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도

한국 민주주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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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경향·미래전략연구원 공동기획 오감도

‘Weekly 경향’은 미래전략연구원과 공동 연중기획으로 하나의 사안에 대해 그 분야 최고전문가 5명의 진단과 시각을 보여주는 ‘오감도’를 연재한다. 이번 호에는 한국 민주주의를 진단했다. 민주주의의 실종, 정권의 전횡과 독재가 거론되는 지금, 민주주의와 사회갈등, 정부, 입법, 시민사회, 인터넷과의 관계를 조망해봤다. 글의 전문은 미래전략연구원 웹페이지(http://www.kifs. org)에서 볼 수 있다. 전문가·학자 90여 명으로 구성된 미래전략연구원은 ▲학제적 연구 ▲실천적 연구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중도 성향의 네트워크형 민간 싱크탱크다. <편집자 주>

한국 사회갈등과 민주주의 미래

이강로<전주대 교양학부 교수>

서울광장 폐쇄는 민주주의와 소통을 거부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징처럼 거론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광장 사용조례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서울광장 폐쇄는 민주주의와 소통을 거부하는 이명박 정부의 상징처럼 거론되고 있다. 지난 6월 24일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서울광장 사용조례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향신문>

지금의 한국 민주주의는 왜 불안한가? 대한민국 정통성, 대미·대북관계, 재벌·언론의 역할을 둘러싼 갈등은 역대 정부가 과거와 단절을 시도하면서 더 악화되었다. 이 단절은 각 정부의 성격과 권한에 대한 국민합의를 어렵게 만들었다. 정치 갈등은 1997년 외환위기 후 현저해진 고용 불안과 소득 양극화로 경제·사회적 요인이 가미된 복합적 갈등 구조로 발전했다.

민주주의의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민주적 갈등 해소에 실패했다. 공권력에 의존한 이명박 정부의 반대파 길들이기는 최근 ‘독선·독재’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사회 세력에 대한 더 세분화된 인식과 이분법적 사고구조의 극복이 필요하다. 또 입법부의 갈등 수렴과 중앙정부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갈등 해결 기제가 다양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갈등을 민주제도로 해결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어떻게 될까.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갈등 자체보다 해결 방법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데 있다. 20세기 좌우(左右) 전체주의가 모두 폭력을 기반으로 성립·유지되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귀 닫고, 눈 감은 정부에

심준섭<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와 국민의 거리는 가까워지기보다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귀 닫고 눈 감은 불통의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도외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 스스로 소통의 부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점이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다. 소통의 혈관이 막혀버린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진단하는 게 시급하다.

첫째, 문제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의다. 대통령 5년 임기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려는 조급함은 대화와 설득의 시간마저도 비효율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근시안적인 정책이나 인기에 편승한 포퓰리즘적 정책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둘째, 집단사고의 지배다. 현 정부 내에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이견과 비판은 무시되고 칭송의 노래만 울려퍼지는 집단사고가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셋째, 정책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최적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과도한 확신이다. 이러한 과도한 확신은 다양한 반대와 이견을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책 추진을 저해하는 걸림돌로 여기게 만든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소통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트위터에 가입하고, 떡볶이 집을 방문하는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진심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는 정책을 기대해본다.

입법부의 위상 제고가 시급하다

임성학<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민주화 20년이 흘렀지만 국회와 정당은 왜 국민의 열망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가. 원인은 크게 한국 정치의 구조적·인식적 문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구조적 원인으로 3김시대식 지역주의에 의한 비민주적 정당 운영,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존하는 제왕적 대통령제, 관료적 효율성에 초점을 둔 행정부 우위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정당과 국회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문제다. 이코노미스트지의 2008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았고, 한국 정당 개혁도 매우 광범위하고 급진적으로 진행되어 많은 정당전문가가 놀라워했다. 하지만 한국 국민의 정치권에 대한 평가는 매우 낮다.

정당과 국회가 제 역할을 하고 국민에게 신뢰받기 위해서는 위에서 지적된 문제점을 선결해야 한다. 정당은 기존의 지역 균열구조를 벗어나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3김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이후에도 지역주의는 잔존하고 있다. 지역주의의 해결은 단기적인 제도개혁보다는 유권자의 의식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정치권이 노력해야 한다. 더욱 균형 잡힌 권력구조,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의 위상이 높아져야 한다. 대통령이 국회를 통제의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자신의 정책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국회는 불가능하다. 청와대의 정무 기능을 보강해 국회를 국정 운영의 파트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시민사회, 차이와 공존

서현진<성신여대 사회교육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정부와 시민사회 간 이념적 갈등과 대립 현상은 심각하다. 따라서 이를 민주적으로 해결하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정부와 시민사회에 모두 절실히 필요하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과 발전에 이런 갈등이 생산적인가, 갈등의 표출과 해결 방법이 평화적인가, 갈등 해결로 사회통합이라는 결과가 나타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기 때문이다. 갈등의 민주적 해결과 공존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는 각각의 역할을 인정하고 협력적 관계를 맺어야 한다. 정부는 시민사회가 지원자로서 정치 과정에 참여하길 원하고 시민사회는 정부에 대한 비판자로 참여하길 원한다. 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민주주의 공고화에 저해가 된다. 예를 들면 견제와 비판에 치우치는 경우 정부의 정책 수립 능력과 효율성이 약화되고 공적 서비스에 국한될 경우 정치 권력남용을 적절히 견제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대립이나 지원이라는 양극이 아닌 상호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합의와 협력을 추구하는 협조적 관계를 유지하는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 필요하다. 시민사회의 참여는 정부를 대신하여 거버닝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과정에서 현실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 정부는 시민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반대편에 설 수도 있는 사회의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흡수함으로써 정치 과정에서 실질적인 통제력과 능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집단지성과 감성, 한국 정치의 새로운 주체

홍성민<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 정치에서 집단지성의 문제는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첫째는 지역주의 정서이며 둘째는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여론정치다. 출신지역이나 특정인물에 대한 맹종이 지난 50년간 한국 정치의 특성이었고, 이것이 건전한 정당정치를 방해해왔다. 한편 인터넷은 정치적 의견을 생산하는 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지식인이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전문가 집단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에서 여론은 일반 대중이 만들어낸다. 기술력의 발달에 힘입어 정치토론의 장이 획기적으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보통 사람들의 가치판단과 정치적 표현방식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문화정치라고 이름붙이고 싶다. 전통정치학이 국가, 정당, 투표 따위와 같은 법과 제도의 문제에 천착했다면, 문화정치학은 무의식, 언어, 취향, 이미지 따위 요소들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앞으로 정치가들이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표현되는지 알아야 한다. 보통사람들은 정책을 이해하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잘 생긴 얼굴, 세련된 패션감각, 매력적인 말투에 따라 표를 던진다. 그런데 현실정치에서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 이러한 현상을 고려한다는 것이 학문적으로나 이념적으로나 그동안 소홀히 다루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문화적 요인을 무시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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