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입시 지옥‘ 해소를 위한 3단계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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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민영이(가명)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교 수업에서 교과서 내용을 웬만큼 이해하고 학원까지 다니는데도 받아든 성적표의 상대평가 등급은 시원치 않다. 무엇보다 학교 시험과 수능 모의고사 문제가 너무 어려워 도대체 얼마나 공부해야 하는 건지 암담하다. 교과서 수준으로 절대평가를 한다면 민영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소용이랴?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국에서는 남보다 높은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래야 높은 서열의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 취업할 때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 먼저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는 민영이를 더욱 실망시킨다. 대학에 가보니 비좁은 강의실에 시설도 열악하고, 교수들의 실력도 시원치 않더라는 것이다. 단지 대학 간판을 사기 위해 이런 고통스러운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공동입시·재정지원 연계가 해답

민영이 같은 한국의 학생들을 입시 고통에서 구할 방법이 있다. 대학들이 공동입시를 실시하고 거기서 요구되는 성적의 기준을 낮추는 것이다. 일정 성적 기준을 충족하는 모든 학생을 동일한 자격을 지닌 것으로 여기고 학생들의 지망 순서를 받아 추첨해 배정한다면, 지금과 같은 입학 성적순의 대학서열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대학들은 더 이상 성적 우수 학생을 뽑는 경쟁이 아닌 대학에서의 교육력 경쟁에 집중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자격고사 성격의 대학입시를 한 번에 시행하기 어렵다. 높은 사립대 비율 때문이다. 만약 최소한의 자격고사 성적만으로 학생들을 뽑으라고 한다면 대학들은 틀림없이 대학별로 별도의 시험을 치르려 할 것이다. 자격고사 성격의 입시가 금세 무너지고 만다. 헌법상 자율성을 보장받는 대학에 입시 방법을 무조건 강제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희망하는 대학에 한해 공동입시를 치르는 네트워크를 만들고 더 많은 대학의 참여를 유도해나가야 한다.

대학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방법은 재정지원이다. 혹자는 대학서열 해소 취지에는 공감하나 막대한 예산 사용에 부정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예산 상황을 알고 나면 생각이 바뀔지 모른다. 일부 학과를 제외하고는 한국 대학의 전임교원 확보율은 70%에도 미치지 못한다.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1만달러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만5000달러의 3분의 2 수준이다.
한국 정부가 대학교육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도 높은 사립대 비중과 연관이 깊다. 대학교육을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하는 인식 때문에 국가의 고등교육 지출액이 현저히 낮다. 세계 4위 수준의 높은 등록금을 내고도 한국 대학생들은 형편없는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재정투명성과 공동입시라는 공공성을 조건으로 국가의 고등교육 지출을 대폭 올림으로써 대학서열 해소와 고등교육 여건 제고의 두가지 효과를 거두는 정책이 절실하다.

공동입시와 재정지원을 연계하는 대학네트워크를 구성하려면 어떤 대학이 어느 정도 범위에서 참여해야 할까. 대학네트워크의 입시는 어떻게 실시할까. 지원하는 재정은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 세부적인 고민이 뒤따른다.

우선 대학의 참여 범위에서는 국공립대가 중심이 되되 처음부터 사립대도 참여하면서 점차로 사립대학의 참여를 늘려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국공립대학 네트워크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도권 사립대들이 대학서열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대학서열 해소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사립대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대학서열 해소가 답이다](8)‘입시 지옥‘ 해소를 위한 3단계 로드맵

대학서열 해소 3단계 로드맵

1단계에서는 국공립대학이 중심이 되면서 일부 사립대학도 포함하는 40개 정도 대학의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여기에 사립대학들의 참여를 늘려가면서 2단계에 80개 대학, 3단계에 160개 대학으로 확대해나간다. 단계별로 5년 단위로 실시하게 된다면 15년 뒤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맞물려 전체 수험생의 약 70%가 대학네트워크에 속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네트워크 입시에서도 단계별 적용이 필요하다. 이상적으로는 처음부터 자격고사 수준의 최소한의 성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네트워크 초창기인 1단계에서는 충분한 입학정원을 확보하지 못할 것이므로 갑자기 최소한의 성적 자격을 적용한다면 정원보다 지원자가 많을 경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1단계에서는 우선 구성된 대학네트워크의 정원 수준에 맞춘 성적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 대학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운영한다. 점차 대학네트워크 정원이 많아지는 2단계와 3단계에서는 대학 공부가 가능한 최소한의 성적만 요구하는 것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또한 대학네트워크에 지원되는 재정은 실질적 반값등록금 또는 무상등록금을 실시해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줄여준다. 또한 대학에는 전임교원 확보율을 높이고 교수 학습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활용하도록 한다. 네트워크화된 대학들은 서로 간 서열이 약해질 것이므로 활발한 학점교류, 공동학위 프로그램 등 교육 자원을 적극 공유해 경쟁력을 갖춰나갈 수 있다.

서열 없는 좋은 대학에 누구나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사회, 한국에서도 가능하다. 끝을 모르는 입시 경쟁, 부담되는 사교육비, 국가 발전의 미래를 위협하는 부실한 대학교육의 현실에서, 공동입시와 재정 지원을 연계하는 단계적 대학네트워크 구성은 신의 한수가 될 것이다. 이제 대학서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을 토대로 사회적 대타협에 나설 때다.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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