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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스 시대, 비상 꿈꾸는 한국우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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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군 부리면에 있는 우주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의 로켓 엔진 성능시험장. 인삼밭 너머로 연소시험동과 시험운영동이 있고, 그 사이를 너비 약 2m, 높이 3m 정도의 방호벽이 가로막고 있다. 연소시험동에는 추력(물체를 운동 방향으로 가속하는 힘) 5t급 엔진의 성능을 시험하는 설비가 들어서 있다. 옆에는 앞으로 개발할 15t급 엔진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추력 패드와 연료를 시험하는 장치가 놓여 있다. 영하 183도로 저장된 액체산소가 고체연료와 섞여 연소하면 엔진의 좁은 노즐로 초음속의 배기가스가 뿜어져 나온다. 그 반작용으로 로켓은 대지를 박차고 우주로 향하게 된다.

2020년 12월 14일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엔진성능시험장에서 연구원들이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에 점화기를 설치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2020년 12월 14일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엔진성능시험장에서 연구원들이 하이브리드 로켓 엔진에 점화기를 설치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이노스페이스는 올해 12월 ‘이카루스’라는 이름의 나노위성 발사체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성공하면 내년 직경 1m, 높이 16.3m의 2단 발사체가 50㎏ 무게의 나노위성을 싣고 지구 저궤도에 올라가게 된다. 올해 10월 발사될 한국형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체 기술 독립의 신호탄이라면, 내년 발사될 이노스페이스의 나노위성 발사체는 국내에서 정부기관이 아닌 민간기업이 쏘아올린 첫 위성 발사체라는 기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민·관 양쪽에서 한국우주산업이 도약의 발판에 올라서는 것이다.

로켓 ‘덕후’들 뭉쳐 민간 위성발사체 쏜다

“우주 로켓을 만든다고 하면 ‘멋지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개발하는 과정은 육체노동에 가깝죠. 정말 힘들고, 춥고 더운 데서 작업해야 하고, 그런데도 이렇게 힘들게 준비해 엔진 시험이 성공하는 걸 보면 ‘약에 취한다’고 말할 정도로 빠져들죠.” 지난해 12월 14일 세종시 본사와 금산 성능시험장에서 만난 김수종 대표(44)는 “로켓 연구자로 국내에서 로켓 기업의 성공사례가 없었다는 게 늘 아쉬웠다”면서 “후배들이 도전적으로 시도하고, 새로운 성공사례를 만들 수 있도록 롤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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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을 만드는 사람들은 소위 ‘덕후’라고 할 정도로 로켓에 미쳐 모든 걸 쏟는 열정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런 꿈과 열정을 펼칠 곳은 많지 않다. 김 대표도 그랬다. 방산 대기업에서 유도 무기 개발 업무를 하면서 지식과 경험을 쌓았지만, 정부 발주 사업 이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긴 어려웠다. 답답함을 느끼던 차에 전 세계적으로 위성 발사체를 스타트업이 주도적으로 개발하는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론 머스크가 세운 스페이스X가 2008년 세계 최초로 민간 액체 추진 로켓을 지구 궤도에 도달시킨 이후 일어난 변화였다. 정부가 주도하던 ‘올드스페이스’ 시대가 저물고 민간기업과 자본이 우주개발을 주도하는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은 것이다.

