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 가속도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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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제조사들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 선언 잇달아

2020년 12월 10일, 현대자동차는 최고경영자(CEO)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유럽, 중국, 미국에서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를 판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로써 현대차는 2030년까지 전체 생산량의 25.8%, 2040년까지 전체 생산량의 78%를 전기차로 끌어 올릴 계획이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본부에 레이저를 쏘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다’는 문구가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돼 게시됐다. / 사진제공 그린피스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EU본부에 레이저를 쏘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기후위기, 시간이 없다’는 문구가 여러나라 언어로 번역돼 게시됐다. / 사진제공 그린피스

내연기관 엔진은 카를 벤츠와 루돌프 디젤이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모습의 자동차를 만든 뒤 한 세기 넘게 인류와 함께했다. 아직까지 우리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90% 이상은 석유를 태워서 움직이는 내연기관차다. 그런데 왜 현대차는 굳이 전기차 전환을 강조한 것일까.

사실 기존의 디젤, 가솔린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 또는 수소전기차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한 제조사가 현대가 처음은 아니다. 폭스바겐은 지난 2018년, 2040년 내로 모든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련해 미하엘 요스트 폭스바겐 전략책임자(CSO)는 2026년 이후에는 더 이상 내연기관차를 개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5년 뒤다. 다임러, 스카니아, 만, 볼보, 이베코 등 유럽의 대형 트럭회사들 역시 2040년 이후 내연기관차의 생산을 멈추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어지는 내연기관차의 퇴출 선언

기업들의 선언 배경에는 세계 주요 도시들의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결정이 있다. 수송 부문 온실가스 감축 동향 전문 분석기관인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의 최근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총 17개의 정부 및 지자체에서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확정했거나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가장 빠른 곳은 노르웨이로 202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가 금지된다. 2035년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를 논의했던 영국은 최근 중단 시점을 2030년으로 앞당기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내 최대 자동차 시장인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 이후에는 전기차 판매만 허용하겠다고 선언했다.

내연기관차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단순히 최근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디젤게이트 사건이나 미세먼지 등과 같은 대기오염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가장 최신의 연구자료들을 취합해 기후변화에 관한 과학적 권고를 전달하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금 우리가 겪는 극단적인 이상기후는 초기 증상일 뿐이라고 경고한다. 이대로 우리가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온실가스를 내뿜게 된다면 인류 문명의 유지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최신 과학 연구들은 문명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지구 평균 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명확하다. 2050년까지 넷제로(net zero), 즉 인간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대폭 줄인 후, 감축이 불가능한 일부 배출량만큼 산림 등으로 흡수해 온실가스 총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달성해야 한다.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한데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 분야 역시 큰 부분을 차지한다.

50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연료소비가 많은 새로운 폭스바겐 골프 출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제공 그린피스

50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독일 베를린에서 연료소비가 많은 새로운 폭스바겐 골프 출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제공 그린피스

세계 주요 시장(미국·중국·유럽)에서 2040년까지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면 전 세계 온실가스 넷제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여기 간단한 계산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자동차의 평균 수명은 약 15년이다. 2050년 도로 위의 모든 교통수단이 무배출 차량(ZEV)이 되려면, 아무리 늦어도 2036년 이후에 팔리는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가 돼야 한다.

독일의 항공우주, 에너지, 교통 관련 연구를 책임지는 독일항공우주센터(DLR)는 보다 정교한 계산을 했다. 감축 연구에 의하면 넷제로 달성을 위해 적어도 유럽에서는 2025년까지 디젤, 가솔린 등 모든 내연기관차의 신규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 지금은 친환경으로 여겨지는 하이브리드 차량 역시도 2028년까지는 중단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전 세계적인 목표이다. 그러나 현대차·토요타 등 자동차 제조사들은 규제와 벌금이 도입된 유럽 시장에서는 내연기관차의 판매를 축소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규제가 느슨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계속 판매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최근 2040년 사업 계획 발표에서도 한국을 ‘신흥국’과 묶어 전기차로의 전환 대상 시장에서 제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발표했다. 만약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시장이 내연기관차 판매가 허용되는 곳으로 남게 되면 미국·유럽 등에서 판매가 금지된 마지막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처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100% 전기차로 전환은 가능할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만대였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220만대를 기록했다. 무려 110배에 달하는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가격은 1kwh당 1000달러에서 100달러 수준으로 10배가량 낮아졌다. 올해 전기차 판매량은 250만대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전 세계 자동차 판매가 급감했지만, 전기차는 오히려 더 빠르게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맥킨지앤컴퍼니는 중국과 유럽의 경우, 오히려 코로나19 이전에 예측했던 것보다 더 많은 전기차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의 전기차 보급 확대는 결국 2050 온실가스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 기업과 정부가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는가에 달려 있다.

다행히 전기차 원가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 가격이 추가로 하락하면서, 전기차의 확대를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업체 우드 매켄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이후에는 전기차 가격이 내연기관차 가격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전기차가 보조금 없이도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 경제력이 없는 국가에서는 2040년까지도 내연기관차 판매가 불가피할 거라는 전망도 힘을 잃게 될 것이다.

현대차와 같이 글로벌 기업이 구체적인 내연기관차 판매 금지 시점을 발표하는 것은 세계 시장에 미래 방향성에 대한 분명한 시그널을 준다. 방향이 명확해지면 미래차 산업에 더 많은 연구개발 자원이 몰리고 산업 전환 대응 및 교육에 힘쓰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우리 사회의 역사는 화석연료의 역사였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화석연료와 계속 함께하면 잃게 되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문명이며, 남는 것은 후대의 원망뿐이다. 변화는 작게 시작하지만 가속도가 붙으면 순식간에 이뤄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과 서비스 중에는 10여년 전에는 극히 일부만 쓰고 있던 물건들이 많다. 내연기관차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 남은 것은 전기차로의 전환을 가속하는 길 뿐이다.

<최은서 그린피스 친환경자동차 캠페인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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