에 공연 밴드와 스태프 수가 관객수와 비등할 정도가 되는 소규모 라이브 공연장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홍대 인근 공연장의 폐업은 이미 지난해부터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 한국 펑크 1세대들이 거쳐간 DGBD(구 드럭)를 비롯해 브이홀, 무브홀, 퀸라이브홀 등 이름난 공연장들마저 문을 닫았다. 한국음악산업레이블협회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세가 본격화된 지난해 2월부터 12월까지 홍대 인근 공연장에서 취소된 공연은 416건으로, 피해 금액은 20억원에 달했다. 이 금액은 입장·관람료 수입이 줄어들어 입은 손해만을 계산한 액수여서 실제 공연장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임대료와 인건비, 각종 유지비 등까지 합하면 피해 금액은 훨씬 더 커진다.

홍대 인근에 80여곳이 몰려 있던 공연장 가운데 이미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진 공연장 수만 20곳을 넘고, 남은 공연장들도 줄폐업 위기에 몰려 있다. 그나마 아직은 명맥을 잇고 있는 이곳의 터줏대감 롤링홀 역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라 문제는 인디음악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음악인 입장에서도 당장 설 무대가 사라지는 정도를 넘어 공연예술 생태계 자체가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 걱정이다. 인디음악인으로선 소규모 공연장에서나마 음악활동의 가능성을 찾는데 앞으로는 그 통로마저 닫히고 마는 데서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한 공연장 운영자는 “폐업신고를 하려면 대출금부터 갚아야 해서 사실상 문을 닫았지만 폐업도 못 하는 형편”이라며 “현실적으로 보면 공연장에서 스태프로 일하며 그나마 음악과의 연결지점을 놓지 않던 인디뮤지션들이 꿈은 고사하고 생계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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