스타트업도 기술력만 있다면 우주 발사체 사업이 가능하다고 확신했고, 2017년 1인 창업을 한 후 학교와 회사 후배들을 한명씩 만나 영입했다. 그렇게 로켓 덕후를 모아 세운 회사가 지금은 40명 가까운 규모로 식구가 늘었다. 김수종 대표는 “과거엔 정부가 국민에게 자긍심을 주는 대형 기술을 개발하고 실패에 대한 부담 때문에 비용보다 신뢰성에 초점을 뒀다면 뉴스페이스 시대는 철저히 상업적이라 누가 더 혁신적 기술을 사용해 더 낮은 비용으로 발사체 서비스를 하느냐에 따라 생존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이노스페이스는 시험 중인 5t급 엔진 개발을 마무리하고 올해 상반기 15t급 엔진 시험에 들어가 올해 말 혹은 내년에 시험발사를 한다. 적도 인근 브라질 알칸타라 발사장을 사용할 예정이다. 김 대표는 “5t급 엔진 개발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투자를 유치하는 목적이고 15t급 엔진을 개발하면 이후 이 엔진을 4개, 7개씩 묶어 탑재중량 150㎏인 마이크로위성 발사체, 500㎏인 미니위성 발사체로 빠르게 규모를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획대로 되면 발사단가를 ㎏당 3만달러(3300만원)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소형 발사체로 상업서비스를 하는 유일한 회사인 미국의 로켓랩(발사단가 ㎏당 3만3000달러)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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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는 공기가 없어 연료와 공기 역할을 하는 산화제를 함께 가지고 가야 한다. 이때 연료와 산화제가 고체면 고체로켓, 액체 형태면 액체로켓이 된다. 고체로켓은 연료와 산화제를 미리 반죽해 캔 같은 금속 구조물에 넣은 것이다. 미리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해 언제든 쏠 수 있고 구조가 단순하다. 하지만 추진력을 조절하기 어렵고 중간에 멈출 수 없다. 반면 액체로켓은 연소실에 들어가는 추진제의 양을 조절해 추력 조절이 가능하고 엔진을 껐다가 다시 켤 수 있어 자세제어에 용이하다. 다만 연료와 산화제를 고압 상태로 연소실에 보내는 터보 펌프 등 고가의 장비가 들어가 비싸고 수소와 산소를 극저온 액체 상태로 유지하는 단열 탱크와 배관을 만들어야 해 구조가 복잡하다.

이노스페이스는 두 로켓의 장점을 합친 하이브리드 로켓을 개발하고 있다. 연소실 내부에 양초(파라핀)를 주원료로 한 고체연료를 장착하고, 별도 탱크에 담긴 액체산소를 연소실로 분사해 고압의 연소가스를 얻는 방식이다. 김수종 대표는 “고체로켓처럼 연료와 산화제를 미리 혼합하지 않아 폭발의 위험이 없고, 액체로켓과 달리 연료가 고체 상태라 산화제가 유출돼도 폭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저장·생산·운반하는 과정에서의 안전관리 비용도 낮출 수 있다. 하이브리드 방식은 고체연료의 느린 연소 속도가 한계로 지적됐는데 ‘비밀 레시피’로 해결했다. 액체로켓의 복잡성을 키우는 터보 펌프도 전기모터와 배터리 기술을 적용해 개선했다. 내연차가 전기차로 바뀌면서 구조가 단순해진 것과 비슷하다.

컨텍의 제주 지상국에서 위성 데이터를 수신하는 상태가 컴퓨터 화면에 표시되고 있다. / 컨텍 제공

컨텍의 제주 지상국에서 위성 데이터를 수신하는 상태가 컴퓨터 화면에 표시되고 있다. / 컨텍 제공

위성 발사 수요 급증 예상

발사체 시장은 위성 수요가 있어야 열린다. 위성 수요는 나노위성(50㎏ 이하)이나 소형위성을 이용한 군집 시스템의 장점이 부각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소형위성은 2019년 이후 2028년까지 발사예정 대수만 8500기에 달한다. 스페이스X는 위성 인터넷망 사업인 ‘스타링크’에 쓸 4만기의 소형위성 중 이미 1000개 이상을 쏘아올렸다. 국내에서 나노위성 제작과 임무 설계, 군집 시스템을 활용한 위성 빅데이터 분야의 선발 주자로 ‘나라스페이스’를 들 수 있다. 초소형 위성 상업화에 관심이 큰 젊은 연구자들이 모인 회사다. 박재필 나라스페이스 대표(32)는 “우주 상업화 동향을 보면 50㎏ 언저리의 위성이 굉장히 많이 쓰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위성 대량생산을 염두에 두고 위성의 효율성과 경제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신뢰성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중대형 위성(500㎏ 이상)은 정밀도와 신뢰성이 높지만 (같은 장소를 다시 찾는) 재방문 주기가 길다. 반면 해상도를 조금 낮춰도 군집으로 운영하면 반응시간에서 더 많은 이득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대가 같은 장소를 차례로 지나가면서 지속적인 관측이 가능해 군사작전에서 실시간 전황을 파악할 수 있고 재난감시 같은 비군사 분야에서도 특정 지역을 시간 공백 없이 관측할 수 있다.

나라스페이스는 위성 영상을 딥러닝 기반으로 분석해 각 수목의 시계열 변화를 파악하는 위성 시스템을 개발했다. 구름을 제거하는 시스템 등 데이터 보정 시스템을 자체 개발했고, 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기 위한 클라우드 시스템도 개발했다. 박 대표는 우주 공간에서 얻는 데이터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대표는 “기후변화만 봐도 환경운동가의 피켓 시위로 끝나지 않고 탄소 배출에 직접적인 규제가 들어오고 있다”면서 “탄소배출권을 생산할 수 있는 회사와 협력해 기존에 비해 얼마나 많은 탄소를 줄였는지 파악하면 녹색금융에도 많은 통찰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엔진성능시험장에서 엔진 성능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 이노스페이스 제공

충남 금산 이노스페이스 엔진성능시험장에서 엔진 성능 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 이노스페이스 제공

박 대표는 “발사체 가격이 낮아지고, 상업용 부품도 저궤도 환경에선 충분히 견딜 정도로 올라와 우주에서 신기술을 실험하고 위성을 효율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면서 “지금도 정지궤도(고도 3만6000㎞) 위성은 발사에만 100억원 정도가 들지만, 저궤도(160㎞~2000㎞) 위성은 빠르게 제작·발사·검증해 유연하게 개발하는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하늘에 뜬 나만의 별, 1인 1위성 시대 올 것”

뉴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산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세계 우주 산업이 2016년 3500억달러 규모에서 2040년 1조달러(약 1100조원) 이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에 없던 우주 인터넷 서비스가 39.1%를 차지할 만큼 급성장하고, 그 뒤를 지상국 서비스(18.6%)가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2015년 창업한 ‘컨텍’은 지상 서비스 시장에 진출한 거의 유일한 한국 업체이다. 2018년 세계위성산업 규모는 2083억달러인데 컨텍이 진출한 위성 활용 서비스와 지상장비 분야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한다.

위성과 발사체는 데이터를 수신하고 처리하는 지상국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신분으로 컨텍을 창업한 이성희 대표(45)는 “위성과 발사체 데이터를 수신하고 처리해 고객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를 하려면 지상국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위성이나 발사체가 보내는 위치정보와 상태정보, 촬영정보 등을 받기 위해 우리 지상국을 쓸 때마다 사용료를 내게 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쓸 때 통신망을 이용에 따른 요금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컨텍은 지난해 9월 제주시 구좌읍에 지상국을 설치했다. 민간 지상국으로는 최초다. 올해 3분기까지 위성이 지나가는 주요 길목에 있는 핀란드, 알래스카, 칠레, 두바이에도 지상국을 설치할 계획이다. 여러개 지상국을 엮어 위성정보 플랫폼 역할을 하게 된다. 스페이스X와는 스타링크 사업을 위한 한국 내 지상국 설치·운영을 협의하고 있다. 레이저를 이용한 위성 통신 기술(FSO)도 연구하고 있다. 한국은 지상 인터넷망이 잘 구축돼 위성 인터넷망의 쓰임새가 덜할 것 같지만 미래는 모를 일이다.

컨텍은 위성 영상을 보정하는 영상 전처리 서비스, 딥러닝 기반으로 지상의 변화를 탐지하는 기술을 개발해 지자체에 제공하고 있다. 앞으론 자체 위성 확보를 추진하는 경남 진주시처럼 지자체가 위성을 보유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인다. 위성영상이 무허가 건물 탐지, 주차장 이용률, 교통 혼잡도 분석 등 도시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진주시는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이성희 대표는 “지금은 항공촬영을 1년에 한 번씩 한달 정도 수행하는 데 돈이 많이 들고 고도 2㎞ 높이에서 찍어 해상도는 높지만 자주 찍을 수 없어 변화를 탐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위성은 50㎝의 해상도로 크게 떨어지지 않은데다 그냥 지나가면서 쭉 찍으면 되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컨텍은 3~4년 후엔 자체 위성을 보유하고 발사장까지 구축해 지상국 관련한 종합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향후엔 1인 1위성 시대가 올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자체 발사장을 건설해 발사 대행 서비스도 할 텐데 각티슈만 한 위성을 만들면 한 번에 여러개를 발사할 수 있다. 스페이스 에듀케이션도 고민하는데 나중엔 이걸 저렴하게 만들면 1인 1위성 시대도 올 수 있다. ‘우리집 1호’라는 이름을 단 위성이 지구 어디에 있는지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는 식으로 놀이처럼 만들어 우주 교육을 할 수 있다.” 이 대표의 말이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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